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일은 녹화음성 상태가 불량하여 업로드 못한점 양해를 구합니다.
창13:14-18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genesis 13:14-18 Lift up your eyes from where you are and look north and south, east and west.
유대의 저명한 역사학자였던 요세푸스는 아브람이 자연의 이치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던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세상속에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나뭇잎 하나하나 다르고, 해달별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과목들은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곡물들은 스스로 자라나 곡식을 만들어가고,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생태계를 보면서, 이것은 필시 어떤 분이 설계하고, 감독하고, 지배하고, 주인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자연적으로 만물이 움직이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손이 주관하시는 것을 보는 사람이고, 사람이 일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믿는 하나님이 우리 각 자 각 자를 통하여 넓고-높고-깊게 또 빠르고-정확하고-안전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순수한 사람은 살아갈수록 불순물을 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
요세푸스가 전해주는 유대 역사의 전승에 보면, 아브람은 우상이 정말 싫었지만, 아버지의 명령이었고, 가정의 생계의 수단이었기에 우상을 만들어 팔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우상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상을 사려고 오면 “왜, 당신은 만든지 몇일도 안되는 우상에게 지혜를 구하느냐”며 면박을 줍니다. 그러면 사려던 사람들은 무안해하며 그냥 돌아가버린다고 했습니다. 이러니 아브람은 우상으로 밥벌어먹기는 걸렀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없을 때 아브람은 우상을 모조리 부숴버렸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와 이 난장판의 사연을 물으니 아브람이 하는 말이 “우상들이 살아나더니 서로 움직이면서 자기가 잘났다고 싸움질을 하다가 자기들끼리 부숴버렸어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때 아버지의 말씀이 “우상이 어떻게 움직이며, 우상이 어떻게 싸우느냐”했더니, 아브람이 하는 말이 “그러게요, 우리는 이런 죽은 우상을 만들어 팔고 있으니 이 얼마나 헛된 장사꾼들 아니겠어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함께 했던 조카도 여호와의 동산 같은 소돔 땅에 가버리고 홀로 남아 있던 그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하시며 네가 일어나 종과 횡, 어디라도 하나님의 약속하심안에서 걸어가면 그곳을 내가 네게 주리라-하셨습니다. 이 약속하신 말씀으로 첫주일을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이야기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본문, 창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라고 했습니다.
창12:1-5.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시는 말씀에 순종하였고 그 순종은 믿음이 되고 많은 후손의 믿음의 조상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비전 곧 하나님의 비전과 꿈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흔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세상이 원하는 넓은 길을 가려하지, 좁은 길을 가려는 사람은 잘 없기때문입니다. 그럴때 롯은 삼촌 아브라함의 이상과 꿈과 비전을 함께하며 시작한 개척맴버였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그만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곳을 찾기까지 너무 멀고 긴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자신이 삼촌이라는 높은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현실적으로 자신도 자립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고,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니깐 하나님의 약속하신 곳보다 더 좋은 소돔 땅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 보여주는 외형적 사건 너머에 있는 롯의 내면의 진실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의 헤어짐은 [자기의 종과 아브라함의 종이 싸운 것 때문이라는 갈등보다,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것의 나눔이었고, 물과 기름의 나눔이었고, 육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의 나눔이었고, 세상적 안목과 하나님 나라의 안목과의 나눔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부르신 자들은 의롭다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는 로마서8장30절 말씀대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함께 했던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떠날 것입니다. 떠날 때 좋게 떠나는 것은 쉽지 않기에: 그 계기가 다툼으로 떠나지말고, 재산권분쟁 때문에 떠나지말고, 분파 때문에 떠나지 말고, 서로의 관계가 어그러진채로 떠나지 말고, 하나님과 사람들의 축복속에서 떠날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사랑받으며 떠나야합니다. 서로 감사하면서 떠나야 합니다.
다시 창13:14을 보시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고 그의 우울한 마음속에 3가지 비전의 말씀을 주시며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첫째는 “14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얼마전에,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시무룩해하는 친구에게 이 말씀을 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고, 너는 하 나님의 사람이고, 너를 통하여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니 걸어보라”고 했습니다. 아멘 아멘 힘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몰랐습니다! 오늘 우리도 떠나보냄을 경험한 자들에게 주시는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라함은 양보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좀 심각하게 생각해보면, 애굽왕에게 아내를 양보하고, 그랄 왕에게 아내를 양보하고, 롯에게 선택할 권리를 양보하고, 서로의 재산권, 우물쟁취권에서도 양보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양보심이 많은 사람이 있어서 손해보고나서 후회하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후회까지는 하지 말아도 되는 이유는 더 좋은 땅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하신 말씀을 주셨습니다. [질문1] 16절을 잘 보시면 누가 이 일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내가 즉 하나님이 너의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신 것입니다. [질문2] 16절을 다시보시면,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는 말씀은 사람이 땅의 티끌을 셀 수있다는 말씀입니까 설명해보세요? (이 말씀은 사람이 티끌을 셀수 없다는 반어법을 쓰면서 사람으로는 땅의 티끌을 절대로 셀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와같이 사람으로는 셀수없는 땅의 티끌처럼 너의 자손을 이와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주시겠다). [질문3] 하나님은 왜 사람으로 셀 수 없는 일을 하시겠다고 하시면서 아브라함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었습니까? (믿음). a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믿음; b 양보했어도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는 믿음; c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건이 로마서4:17-18절에 성취되고 선포되었음을 듣지 못했어도 여전히 인생의 여정속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미’ 하나님안에서 성취되고 선포되어었었어도, ‘아직’ 그 과정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안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고,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기대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상만 주시지 않습니다. 이상을 주실때는 반드시 그에 맞는 테스트를 제공하십니다. 예를 들면, 양털을 땅에 다 두고 양털에만 이슬을 내리게 해달라고 했더니 정말 이튿날 양털에만 이슬이 내려고, 다음날에는 땅에만 이슬이 내리게 해달라고 했더니 정말 땅에만 이슬이 내렸던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기드온의 의심에 대한 하나님의 징표중에서…)
하나님은 의심하는 성도에게 확신을 주시려는 테스트를 하라고 하십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하나님은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행으로 행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왜, “해보라”고 하셨습니까? (확신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상적인 신앙을 현실적인 신앙에서 움직이게 하는 보조적 기구와 같은 것입니다. Ex.1) 우리가 계단을 내려갈 때 다리에 힘이 빠지면 계단 손잡이를 잡듯이; 우리가 화장실에가면 쓰러지지 말라고 달려있는 보조 손잡이를 잡듯이; 하나님은 확신이라는 보조 손잡이를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에 확신할 수 있는 증거를 달게 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보조 손잡이가 없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더욱 복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2)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때 도마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없는 자가 되지말고 믿는 자가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느 자들은 복되도다하시니라” 요요20:27-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안목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만날때 축복 떠날 때 축복받는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헤어짐의 우울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과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음 그리고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을 붙잡고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자리에서 예배를 쌓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형통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만세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려 택하여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우상만 섬기다가 죽었을 인생이었는데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부르시고 의롭게하시고 영화롭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영광스런 예배의 자리들이 하나님앞에 더 좋은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과정이 구원의 손잡이가 되어 어려울 때, 낙심될때 일어 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더욱이 우리는 우리에게 오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담대하게 전진할 수 있는 한해의 첫발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시기위하여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사 생명주신 우리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