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본문
히11장8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4-01-28

히11:8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Hebrews 11:8 ”Ancestor Abraham of Faith”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기초를 이루는 조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이야기할 때 아브라함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빠지면 그 믿음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하고, 표적을 보여준들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특별히 4복음서 속에 예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거론하실 때 유대인들의 혈통과 문화와 역사 그리고 종교의 중심에서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은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곡해해서 믿었다는 것이고, 그렇게 치우쳐 믿은 신앙 때문에 예수님과 늘 부딪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1:1(눅3:34)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17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예수님의 족보속에 아브라함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야하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계획속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구원자로 오셨기때문이었습니다.

 

마3:9(눅3:8)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계층 이기 때문에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시말햇, 그들은 구원받을 수 밖에없는 민족으로 태어났다고 우쭐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롬2:28절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들은 유대인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생각을 뒤집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형식적으로 믿는다고 예수님은 말하기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것이라고 하셨기때문입니다.

 

마8:11(눅13:28)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님은 유대인이 아닌 자들의 믿음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많고, 오히려 본 자손들 곧 유대인들의 믿음은 구원받을 가능성을 약화시켰기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믿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정말 열받는 이야기였습니다. 

백부장 같은 사람은 이방인이이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하인의 병을 고칠 수 있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 그럼 제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는 믿음을 고백이 예수님에게는 구원의 빙거가 되었기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대인들 곧 이스라엘 전체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구원받는 조건이 합법적인 상속권과 혈통적으로 태어난 민족으로 당연히 구원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만으로 천국 갈 수 없고, “오직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신약 4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구절들이 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22:32(막12:26); 눅1:55; 눅1:73, 눅3:8; 눅13:16; 28; 눅16:22-30; 눅19:9; 눅20:37; 요8:33-40; 8:58…)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표상(representation of faith)”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히11:8절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얼마나 소망이며, 위로이며, 치료가되시며, 다시 믿음의 전진을 이루는지 살펴보면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부르심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하나님의 때였고, 그 부르신이가 하나님이셨고, 그 대상이 수많은 사람중에 특별한 점 전혀없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 방식은 전적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부름받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29절에보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서 어떤 부족함이 보이더라도 결코 돌이켜 “내가 잘못했네! 내가 이런 놈을 괜히 불렀네! 내가 미친 놈이지! 내가 왜 그랬을까!”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비록 그가 부족해보여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끝까지 함께하시며 도우셨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자를 통하여 영광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을 묵상하면 그의 대부분의 서신서들에 서두에는 자기가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고전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라고 했고, 고후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이라 했고, 갈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에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부름받은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 그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부르심에 끌려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내가 알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알아간 것이었습니다. 그 믿음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이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받은 부르심을 다시 생각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하나님이 명령하셨고, 하나님이 주신 부르심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각자에게 주신 부르심의 소명이 있습니다. 그 부르심의 소명이 하나님께로부터라면 결코 하나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않으시며 도우실 것입니다. 

 

순종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은 순종과 함께 할 때 그 믿음은 굉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안하면서 믿음을 강조하면 죽은 믿음입니다. 믿습니다라고 말은 하면서 믿은대로 살아가지못할 때 발생하는 공백은 권리만 주장하고 의미는 이행하지않는 것과 같습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순종과 함께 일합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그의 서신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2:14-2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습니다(22)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온전했다거나, 그의 삶의 모든 행실이 온전했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부족해보여도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은 잘못된 길로 가지 않습니다. 비록 잘못 길을 갔을 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하고 돌이켜 순종함으로 돌아서게 하십니다.

 

시편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했는데, 우리가 그릇된 길을 선택하여 들어섰을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 곧 위로하신다. 안심시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심한 돌보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할 수 없게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 어떤 것들이 여러분의 발목을 잡고 하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까? …환경 …마음 …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은 악한 길로 갈수없고, 가지 않습니다. 비록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지 않고 ”사망의 음침한 길”로 들어섰을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지팡이(인도)와 막대기(보호)하시는 방법을 사용하시며 두려운 길을 지나가게 하십니다. 그것은 어쩌면 램블란트의 “탕자의 귀향”이란 작품에서 보듯이 탕자를 다시 끌어안으시는 아버지의 왼손과 오른손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망을 통하여 가르쳐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왼손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어둠속으로 몰아넣으시고는 하나님을 찾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통을 통하여 가르쳐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른손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빛을 떠날 수 없게 하십니다. 어느때를 살아가게 하시든지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신 자에게는 순종하게 하십니다.

 

나아감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업은 육신적으로는 가나안땅입니다. 영적으로 천국입니다. 가나안을 가기위해 싸워야하고 싸우면서 잃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쟁취하여 얻어지는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힘써 싸워야할 영적싸움이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천국을 쟁취하기위한 피터지는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영적싸움은 육신적싸움보다 치열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전쟁이기때문입니다.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며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의 스타일을 보면 다 알고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대로 자기 가는 길을 설명하지 못하면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바를 알지못하고 나갔다”는 말씀은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누가 요즘 현대인들이 이런 사람을 따르겠습니까? 정말 순진한 사람아니고서는 아브라함의 지도력에 딴지를 걸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못하고 나갔다고 했습니다.

 

저의 리더십속에도 이런 면이 종종 보일때가 있습니다. “무작정 하는 것”말입니다. 그래서 장로님들이 황당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이 그런 저를 잘 따라주시는 것을 보면 저 자신에게 말을 합니다. “그래,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나 같은 자를 뭘 믿고 따르시는지는 모르지만 저들을 더욱 사랑하자! 나도 저들을 더욱 신뢰하자! 끝가지 함께하며 저들이 어려울 때 저들의 방패가 되어주자!” 아브라함의 삶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장래가 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약속하신 기업이 있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믿음으로 쟁취하는 자의 것이 될것입니다.

 

기도

하나님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의 부르심과 믿음의 순종 그리고 믿음의 나아감을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나아가고자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지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믿음을 더하여 주사 전진하게 하여주옵소서! 우리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신 우리구주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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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하나님의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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