‘그러므로’라는 말은 사전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의 내용이 뒤에 내용의 이유나 원인, 근거가 될 때 쓰는 접속 부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비가 올 것 같다 그러므로 우산을 갖고 나가라”.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기도보다, 은밀하게 보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라 하십니다. 이방인들의 중언부언하며 말만 많이 하는 기도보다, 말이 적더라도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신 하나님께 집중시키며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며 기도의 모범적인 케이스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 보면, 도둑들이 보물을 숨겨둔 동굴 문 앞에서 “열려라 참께”라는 주문을 외우면 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보물에 눈이 어두워 참께라는 말이 생각이 안나 동굴에 갇혔다는 이야기처럼, 잠긴 문을 열어주는 주문처럼 주기도문을 외우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기도 속에 담겨있는 의미와 정신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지 주문으로 사용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려고 하셨던 기도의 의미와 정신은 무엇입니까? (1) 너희(휘메이스)라는 단어는 이렇게 기도하기를 수용하고 따르기로 작정하는 ‘기도의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외식적인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내려놓고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하실 때 이 기도를 따를 수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잘못된 습관에 젖어있는 자가 이 기도를 따를려면 반드시 그 습관을 내려놓고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2) 교회역사에보면 초대교회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하기전에 반드시 세례를 받은 자가 이 기도를 할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의미와 정신이 주문으로 약화될 수 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3) 기도하라는 말씀은 한 번만 이렇게 기도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쉬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 앞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주기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바라며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1.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9)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늘을 3개로 나눠 믿었습니다. 1층 하늘에는 자연과 인간이 살고, 2층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살고, 3층 하늘에서는 하나님이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에서 사용하는 “하늘”은 하나님을 3층천으로 올려 보내 놓고, 2층은 천사들이 쓰고, 1층은 우리가 쓰는 ‘각층 나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3층천 구조의 시공간적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편재성과 무한성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1) 편재성omnipresence: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과 의지속에 계십니다. 우리의 학교, 직장, 가정, 생활속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도 계시며, 바다 깊은 곳에 계시며, 우주 반대편과 우주 밖에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곳에도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속에도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 드리는 이 자리 가운데 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격속에서도 살아계시며 우리를 보시고, 들으시고, 느끼시고, 인격적으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2) 무한성 eternity, The Infinity: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십니다. 어떤 자매님이 저에게 “목사님, 저는 기도하면서 카이로스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매님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실 시간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일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런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꿈을 가지십시오! 비전을 가지십시오! 더 큰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것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3)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느 공간과 어느 시간을 막론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들으실 준비와 시행하실 준비가 되셨고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를 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친밀하고, 독특한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세상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친밀함과 독특함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뿐 아니라, 하나님안에 있는 우리 형제 자매들 그 안에서 소통하게 됩니다.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9中, 10)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한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기도를 할 때 우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우리를 통하여) 드러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도(우리들이 살아가는 곳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할 때, 비록 그곳이 마른땅- 황무지- 흑암과 저주와 고통으로 상한 곳일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곳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며, 뜻을 이루어 성취할 것이라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는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마음과 생활속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 수 있도록 통치의 영역을 넓혀 가십시오! 나의 인간적인 뜻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훈련해 나가십시오! 기도는 이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시편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이 도움의 근원이심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입술에는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나의 믿음없음을 도와주세요!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세요! 나의 마음의 생각을 도와주세요! 나의 처지를 도와주세요! 모든 상황에 적용하며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모든 어려움에 처해진 자들의 이름을 대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달라는 자에게 외면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3.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1)
하나님은 인간의 기본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게 하셨습니다. 그 기준은 아주 가난한 자들을 기준으로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일용직을 살아가는 자들을 기준으로 기도하게 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자들은 병들면 그냥 굶어야 했습니다. 그런 자를 기준으로 기도하게 하심으로 “매일 매일 먹이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고, 매일 매일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게 하시고, 나도 남을 도와주라는 사명을 주시고, 한 시도 딴 눈팔지말고 하나님만 의지라하심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잠언30장8-9절 말씀을 보면,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배부르면 하나님을 모르게 되고, 가난하면 도적질할까봐 두렵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그날 그날 먹을 만나만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들을 헐벗게 아니하셨고, 굶겨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정을 아셔서 돌보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4.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까지 용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죄를 저질렀을 때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에게 상처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우리가 남에게 상처준 사람으로부터 용서받기를 기도할 수 없습니다. 14-15절 말씀에보면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용서가 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데니스 린, 쉴라 린, 마태오 린은 ‘너무 빨리 용서하지 마라’에서 용서는 부정단계 분노단계- 거래단계- 우울단계- 수용단계를 거칠 것이며, 우리는 배신한 자를 친구로 수용하신 예수님처럼 용서해야한다”고 했습니다.
5.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악한 자; 마귀에게서) 구하옵소서 (13)
하나님은 그 누구도 유혹을 들게 하여 넘어뜨리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야고보서 1:13-16절 말씀에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 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악한 자 곧,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혹을 주시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유혹에 넘어지기 쉬운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방도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
6.(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있사옵나이다. 아멘) (13)
이 부분에 괄호를 해둔 것은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기도를 유대인들의 관점, 문맥적 관점, 신학적 관점에서 완전한 기도문으로 승화시키려는 송영(끝맺음의 찬양)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첨부한 것을 통하여, 교회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가 교회의 신앙고백이되고, 영원히 드려질 찬송이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만 영원히 돌려져야 한다는 송영으로 더욱 기도의 중요성과 의미와 정신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정신을 따르는 “주기도의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암송정도가 아니라, 그 기도를 읽을 때, 그 담긴 의미와 정신을 따르는 교회되어, 세상속에 교회는 기도로서 승리할 것이라는 것으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기도
특별히 뽑아 세운 제자들을 더욱 강한 자로 부르시기 위하여 기도의 제자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기도가 점점 사라지는 이때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을 통하여 교회의 사명을 깨닫게 하시고, 사회속에 영향력을 끼치는 저희들로 삼아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