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상에서는 성공의 기준을 세 가지로 측정합니다. 그것은 돈과 권력과 명예입니다.
비즈니스나 부동산 투자나 스탁 마켓을 하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Tesla의 CEO 일런 머스크의 말이 왜 힘이 있습니까?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는 억만장자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돈 많은 빌게이트가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도네이션을 제일 많이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명예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미국의 대통령 조 바이든과 트럼프가 2024년도 대통령 후보로 나오려고 서로 싸우고 헐뜯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 습니까? 권력과 부와 명예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에서는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지면 좋은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성공기준은 무엇일까요? 돈일까요? 권력일까요? 명예일까요?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돈 권력 명예입니까? 아닙니다. 돈 벌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면 반대입니다. 돈을 드리고, 명예를 내려놓고 권력을 비우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걸 다 포기하면서까지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집사 권사 장로 목사 되기 위해서입니다. 성공의 기준을 직분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직분이 성공의 기준일까요? 그러타면 잘못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으면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첫째는 이루어진 일이고, 두 번째는 이루어질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이 이루어집니다.(완성)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일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과 성숙을 향한 평생작업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본문에서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한 신앙생활의 경건의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의 생애에서 가장 오랫동안 말씀을 강론하고 3년 동안 목회를 하던 모범적이고 좋은 교회입니다. 이단들과 아데미 신전의 우상과의 싸움에서 이기기는 했으나 첫 사랑을 잃어버림으로 주님의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다(계2장). 지금 에베소에는 누가의 무덤이 있고,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목회하던 요한기념교회가 잔존해 있습니다. 바울이 보낸 서신 중 로마서가 이신칭의 교리의 완성이라면 에베소서는 교회론의 꽃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에는 좋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6개의 이미지로 그려놓았습니다.
에베소서에 나타난 교회의 모형 6가지(Six Images of the Church)은
①성전(2:21)-예배(Worship), ②그리스도의 몸(1:23;4:12)-교육과 선교(Evangelism), ③한 새사람(2:15)-제자훈련(Disciplship), ④하나님의 가족(2:19)-성도의 교제(Fellowship), ⑤그리스도의 신부(5:23)-성결과 성숙(Spiritual Growth), ⑥그리스도의 군대(6:10-17)-사역(Ministry)이 있는 교회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면, 신약의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다스림)가 보이는 모형(현장)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로마의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이요,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좋은 교회의 좋은 일꾼이 되는 권면의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6-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여기 6절에 좋은 일꾼들의 최종 목표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고, 7절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경건에 이르도록 제 자신을 연단하라]입니다.
“연단하라”(gumnazo, 벌거벗고 활기차게 운동하다)는 말이 우리말 성경에는 ‘단련하라’, 표준 새번역에는 ‘훈련하라’이고, 개역한글에는 ‘연습하라’로 번역했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Exercise(NKJV), Training(NIV), Discipline(NASV)으로 각각 번역했습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고 훈련(연습, 단련)하라”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그리스도인의 최종목표는 사실 성공(Successful)이 아니고 뛰어남(초월성, 탁월함 Excellency)라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Excellency, 탁월한 좋은 일꾼은 누구를 닮느냐? 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좋은 일꾼들의 최종목표이어야 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느냐?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본체(동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아들)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태초에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실 때 그분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창 1:27).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그 형상(의, 선, 거룩(Calvin)이 다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거룩과 선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롤 모델이 있습니다. 영화배우, 운동선수, 존경하는 사람을 닮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들의 롤 모델은 누구입니까? 누구이어여 합니까? 우리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히 12:2).
1. 겸손입니다.
우리의 롤 모델이신 주님께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 11:28-30에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빵문제, 의식주문제, 질병문제를 해결하시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 가르침도, 병 고침도, 인생 상담도,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께서 얼마든지 와보라 ‘내가 이런 사람이다’ 할 주 있지만 사람들의 인정이나 존경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Humble, Humiliation] 겸손이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그분은 하늘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을 입으셨습니다. 창조의 세계에서 피조의 세계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제일 많이 닮은 바울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Christ Jesus)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심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컴퓨터에 많은 정보를 입력(Imput)하면 그것들을 소화해서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Outcome)이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IMPUT 하면 나오는 것(outcome)이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Transformation)입니다. 여기에 키워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믿으면]입니다. 12절입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5절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디모데와 우리에게 변화와 성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아는 것을 자랑하는 외적인 변화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형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모양을 내고 꾸미고 밖으로 치장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많이 알게 되면 겉과 외모만 치장하고, 머리만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공의 기준을 아는 것과 가진 적에 의존하고 교회에서는 직분이나 권위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런데 겸손은 외적인 변화가 아닌 내적인 변화와 겸손입니다. 나는 얼마나 겸손?
2. 섬김입니다.
마가복음 10:41-45입니다.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제자가 화를 냈습니다. 그 이유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우편 좌편의 높은 직위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의 정권을 뒤집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면 한자리씩 얻기 위해 3년 동안 따라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그렇게 하지만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not so with you)] 뭔가 잘못? 오해?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자와 작은 자는 이렇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섬김이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기위해( 때문에) 섬기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시기에 충분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려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not to be served, but to serve)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을 닮은 것이 우리 좋은 일꾼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그것은 겸손과 섬김입니다. 당신은?
여기 섬긴다는 말은 헬라어로 [diakoneo, 종이 되다, 섬기다, 봉사하다(집사의 어원)]입니다.
교회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섬기러하는 자들보다 섬김을 받으려 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섬김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신앙(교회)생활에서 반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교회에서 얻으려고 합니다. 높아지는 것, 판단하는 것, 정죄하는 것, 외형적인 것, 권위주의, 다수주의를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not so with you)] 좋은 일꾼은 겸손하고 섬기는 자입니다.
3. 자기부인입니다.
누가복음 9:23절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aneomai)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겸손과 섬김을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좋은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나(자기)를 부인(아네오마이, 자기 부정 거절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한 번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연습(훈련, 단련 Exercise(NKJV), Training(NIV), Discipline(NASV)이 필수입니다. 처음에는 힘들 것입니다. 어색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경건은 계속적인 변화입니다.
Recreation Center나 24HR Gym에 가면 첫날에는 힘이 들 것입니다. 근육이 아프고, 땅기고, 지치고, 땀이 납니다. 문제는 둘째 날입니다. ‘내가 미쳤지... 왜 이런 힘든 일을 시작했을까? 후회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계속해서 연습하고 훈련하고 단련하면(keep doing it) 어떻습니까? 쉬어집니다. 편해집니다. 몸에 익숙해지고 목적하는 바가 이루어집니다.
-아들 마이클의 육체연습(Body work at 24HR Fitness) -야구(프로)선수의 연습
교회생활에서 한 번으로 겸손해지고 한 번 섬김으로 성숙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일, 용서하는 일, 순종하는 일, 자기를 부인하는 일은 한 번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계속적인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한 번 성공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한 번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계속해서 훈련하고 단련하고 연습해야 몸에 배이고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밀 많이 닮아서 우리를 향하여 지신 있게 ‘너희는 나를 닮으라’(고전4:16)고 말했던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자기 포기가 제자가 가는 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교만한 자는 ‘자기중심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겸손한 자는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일에 연습하고 단련하고 훈련하는 사람이 좋은 일꾼입니다. 그분처럼 겸손하고 섬기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그분처럼 사는 사람이 좋은 일꾼이요 이런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오클라호마중앙장로교회은 좋은 일꾼들이 가득한 좋은 교회가 되어서 주님의 칭찬을 받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