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네 손을 내밀라
본문
막3장1-6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4-01-14

막3:1-6 “네 손을 내밀라!”

Mark 3:1-6 “Stretch out your hand

 

본문의 나오는 “한편 손마른 사람”은 뇌손상으로 말미암은 중풍병이라기보다는 혈액과 관련된 근육기능상실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의사가 직업이었던 누가는 그가 중풍병때문인지 근육상실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양편 손 중에서 “오른손 마른 사람”이라고 조금 설명을 덧붙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손을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연약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몸에 붙어 있어도 내가 마음대로 못하는 지체가 있다면 그것처럼 불편해 보이지 않을 수 없을텐데, 본문의 나오는 손마른 사람은 불편함 때문에 상실되어가는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외경에보면, 그는 손기술로 생계를 이어가던 석수장이 직업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손에 힘을 쓸수가 없어 집안을 꾸려가야할 생계가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구걸하며 먹고 살아가야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구가 고침받기위하여 간절했을 것으로 예상해보았습니다. 

 

지난주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어떤 자매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목사님, 혈액수치가 나빠졌어요 기도해주세요!”; “네 자매님이 주셨던 수세미를 보면서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삼일째 되는날 저녁에 다시 메시지가 왔습니다. "목사님, 오늘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혈액의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병원에서 연락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입니다! 조만간 교회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하고 너무 밝은 모습으로 결과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믿음으로 우리의 마른 손을 내밀어 회복을 경험하며 다시 삶의 온전하 회복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내기를 바라며 말씀증거하겠습니다. 

 

막3: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일하시고자 하시는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회당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회당을 중심으로 사역하고 계셨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적용) 우리가 직장이 힘들어도 다시 직장에 가는 것처럼, 학교가기 싫어도 다시 일어나 학교가야하는 것처럼, 주일날은 쉬고 싶을텐데 하나님을 예배해야하는 의무가 있기에 다시 일어나 교회로 가야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다시 회당에 가셨습니다. 그 당시 회당의 기능은 종교적, 신앙적, 사회적, 교육적, 심리적 심지어 법적인 재판장소로까지 사용되었던 곳입니다. 

 

그날 그 시간에 ‘한쪽 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여 손이 축쳐져 힘이 빠져 있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전에도 쭉 있었는지, 아니면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간절함으로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보라고 권유했는지, 아니면 악한 의도로 병자를 안식일날 갖다 놓고 예수의 동향을 살펴 송사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오늘 주목해볼 사항은 그런 여러가지 상황에서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편 손마른 사람”의 바램은 예수 만나 고침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일할 수 있고, 가족들이 더 이상 빌어먹지 않아도 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3: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곳에 있던 ‘한편 손마른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란 표현은 참 애매모호합니다. 그 사람들이 회당에 모인 전체 사람인지, 아니면 바리새인들과 서긴관들을 말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체 문맥을 보면 부분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누가는 누가복음에 “사람들”이란 말을 쓰지 않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하려고 엿보고 있었습니다.

 

회당에는 종교,사회,신앙생활,법적인 행사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치유, 회복, 쉼, 참된 안식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참된 안식을 말씀하셨고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보지 못한 한가지 이야기가 마태복음에서 마태는 기록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2장12:9절에보면 오늘 우리가 보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곳에는 이런 비유를 적용하시며 손마른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 비유는 마12: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그 손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고, 그 사람은 고립에 빠져 구원을 요청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회당중심에 매인 사람, 율법에 묶인 사람, 전통에 목숨 거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역을 면밀하게 감독하며 살펴 법적으로 올무를 만들어 신고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것이 이런 종교적 행사로 다닌다면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저 통제와 감시로 살면서 예수님의 사역에 반감만 가질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서있느냐에 따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우리가정이, 우리교회가) 행하는 일이 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하느냐?

 

막3: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일어나서 가운데로 가라)하시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무리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모를리 없었고 도리어 그들이 숨어 지켜 감시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드러내 놓고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그들의 비판과 정죄와 통제가 들어오실 것을 아시면서도, 손 마른 사람을 무대 중심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적용)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법한데 이  손 마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무대 중심으로 나섰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자신의 연약한 것들을 이겨나가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연약함을 이기고 무대중심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믿음은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서게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합니다. 믿음은 굳어버린 근육을 다시깨우게 합니다. 믿음은 가슴 뛰게 합니다. 

 

막3: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말도 맞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주장처럼 율법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율법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인위적인 규정으로 해석하며, 자기 중심적으로만 전통화- 절대화까지 시켜버렸습니다. (그런 해석으로는 결국 선택된 민족(선민)으로 한정되며 그들이 죄인이라고 여기며 또 이방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은 전혀 율법과 상관없는 자로 만들어버려, 자신의 하나님으로만 만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경시하게 된다는 것을 간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생명을 죽이려는데 있지 않고 예수안에서 생명을 회복시키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왜곡했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잘못된 해석을 주장했지만 예수님은 왜곡된 해석을 교정하시며 율법의 바른 해석으로 생명을 회복시켜야 올바른 율법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막2:27절에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말하면, 사람나고 율법이 생긴것이지, 율법이 생기고 사람이 나지 않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마만큼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경시 여기는 자들에게 율법이 얼마나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신 이 땅에서 자신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안에서 완전하게 회복되는지 보여주시려고 말씀을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적용) 어쩌면 오늘 우리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의 정신이 통제와 감시로 작용하고 있다면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을 회복시키는 일에 동참하며,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방향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막3: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예수님의 근심과 노하심은 일반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감정은 인간 대 인간의 불완전한 감정 때문에 더 큰 불화를 만들 위험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의 감정은 신 대 인간으로서의 작용이기에 더 온전하 회복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입니다. 회복이란 이전 상태로 완전히 돌아오게 하는 뜻입니다. 적용) 오늘 우리가 한쪽 손이 마른 것처럼 살아가는 삶의 불구자, 마음의 불구자, 정신의 불구자가 있다면 내가 처한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앞으로 인도하심을 받으신다면, 자신을 그 말씀 앞에 일어서 무대의 중심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손을 내밀 때 예수님은 그 말씀에 힘입어 믿음으로 손을 내민 자에게 회복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이런 회복을 눈으로 보면서도 바리새인들은 6절말씀에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고 했으니 여전히 악한 자는 더 악한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선한자는 여전히 선한 곳으로 나아가 회복과 영화를 누리게 되어졌습니다. 적용)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는지, 잘 알 수 도, 모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이용하려는 자들을 개의치 마시고 예수님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예수님은 나의 한편의 불구를 온전하게 회복시키실것입니다! 

이 한주간을 살아가시면 여러분의 삶을 예수님께 내려놓으십시오. 삶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예수님께 내려놓으시기바랍니다. 가정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기도

주여, 오늘 우리의 굳어진 근육에 말씀하시며, 힘을 잃은 손에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힘을 잃어버린 손 때문에 가정도, 직장도, 마음도, 몸도 힘을 잃었사오니… 저를 영적 무대중심으로 불러주시고 일어서게하시고 순종하게하셔서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손을 내밀고 쫙 펼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주여 믿음을 주시며, 힘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를 주님앞에 맡겨드리오니 주여 말씀하사 믿음으로 움직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의 구원의주요 회복의 치유자 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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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하나님의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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