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예수님을 태우며 걸을 때는,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 옷을 벗어 깔아주었는데
오늘은 누구도 환호해주지않았고, 옷을 깔아주지않더랍니다.
어떤 사람은 때리면서 “멍청아, 왜 이런 복잡한 거리를 다니느냐?”며 때렸습니다.
나귀새끼는 “겉옷을 깔아! 내가 누군지 몰라?” 사람들은 깜짝놀랐습니다. 뭐라 우는 거야?
너무 섭섭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 엄마나귀에게 말했습니다.
시장거리를 갔더니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않았어요! 흑흑! 저리가라고하고 때렸어요!
엄마나귀는 새끼나귀에게 부드럽게 말하기를
“그건 니가 잘나서 종려나무를 흔들며 환호한게 아니라, 네 등에 주님이 타고 계셨기때문이란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도움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의 영광없으면 부활의 영광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자의 영광이란 말씀으로
한 알의 밀알예수님, 따름과 머뭄, 끌림과 빛의 아들이란 내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첫째. 한 알의 밀알 되신 예수님(20-25)
명절날이 가까워왔고 헬라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여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1)헬라는 철학,사상,우상의 도시입니다.(고후10:1-6
2)바울이 헬라의 수도 아테네에서 전도할 때, 그들은 복음을 새교리취급, 호기심으로취급, 금방식상해하며 또 새로운지식을 추구했습니다.
헬라의 상업도시 고린도를 전도할 때, 그들의 견고한진, 모든이론, 하나님대적하는 생각을 깨려고 엄청노력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철학,사상,우상을 깨기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병기삼지않고는 이길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 헬라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해서 예배드린다고 예루살렘으로 왔는데
사람들의 이유가 죽은자 살리셨다는 예수에게 맞춰져있다보니
헬라의 기본 본성? 새 지식에대한 호기심으로 예수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예수님은 헬라인을 직접만나대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궁금해하던 것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의 뜻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하시며 “한알의 밀알”비유를 하셨습니다.
헬라인들이 알고자하는 지적호기심과도 상관없는 말씀이었고,
유대인들이 믿고자하는 정치적/기적적인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주변으로 둘러쌓고 있는 무리들을 향하여 던진 말씀은 인자의 영광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래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이 그들과 상관없는 말씀같아보여도
헬라인들의 지적종교성을깨고, 유대인들의 정치적환상을 깨고 구원얻기에 충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한알의 밀알비유를 깨닫지 못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알의 밀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수많은 영혼을 살리는 것”을 몰랐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생명을 잃을 것이고,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보존하리라”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시대에 이런 말씀은 존중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면은; 영생천국얻으려면은; 자기를 부인하고 미워하지않으면 안되었기에;
Ex)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가려면 두발다 올려야합니다 한발땅, 한발비행기로는 갈수없습니다.
마치 영생천국은 세상을끊어야 갈수있듯이, 다시 태어나기위해서는, 주님따르기위해서는 미워하지않으면 끊을 수가 없기때문입니다. 성숙한미움, 구원적미움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한알의 밀알로 이땅에오셔서 죽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셨고
자기생명을 미워하심으로 영생부활로 하늘에 올리우심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인자의 영광이요 인자의 영광을 믿는 우리들의 영광이 될때 그의 영광이 곧 우리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따르는 자와 예수님 곁에 머무는 자(26)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쉬운 삶이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그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ㅡ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내가 예수님을 따르느냐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다가 지치고 힘드시면 예수 계신 곳에 내가 그냥 있으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섬겨야하고 내가 따라야한다는 행위가 강조되는 것만이 구원을 이루는 것만이 아니라
힘들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섬기는 자가 머물러 있는 것도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아버지께 존귀함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문에는 따르는 것과 머무는 것을 동일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부엌에서 일하다가 은혜받고 변화되고,
마리아는 주의 말씀앞에 말씀듣다가 은혜받고 귀중한 향유를 드리는 일을 하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는 항상 주의 일을 한뿐아니라 주의 곁에 머무름으로 새은혜를 받는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 끌려 빛의 아들로 살아가십시오(27-36)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자신이 당할 십자가의 고통 때문에 괴로워(당황,동요,혼란)했습니다.
예수님도 육체를 가지신 온전하신 사람이었기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를 더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께 맡기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육체로는 이 때를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사명은 “내가 이 때에 왔으니ㅡ보내신자ㅡ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만의 고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온 시련의 순간에
육신으로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꿀뚝같지만
나를 보내사 이 땅에서 이루시고자하시는 부르심의 동기와 바라심의 목적이 있기에
이끌리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자리가 육체의 고민과 하늘의 영광 중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이끌림에 주목하시며; 우리가 예수님께로 이끌림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영광의 자리를 만들 수 있게 되실 것입니다.
27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자석을 모레밭 깊이 넣으면 모레밭속에 있던 철가루들이 자석을 향하여 반응합니다. 그리고 자석이 당기는 힘에 끌려 그에게 집중하죠! 그러다가 자석을 공중위로 올리면 끌려 올라가는 철가루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끌림이고 이것이 마지막날 일어날 현상이고, 이것이 오늘 모래밭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인자가 들릴 때 어둠의 손아귀에서 풀려나고 빛으로 나아가 빛의 아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