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ke 2: 1-14 The Baby Lying in a Manger, Wrapped in Swaddling Cloths
1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하였으니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본명 Gaius Octavius. BC 63-AD 14)”는 탁월한 지도자력으로 주변의 모든 나라를 장악하며, 통치하며, 질서를 잡아 갔습니다. 그가 탁월한 지도력을 가졌다는 말은 그가 내세웠던 관용정책과 개혁정책 그리고 평화정책때문에 전쟁은 줄고 안정화가 되었습니다.
그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통치하면서도 그 나라의 문화와 종교와 풍습 그리고 심지어 자치적으로 행정 할 수 있도록 법률까지도 위협이 되지 않는 이상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정치적으로는 로마 원로원들이 그에게 “초대황제”로 임명하고, “아구스도(존경받을자)”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그에게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 가장 높은 주교), “하이 프리스트(Highest Priest: 대제사장)”이라는 칭호까지 붙여준 것입니다. 가이사 황제는 정치와 종교의 최고 왕, 최고 대제사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탁월한 황제라고 해도 인간인지라 “더 통제하려는 욕심”과 “반대세력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그 이유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1절에서 거론하는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 속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호적을 하는 것은 인구조사입니다. 그 당시 인구조사는 가족, 형제관계를 조사하는 것뿐 아니라, 재산이 얼마인지까지 조사한 것입니다. 황제가 이렇게 호적 즉 인구조사를 하게 되었던 3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1) 세금징수 목적입니다. 2) 군사조직 목적입니다. 그리고 3) 사회통제 목적입니다. 이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면 정책적으로는 다스리기 좋고, 심리적으로는 평안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이때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 안에 있던 나라들은 반로마제국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고 가이사 황제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무질서를 바로 잡기위해서 호적 인구조사를 하여야했고 한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해나갔던 것이었습니다.
교훈) 세상 왕은 제국을 끌고 갈 수 없다.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오직 인류의 만왕의 왕이요 큰 대제사장되신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만 망하지 않는 나라를 이룰 수 있었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도, 가정에도, 직장에도, 교회에도, 나라와 지구촌에 진정한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구레뇨는 황제로부터 수리아에 파송된 총독입니다. 헤롯왕이 팔레스틴의 분봉왕으로 파송된것처럼, 구레뇨는 수리아의 총독으로 파송된 것입니다. 구레뇨가 황제의 눈에 들게 된 이유는 그가 한때 갈라디아 남쪽에 있던 산적떼를 소탕했던 공로가 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구레뇨는 황제의 명령에 충성할 적격자였고, 그 당시 나라 안팎에 어수선하니 그를 수리아 총독으로 파송하여 황제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도록 보낸 것이었습니다.
교훈) 황제가 아무리 감독을 세우고, 분봉왕을 세우고, 총독을 세워도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세상은 아무리 거대한 제국을 이룬다해도 하나님이 운행하시며 섭리하시고 성취하십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황제의 탁월함과 구레뇨의 충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이 말하고자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큰 그림으로, 더 높은 자리에서, 더 깊은 곳 마음속까지도 들어가 “하나님께서 비밀리에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위하여…
지난 주간에 주일날에 대한 설교 메시지를 묵상하던 중에 오늘 본문 말씀이 그림처럼 지나갔습니다. 본문 7, 12절의 나오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이 한폭의 그림처럼 그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이 땅에 첫 탄생이 말구유셨다고 생각하니깐, 인간적으로 너무 너무 안스러운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사 세상을 구원하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니깐, 나도 예수님처럼 내게 작은 구유가 주어진다해도 예수님탄생안에서 영광라는 생각이 나를 압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용)하나님 왜 내게 저런 아내를 주셨습니까? 왜 저런 남편주셨습니까? 저런 부모, 저런자식주셨습니까? 예수안에 영광인줄 알아라! 너한테 맞는 그만한 사람 또 없다!!)
3-5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희망을 품고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번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난 사람은 새희망을 품게 되는데, 새희망을 품은 사람은 더욱 간절하고, 더욱 두려움을 갖게 되고, 더욱 내면의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증거되는 뱃속의 아기는 새희망 정도가 아닙니다. 요셉도 천사를 통하여 이 아이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마1:21), 마리아도 천사를 통하여 이 아이가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눅1:35). 그러니 뱃속의 하나님의 아들을 품고 있는 마리아와 요셉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자들이었습니다.
저는 레리 워너의 저니 위드 지저스(Larry Warner의 Journey With Jesus)를 1달간 매일 일기를 쓰면서 계속 내 마음의 문을 노크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제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것과 둘째는 인간과의 관계가 실감, 공감, 친근감이 부족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달간 시도 써보고, 감사도 해보고, 찬양도 불러보고, 영이 지쳐 침상에 누워 주님을 경험도 해보면서 주와 동행하던 한달이었습니다. 책을 덮어놓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내게 한마디로 주시는 말씀이 있다면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정말, 딱 한마디만 하라면 그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만삭한 몸으로 고향길에 오른 것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황제의 명령이기에 가야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길이 하나님의 거대한 통치와 계획과 성경안에 약속한 길이었습니다. 미가서5: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먼옛날)에, 태초(영원전부터 정하신 날부터)에니라”하신 성경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던 길이었습니다.
적용)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거대한 통치를 받고 있고, 우리의 가고자 하는 길보다, 하나님이 가게하시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황제를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그 길이 원치 않는 길이라고해도 비관할 이유도 없습니다. 예) 지난주, 강창성집사를 보니깐, 유모차를 들고, 아기도 들고, 아기 기저귀 가방도 들고, 참 불편하고 무거운 짐을 안고 사는 구나 생각을 했는데 저는 그만큼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인생을 죽지못해 사는 사람처럼 살지 않는 이유는 새생명 때문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하러 가는데 마리아가 만삭입니다. 마리아는 당신 혼자 갔다오세요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요셉은 인생을 비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 모든 걸음걸음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가기 싫은 길일지라도 “예수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6-7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없음이러라
성탄절이 과연 12월 25일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변은 없습니다. 4세기에는 1월6일을 기념일로 정했지만, 5세기 어거스틴(Augustine, AD 354-430)이 12월 25일에 성탄설을 주장했고, 그 외의 설은 이교도들이 12월25일에 축제가 있었기에 초대 기독교가 우리도 그들과 맞서 성탄절을 하겠다는 이야기 정도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설이 있어도 우리는 기독교가 정한 12월 25일을 기념하여 세상속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계기로 성탄절을 지켜가야야 합니다. 이것은 날짜의 의미보다 성탄의 의미를 담고 지내야 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위하여 오신 날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중 성자하나님이고,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런 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신경써야할 것이지만 아기 예수님을 말먹이통에 누일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왜 그렇게 아기 예수님을 형편없이 모셨느냐에 상황에 중점을 두지 않습니다. 성자하나님 아기예수님이 낮고 낮은 곳에 오셨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싸우고, 불평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에 집중해야합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가면 참소망이 있습니다.
8-14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비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하니라
세상은 모두가 화려한 궁전에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영광과 평화가 없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거짓과 죽음의 그림자만 점점 드리울 뿐입니다. 헤롯왕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동방의 박사들로부터 듣고는 세상으로부터 얻는 자신의 영광과 평화에 흠이 갈까싶어 아기 메시야를 죽이려고 베들레헴과 그 일대 마을의 2살 아래 아기들을 다 죽이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마2:16)
예수님 없는 현대인들은 예수님께 집중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목하기를 바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이 천하게 여기는 목자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왜 이렇게 기쁨인지요! 천사가 전해준 탄생소식에 기뻐했고, 천군 천사가 하늘 빼곡히 나타나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부르고 하늘위로 올라갔는데, 목자들은 빨리 찾아 나섰고, 찾은 후에 천사의 말과 실제사건이 눈앞에 일어난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은 마을을 다니거나 어디를 가든지 복음전하는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Ex. 아들은 이번 선교프로젝트 성탄행사가 기존에 해왔던 행사들 중에서 가장 많은 현지인들이 참석했다고 기뻐 좋아하며 연락왔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나라에서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성탄행사겠다는 생각을 하니깐, 이들이 바로 오늘날 작은 목자들로 살고 있다고 믿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성탄절은 마음을 높은 곳에 두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찾아가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가 살아간다면 더욱 영광스러운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기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안에 살고 있고, 하나님의 계획속에 길을 걸어가고 있음에도 성령의 음성을 듣지못하고, 세상의 것들로 마음의 눈을 돌려 살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집중하며,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탄생하신 우리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