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의 선교적 연구
1. 시작하면서
현재 파라과이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수고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나름대로 각 교단으로 부터 파송받아 교포와 원주민 선교를 감당하고 있지만 파라과이를 깊이 이해하고 그 토대로 일을 시작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편이다.
본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본인이 약 3년을 넘게 파라과이에서 생활하면서 한인 교회와 원주민들을 접촉하며 선교하면서 파라과이를 잘 소개할 수 있는 선교적 길잡이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략적인 요약을 해본다.
2. 파라과이는 어떤 나라일까?
1) 일반적인 개요
① 파라과의 주요 변천사
파라과이 나라의 이름은 파라과이 땅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파라과이 강에서 연유된다. 파라과이 역사는 콜롬부스가 1492년에 남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미 파라과이에는 인디언부족들이 살고 있었고 그 부족의 대부분들이 과라니 족이었다. 1525년 스페인인의 A. 가르시아가 그의 일행과 함께 과라니족 거주지에 발을 들여 놓았으며, 1536-56년까지 식민지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고,원주민 과라니족은 농장이나 목장에서 혹사당하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원주민들을 그들의 노동력으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은 정략적으로 원주민 여자와 결혼함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메스티조 종족) 그 이후 1588년 제수이트 교단이 신정국가를 건설하는 목적으로 포교활동을 하였으며,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언어와 농업기술등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명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도 원주민을 착취하였다.(1776년까지) 이런 제수이트 사람들의 특권은 다른 스페인 태생의 불만을 불러 일으켰고 1719년에서 35년까지 이른바 코무네로스의 혁명으로 이어졌고 1811년 P.J 카발레로와 예그로스가 이끄는 메스티조 민병대가 스페인 총독을 축출함으로 독립을 획득하였다. 독립후 로드리게스 프란시아(1813-40)를 중심으로 강력한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부터 경제적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쇄국정책을 실시, 농지개혁 단행,농민에게 토지분배. 공립학교를 창설하는등 문맹퇴치에 힘썼다. 그 후 Carlos Antonio Lopez(41-62) 에 의한 독재체재 아래에서 개방 정책이 취해져 외국자본에 의한 국력 증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62년 대통령이 된 프란시스코 Solano Lopez는 영토확장의 야망으로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다. 64년 -69년 까지 6년간의 걸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삼국 동맹) 와의 전쟁에서 파라과이는 전인구의 1/2, 남자의 9/10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많은 땅을 상실하였다.( 전쟁후 남자 인구 2만 8000명, 전체인구가 130만에서 22만으로 격감). 이 3국동맹 전쟁후 파라과이는 차코 지방의 개척에 착수 하였고 이것은 그곳 지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볼리비아의 남진 정책과 충돌하게 되었으며 1932- 1935년 까지 볼리비아와 전쟁이 벌어졌다. 많은 인명을 희생하였지만 차코지방의 3/4을 획득. 그후 여러차례 쿠테타가 발생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다가 54년 스트로에스네로 장군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35년 동안 대통령위에 있었음. 그후 1989년 로드리게스장군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장악, 독재정치 이후 1993년 5월 첫 민간 대통령 와스모시 출범.
② 인구 (인구 밀도. 인구증가율. 평균수명. 연령 분포도)
국가 면적에 비하면 인구가 너무 적어 국가 경제에 많은 손실을 주고 있음. 약 475만명 인구밀도 역11명 평균 수명이 50세 정도(영아 사망율이 남미에서 제일 높은 편임)
③ 기후/온도
아열대성 기후로 고온 다습하며 뚜렷한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없으며 한국의 겨울인 12월 부터 2월까지는 가장 무더운 날씨이며 10월 11월에는 비가 많이 온다. 연평균기온이 섭씨 24이다.
④ 민족 구성 (종족.위치 .인구)
인디언 부족의 대표가 되는 과라니 부족과 스페인 사람들과의 사이에 태어난 메스티조인들이 약 85%를 형성하고 있으며 나머지 과라니족과 다른 원주민이 8%를 차지하고. 나머지 7%는 유럽계통 백인들이다.
⑤ 언어(사용언어. 공용어)
공용어는 스페인어 이며 과라니어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과라니어가 자유롭게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⑥ 경제
ⓐ 주업: 넓은 평원을 이용한 농업과 목축업이다.
ⓑ 수입: 거의 모든 공산품들이다.
ⓒ 생산물: 소,양, 콩, 면화.
ⓓ 주 수입원/ 주 수출 (G.N.P):수입은 주로 모든 공산물이며 수출은 콩과 면화이다.
ⓔ 현대화 공공사업
2) 경제 상태
아직도 파라과이는 후진국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는 근본적인 경제 구조가 잘못된데서 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산업은 농업과 목축업이고 수출도 콩과 면화등 1차 산업에 크게 의존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마약이나 밀수를 통해 그들의 부를 확장해 가는 극단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브라질과 인접한 국경도시(델 에스떼)에 면세지역을 선포하고 지하 경제에 의존하던 것을 사실 경제로 발전시켜 볼려는 발버둥이 있지만 요즈음 브라질의 경계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① 국가적 및 지역적 경제 상태
② 빈부차(타 국가와의 비교): 빈 부의 차이가 너무나 심한 편이다. 보통 서민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생활을 부유층에 있는 사람은 마약이나 밀수등으로 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 가난에서 면치 못하고 있다. 1차 산업이 주가 되어 있지만 부지런히 농사지는 것도 아니다.
3) 생활 조건
① 의식주 상태: 극빈자들이 너무나 많은 관계로 전체적인 경제 수준은 후진국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자연히 의식주를 해결하기에 힘든 계층이 너무나 많으며 외곽지역에 사는 원주민(인디언)들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어 인디언들이 줄어들고 있는 지경이다. 주식은 만디오카 (고구마+감자와 비슷한 것)와 빵이다.
② 물,식수,전기: 많은 강들이 주변을 흐르고 있기 때문에 물은 풍부한 편이나 식수로 이용할 수 있는 상수도 시설은 빈약한 편이다. 주요 도시에는 상수도 시설이 되어 있지만 그외 지역은 우물을 이용하고 있다. 전기는 세계에서 제일 큰 수력 발전소를 브라질과 합작으로 건설하여 완공하였기 때문에 전력사정은 괜찮은 편이다.
③ 교통 수단:육로 교통이 발달되어 있으나 도로 사정은 나쁜 편이다. 수도와 다른 나라 도시를 잇는 정기 항공 노선은 몇개가 있으며 기차는 1개 노선이 있지만 장작 연료를 이용하는 세계에서 희귀한 기차이다.
④ 보건위생: 위생관념이 너무나 희박하다. 그래서 많은 풍토병과 전염병, 이로 인하여 유아 사망율이 높은 편이다. 마떼나 떼레레를 서로 돌아 가며 입을 대고 마시기 때문에 위생에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오염된 우물물을 식수로 이용하는 가정이 많다.
⑤ 개발정도: 아직도 후진국의 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토의 절반이 개발 가능한 토지로 이루어 있지만 그냥 버려두고 있는 실정이며 제 1차 산업에만 편중되어 있는 산업 구조 관계로 개발이 아주 느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4) 종교
① 종교현황
제 1종교: 카톨릭. 제 2종교: 개신교
② 종교적 세계관
③ 행동양식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 명확하지 않다. 거짓말을 자주하는 편이고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신뢰를 하기 힘들다.
5) 교육 현황: 교육의 수준이아주 낮은 편이다. 많은 학교가 부족하여 시골에 있는 아이들은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다.
① 학교 형태 :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은 학과에 따라 4년에서 6년 과정이 있다.
② 교육 수준 : 낮은 편이다. 첫째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 같다. 선생에 대한 처우 개선도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소신것 가르치며 자기 개발을 하는 교사가 드물다. 그러므로 교육수준은 한국보다 휠씬 낮은 편이다.
③ 문맹율 :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왜냐하면 이들은 늘 과라니만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과라니 언어는 말로서만 거의 표현하기 때문에 문자로는 어려우므로 잘 쓰지를 않는다. 가난하다 보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방치함으로 글을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음.
④ 교육의 문제점(도덕, 가족, 정치, 경제의 위기) : 도덕성에 문제가 많다. 많은 전쟁으로 인하여 남자가 희귀한 때도 있었는데 그래서 한 남자는 결혼 후에도 다른 여자와 사는 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3. 파라과이 선교 역사
1) 영국 성공회, 독일 형제 교회와 Menonta(재세례파)
파라과이의 개신교의 선교의 역사는 1920년경 영국 성공회에서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인디안들에게 복음을 전하는것으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선교는 오래가지 못하였고 곧 1923년경 독일 사람들이 이민 오면서 독일 형제 교회(hermano livre)와 Menonita(재세례파)를 이곳에 뿌리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생활은 그들이 집단적으로 이민와서 거주하는 차코지역을 중심으로 인디언과 가까운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인디언들을 중심으로 하는 농촌 선교였다. 그후 점차 도시 지역으로 확장하였지만 파라과이의 특수성 때문에 선교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후 독일이나 화란등지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형제 교회 멤버(Hermano libre)들이 카나다를 통해 이곳 파라과이로 많이 이민을 오게 되었고 그들의 이민은 경제적인 이익만이 아니었고 신앙을 지키려는 일환으로 파라과이에 많이 유입되면서 형제교회의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 그들은 인디언들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를 하였지만 점차 도시 지역으로 선교의 지역을 넓히면서 폭 넓게 선교하기 시작하여 이민을 온 종족치고는 파라과이에서 선교에 성공적인 열매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미국 남 침레교와 오순절 교회
그후 1943년 미국 남침례교가 이곳 파라과이에 본격적인 선교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도 처음에는 농촌으로 들어 갔지만 도시지역의 선교를 힘차게 감당하기 시작하여 1952년에는 수도 아순시온에 침례교 병원을 세웠고 그해 일반학교를 세워 다 방면의 선교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그후 1964년에는 신학교를 세워 일꾼 양성에 주력하면서 원주민 지도자를 세워 그들 스스로 교회를 섬기는 훈련에 하도록 했다. 현재까지 파라과이에서 가장 많은 교회를 보유하고 있는 교단이 바로 침례교인 것은 그들이 본격적인 원주민 지도자 양성을 위한 신학 교육을 일찍 시작하였다고 볼수 있다.
그 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오순절 운동의 펜타코스트 바람이 이곳 남미 전 지역에 불게 되었고 파라과이도 그 바람의 영향으로 오순절 교회들이 점점 불어나게 되었다. 오순절 교회의 예배형태와 소위 그들의 신앙생활이 이 남미 지역의 정서와 사람들의 특성에 일치하는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예를 든 다면 가령 한국이 복음을 받아 들인 이후 그 복음의 속도가 계속 불타게 된 것도 많은 목회자들이 한국민족이 당한 고난(한)이 복음을 빨리 더 뜨겁게 받아 들인 한 요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남미 지역에 오순절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 많은 교회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일어난 것도 이곳 사람들의 특유한 정서에 일치하는 오순절 신학(그 무엇) 있었기 때문에 펜타코스타 교회들이 짧은 시기에 급 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은 굉장한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현재 까지 오순절 계통의 교회가 많이 모이고 있으며 예배도 활기가 있다고들 말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약 80년 혹 90년 되는 파라과이 개 신교 선교역사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침례교 보다 짧은 선교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오히려 더 활기찬 신앙 생활에 증진하는 것을 엿볼 수 있으며 오히려 타 교단의 선교에 많은 도전을 줄 정도까지 되었다.
3) 한국 이민교회
파라과이에서의 장로교 선교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사실 파라과이는 1800년 후반기에 3국 전쟁이후( 파라과이대 브라질,이르헨티나,우루과이와의 긴 전쟁) 많은 국가적인 손실로 말미암아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남자의 수가 절대적으고로 부족할 정도의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1900년 초부터 국가는 이민 정책을 실시하여 많은 외국 이민들이 파라과이로 들어 오게 되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 한국 순서로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들게 되었다. 그 가운데 우리 한국도 1966년 경부터 이곳 파라과이에 농업 이민을 보내게 되었고 이 이민자들이 처음에는 농사를 짓는다고 시골로 들어 갔지만 수지 타산이 맞지않는다고 그후 모두 도시인 수도 아순시온으로 나와 상업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종사하게 되었다. 이 한인 이민자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게 된 것이 파라과이 장로교 선교역사의 첫 발걸음 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의 인민 교회는 아순시온 연합 교회가 모체가 되어시작이 되었고 그후 이민자의 수가 많아지고 각각의 신앙형태에 따라 교회가 몇개씩 생기게 되었으며 장로교로서는 아순시온 교회가 가장 큰 영향력을 교포 사회에 하게 되었다. 그후 아순시온 교회는 교회 성장과 동시에 원주민 선교를 하게 되었고 몇개의 원주민 교회들이 아순시온 근방에 세워지게 되었다.
이후 신학교를 세워 원주민 지도자를 양성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지만 이민자들 구성멤버들이 신앙의 깊이와 헌신된자들의 결핍으로 구체적이며 적극적이며 도전적인 선교에 한계를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앞서 독일에서 시작된 형제 교단의 이민자들이 파라과이에 와서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가 상당한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착이 되었다고 언급을 하였는데 그들 선교의 인적 자원은 상당한 신앙 인격을 갖춘자들이 직접 선교에 헌신한 결과라고 본다면 자신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한인 이민자들과 상당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파라과이 장로교 선교에 교포교회가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작년에 파라과이에서는 장로교 선교 10주년을 넘기며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본격적인 연구와 선교의 활력이 필요한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4. 파라과이 선교의 현재 현황
1) 사역하는 선교 단체들
현재 파라과이에서 선교하는 개신교 선교단체들은 장로교.침례교. 감리교,순복음.성결교.형제교단.영국 성공회등 여러 군소 교단들이 활동하고 있다. 장로교로서는 고신. 합동. 통합.대신.측 선교사들이 저마다의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현장에서 뛰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교단 선교사들이 교포교회와 관련을 가지고 파송받는 동기를 가졌다가 그후 직접 원주민 선교를 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 졌을때 원주민 사역에만 집중하게 되었고 그 교포교회 목회자의 공백을 또 다시 한국에서 파송받는 목회자(선교사)가 와서 교포교회 사역을 감당함으로 계속 선교사의 수효가 많아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렇지 않는 방법으로 파송받는 경우가 있지만 전자에서 지적한 방법으로 많은 선교사가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저 개인적인 솔직한 견해라고 밝혀 두는 바이다. 물론 파라과이에는 4곳의 도시에 한인교회들이 있으며 교포 선교와 원주민 선교를 병행하고 있다. 파라과이 전체에 줄잡아 많으면 약 8000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또 약17개의 한인교회들 (수도에 약10개)이 있다. 파라과이에 한인 교회를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은 교포를 통한 원주민 선교의 중심 역활이라는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효과적인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많은 내적, 외적 장애물들을 교포교회가 가지고 있다고 볼수 있다.원주민 교회를 병행하고 있는 교포교회의 선교의 모습은 담임하는 목회자가 직접 원주민 선교를 감당하기에 시간이나 그에 따른 준비들이 갗추어져 있지 못하기 때문에 원주민 사역자를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봉사케하는 것으로 간접 선교에 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종족의 복음화를 책임지는 원주민 사역자는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역을 뜨거운 사명감으로 하지 못하고 일상 생활의 한 분야로 너무 가볍게 생각함으로 원주민 교회가 자립되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원주민 사역자를 양성하는 신학 교육과 일꾼 훈련과정이 본질적인 사역으로 이 사역에 얼마나 중요하며 선교에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본인의 좁은 안목으로 살피건데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을 위한 원주민의 사역이 되기 위한 지름길,- 곧 선교의 신실한 사역은 원주민을 하나님의 사람 바르게 양육시키는 것이야 말로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핵심 사역을 잊어 버리고 가장자리 사역에 본의아닌 관심을 집중시켜 오지 않았는가 하는 자기 반성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현재 원주민 사역자를 양육하는 기관으로서 3개 교단의 연합으로 개혁주의 원주민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고신과 합동과 미주 총회(합동) 선교부 소속의 선교사들이 파라과이에 하나의 장로 교단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뜻을 모아 한 신학교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직 파라과이에는 장로 교단이 이 나라의 법 체제 아래 정식으로 등록이 되지 못했지만 3개 교단 연합으로 조만간에 이를 구성 조직하여 체계적인 장로교 선교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개혁주의 선교협의회가 조직이 되어 3개 교단의 선교사들(12 가정)이 2개월 마다 모여 파라과이 원주민 장로교 태동을 위한 연구를 위한 논의와 기도를 계속해 나가고 있으며 신학교 사역에 대한 제반 문제들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서 고신 선교부의 위치와 역활이 막중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 작업 가운데는 장로교 헌법을 편찬하는 일(말씀위에 교회의 권위와 질서를 세우는 것이야 말로 무엇보다 필요로함)과 원주민 통일 찬송가를 편찬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려움 가운데서 결실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외에도 현재 파라과이에서 활동하는 선교 단체 가운데는 밥티스타(침례교)를 빼놓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을 하였지만 파라과이 개신교 선교에 이들이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파라과이 곳곳에 자기 교단 소속의 교회들을 볼 수 있는데 아순시온에는 일반 학교와 큰 병원 그리고 원주민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타 교단 보다 이곳 파라과이에서 그나마 나은 선교의 뿌리를 내리게 된 원인은, 장로교 보다 오랜 선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 남침례교에서의 집중적인 파라과이 선교에 대한 지원과, 카톨릭으로 찌든 파라과이 사람들의 거센 심령에 인내로 사역을 감당한 결과라고 믿고 싶다. 물론 침례교 원주민 교회들이 질과 양으로 충분히 성장했다는 결론에는 아쉬움이 많지만 곳곳이 교회를 세우며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때 그들의 수고와 눈물과 땀을 짐작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현재 파라과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교단은 오순절 교단의 순복음교회들이다.물론 펜타코스타 안에도 여러 그룹이 있어 각기 특징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파라과이 심성에 가장 어울리는 교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들의 예배는 활기가 넘친다. 뭔가 틀에 짜여져 있다는 장로교의 예배 형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본인도 처음 원주민 교회를 개척하기 이전 파라과이 원주민 교회들을 배우기 위해 잠깐 순복음 교회를 출석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예배전 찬양을 통하여 예배하러온 자들을 이끄는 것을 보았는데 찬양의 첫 부분은 굉장한 흥을 돋울만한 강한 찬양, 뭔가 찬양의 분위기에 빠지면 그냥 앉아 있지 못하게 하는 생동감 있는 찬양으로 분위기를 리드하고 후반부는 좀 조용한 찬양으로 예배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활을 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헌금 순서가 있고 이어 목사가 설교하고 말씀 선포뒤에는 꼭 결단의 시간을 가져 그리스도를 초청하는 기회를 부여하고 이어 또 함께 간절한 기도 (물론 방언 기도와 안수가 함께 병행됨)그리고 뜨거운 찬양을 한뒤 축도 없이 자유롭게 교제하고 폐회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본인이 관찰한 교회는 순복은 교회가운데서도 잘 정돈된 교회라는 인상을 받았으며 실제로 파라과이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에서 제일 큰 교회였다. 물론 장로교에서 오랫동안 예배 생활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여간 거북하지 않았으며 굉장한 반감을 사고도 남았다. 그러나 남미 사람들과 특히 파라과이 사람들을 좀 경험하고 사고를 인식을 한 뒤에는 이들의 정서에 어울리며 그리고 그들의 갈급함을 예배로서 해결받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로교의 예배를 고집하고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라고 늘 생각해 왔던 고정 관념이 종족과 그 종족의 기질에 따라 변화를 가하는 것이 선교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 말씀으로 검증받은 후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장로교의 예배와 전혀 다른 형태로 선교하는 순복음 신학이 남미 전체를 힘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곳 파라과이에도 뒤늦게 그 바람에 편승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있다.
또 다른 파라과이 선교 단체로는 영국에 그 본부를 두고 있는 S.I.M. 단체이다. 한인 선교사 가운데에서도 S.I.M.소속의 선교사가 이곳에 두 가정이 있고 S.I.M.의 다른 선교사들은 주로 파라과이의 한 도시 빌야리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팀 사역에 열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파라과이 에서 활동하는 다른 선교 단체들은 현재 까지 팀 사역보다 개별 사역(원주민 교회개척)에 집중되고 있는 형편이며 앞으로 종합적이며 폭넓은 선교를 위해서는 팀 사역이 보다 효과적이며 포괄적인 선교를 할 수 있기에 개별 사역의 한계점을 연구검토하며 이를 실행하기 위한 선교사간의 상호 이해와 팀 선교의 구체적인 비젼을 나누며 실행에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S.I.M. 선교 단체의 사역을 통하여 도전과 좋은 모델을 제시 받고 있는 것이다.또 그들은 또 선교사 자녀 교육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며 구체적인 실행에 옮기는 것을 보았다.
감리교(Metodista)선교 단체도 파라과이에서 대체로 활발한 활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교단 중앙에서의 엄격한 지도 가운데 한인교회와 원주민 교회를 하나의 지도 체제로 묶어 교회를 감독하며 원주민 선교에 열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파라과이에는 많은 선교 단체들이 들어와 저마다의 사역에 열중하고 있지만 때로는 선교사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며 사역에 비난 받는 행동을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항상 바른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선교사의 인격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바이다.
5. 파라과이 선교 전망
1) 카톨릭과 파라과이 사람들
파라과의 앞으로의 선교 전망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파라과이 사람들의 특성을 살펴 보는것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선교는 사람을 대상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 드리는 그 종족의 특질을 연구하는 것도 원주민 선교에 중요한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본인은 파라과이에서 3년 넘게 지내면서 그들과 대화하며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며 문제를 가지고 부딪혀 보기도 하면서 그들의 특성과 기질을 연구하는 기회를 가져 아직 완벽한 파악은 하지 못해도 어느정도 파라과이 사람들은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물론 그와 같은 평가나 결론이 내 개인적인 판단이 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견해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여기서 분명히 밝혀 두는 바이다. 적어도 많은 선교 단체들이 파라과이에서 사역을 하였고 또 선교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소망하는 대로 선교의 결과가 흡족하지 못했다면 또 실제로 그와 같은 평가를 각 선교 단체들이 내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원인을 찾는다면 파라과이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파악을 하지 못하고 쉽게 접근하며 일상적인 수준으로 그들의 성품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 종족에 대한 깊은 연구, 그들의 역사와 전통. 생활의 습관. 그들이 쌓은 가치관, 그들의 교육 수준과 미래에 대한 생각, 종교에 대한 반응 등 다각적인 이해와 연구 그리고 거기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선교 방법적인 다양한 검토가 필히 선행되어져야 하는데 우리의 선교는 빠른 열매를 보고파하는 선교사 자신과 후원하는 교회의 동역자들간의 상호 합작으로 말미암아 핵심되고 바로 파악해야 할것은 놓치고 단거리 경주자처럼 빨리 빨리 선교의 현장에서도 달려 가기만을 바라고 익지 않는 열매 따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뒤 늦게 나마 이곳 원주민들에 대한 바른 접근과 확실한 연구를 통해서 방향을 잘못잡기 쉬운 우리의 선교에 나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파라과이의 역사는 콜롬부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래 스페인들이 이곳 남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볼 수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파라과이 땅에 살고 있는 원주민인 인디안( 주 종족은 과라니족)들을 지배하고 그들을 노예로 학대하였으며 나중에는 인디안 여자와 스페인 남자간의 결혼까지 이르게 되어 인디안(과라니) + 스페인 사람 = 메스티조 라는 혼혈족이 나오게 되었다.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 전 대륙을 장악한 스페인은 그들의 말과 문화, 종교를 원주민들에게 전수하게 되고 정략적인 결혼을 통해 그들을 지배하며 오랫동안 남미 대륙에 군림하는 하나의 큰 왕국을 이루게 되었다. 이곳 파라과이는 특히 인디안과 스페인 사람이 결혼하여 그 후예들이 메스티조라고 불리는 자들이 많이 사는 나라가 되었고 처음에는 큰 국토를 가진 나라가 되었지만 나중에 스페인 으로부터 독립한 1811년 이후에 파라과이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등과 전쟁을 일으켜 많은 땅을 빼앗긴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언어와 문화를 원주민들에게 주입시켜 원주민의 정신 문화도 지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모든것을 미화시킬 수 있는 그 뒤 배후에는 카톨릭 신앙의 보급을 통해 그들의 식민화에 대한 신앙적 타당성으로 카톨릭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것이라고 이해시키기도 하였다. 아무튼 카톨릭의 신앙과 뿌리는 원주민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였고 자연인인 원주민들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남미 특히 파라과이에서의 카톨릭의 신학과 가치관은 이곳 원주민에게 있어서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파라과이 모든 사람들의 가치관은 카톨릭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들의 삶과 내세관도 역시 카톨릭 신앙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바른 복음을 개신교를 통하여 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가를 이곳 환경에 적응할수록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범하는 죄. 거짓을 일삼는 일 등 너무나 쉽게 또 태연하게 이와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도 예수 믿는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은 일찍 예수이트 교단을 통해 이곳에 카톨릭 신앙이 전수 되었지만 그들의 잘못된 신학이 그들의 삶까지 이와 같은 모양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할때 적어도 남미에 있어서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카톨릭이며 그들의 신학에 젖은 이곳 원주민들을 바로 가르칠 수 있는 것도 개혁주의 바른 신앙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그들의 마리아 숭배사상과 고해성사. 연옥과 같은 비 진리에 습관되어진 그들을 보면서 한편 이슬람인들에게 복음전하는것 만큼 카톨릭의 장애물은 대단한 것이다.
물론 그들은 성당이든 개신 교회건 하나를 다니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그들의 고백은 얼마지나지 않아 진리위에 있지 않는 거짓된 고백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신실한 크리스챤들도 굉장히 많이 있지만 대부분 신자라고 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이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본인은 이곳 파라과이에서 3년을 보내면서 카톨릭에 찌든 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할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복음을 전혀 모른다면 소망이 더하지만 복음을 오랫동안 들었다고 하는 그들에게 선교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바울이 유대인게 복음을 전하였지만 그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나섰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더 간절히 듣고 빨리 반응한 것과 같이 지금 파라과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돌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이유중의 하나가 인종 혼합주의라고 지적하고 쉽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 했지만 잦은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남자들이 죽고 인구가 감소하자 이민정책을 펴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인근 브라질 부터 독일 영국 러시아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막 들어오게 되었다 파라과이의 이민 역사는 약 100년 그 이상으로 본다 이들이 마구 유입이 되면서 이곳 원주민 메스티조와 결혼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다양한 기질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단일 민족을 자랑하는 우리의 사고 방식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동떨어진 생각으로 삶을 살았고 그들 자신의 역사나 전통 문화가 빈곤한 가운데 뿌리가 없는 나무처럼 성장과 열매가 없는 생활을 하는 것에 익숙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파라과이는 그들의 정신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뚜렷한 문화나 전통과 역사의식이 부족함을 필자는 너무 많이 느끼고 있다.
개인이 갖는 가치관과 정신은 존재해도 그것이 천차만별이며 여러 민족이 혼합되어져 왔고 여러 기질들이 섞여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힘으로 성숙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이런 기질들이 밑바탕이 되어 있는 파라과이 사람들에게는 더욱 복음 전파가 힘들다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이 모든 것을 깨뜨릴 수 있는 강력이다.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일으키는 능력이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우직한 믿음이 아니고는 사실 이곳 파라과이에서 선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는 바이다.
2) 팀 사역의 필요
이러한 파라과이 민족적인 특성을 고려해 볼때 파라과이 선교의 전망은 그렇게 밝지는 않다.선교지에 선교사가 많으면 좋겠지만 무조건 선교사를 이곳으로 파송하는 정책은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인구 약 500만쯤 밖에 안되는 이곳에 인구수에 비해 여러 교단에서 다른 나라 보다 많은 선교사가 파송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고 있다. 이제는 파송하기 보다 이미 파송 받은 선교사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선교, 효과적인 선교,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공동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와 실제의 팀사역에 대한 진지하고도 ,구체적인 훈련과 선교지에서의 적용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특이한 연구 가운데 하나는 카톨릭 사고및 신학으로 굳어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쉽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그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사역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역할 것인가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실제로 선교지에서의 끊임없는 임상훈련이 필요하며 직접 복음 전파가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젠가 필자는 이런 파라과이 사람들의 특성을 알고난 부터 그리고 실제로 선교지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어려움을 겪는 선배 선교사님들의 사정을 보면서 이곳 지역과 가까운 브라질 사람들의 신사적인 성품을 은근히 그리워 하며 브라질 선교에 대한 일시적인 꿈을 가져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디도서를 묵상하면서 바울 사도가 디도를 그레데 섬에 남겨 두면서 거짓말장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른 그레데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을 복음으로 바로 잡고 일꾼을 세우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내 속에서 쉽고 안일하게 선교하고자 하는 그런 나쁜 동기가 있음을 발견하고 놀랬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던 적이 있다. 정말 나쁘게 극단적인 묘사를 한다면 파라과이 사람들의 기질이 그레데 사람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물론 우리 모두는 다 비슷하지만). 이런 것을 마음에 생각하면 선교에 대한 전망은 밝지는 않다. 그러나 이들을 위하여 누군가 일해야 하며 복음으로 일꾼을 양성해야 된다는 바로 고신 선교사들이 먼저 앞장을 서야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6. 현재까지의 선교 평가
1) 긍정적인 면
지금 까지 어떤 방도로 하던지 복음이 선교사들로 말미암아 파라과이 땅에 퍼져 많은 교회들이 세워진 것을 볼때 이는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일이라고 믿는다. 이전 까지 카톨릭이 지배적이며 국가 종교처럼 군림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복음의 신선한 역사들이 각 사람의 심령위에 일어나고 있으며 신앙을 고백하는 믿음의 형제들이 이곳 저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톨릭이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종교로 되어 있었지만 개신교의 성장과 일부 지각있는 크리스챤들의 국회 진출로 그 부당성이 지적이 되어 파라과이가 카톨릭 국가라는 항목이 삭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활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은 이전 카톨릭 사람들의 신앙과 생활의 불일치로 말미암아 좋지않는 영향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귀한 자극과 도전을 주고 있으며 카톨릭만 알고 있는 파라과이 사람들에게 복음에 다시 눈을 뜨게 만드는 역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파라과이는 일찍 제수이트 교단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 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한 복음은 많은 부분에서 진리를 왜곡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고 복음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변화지 않는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며 거짓된 진리를 붙들고 살아 왔기 때문에 우리는 바울이 로마인들에 복음을 다시 증거 하듯 이 파라과이 사람들에게도 다시 복음을 전하고 다시 진리를 듣게 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복음이 다시 개신교 선교사들로 통하여 전파되므로 복음이 산 역사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긍정적인 요소가운데 하나로 개신교회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약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파라과이 도시마다 개신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도시마다 한 두 교회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곳곳에 많은 개신교 원주민 교회들이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복음의 역사가 잔잔히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부정적인 면
지금 까지 파라과이 개신교 선교 역사 가운데 가장 부정적인 요인으로 지적을 한다면 터무니 없는 자립교회의 부족이다. 이는 그들의 가난에 문제도 있겠지만 그것 보다도 약 100여년 개신교 선교역사에서 잘못된 선교의 결과로서의 부산물로 아직 까지 많은 교회들이 자립하지 못하고 선교사나 선교단체에 크게 의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선교단체에서 수년 혹은 수십년을 선교 했지만 아직까지 선교사 중심의 선교나 선교사 중심의 교회에서 탈피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선교단체나 선교사의 선교 방법이 하나님 중심의 선교에서 벗어난 인위적인 방법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자립하지 못하는 많은 원주민 교회들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원주민들을 만나 경험으로 그들을 이해해 보면 우리 보다 먼저 선교사들을 접촉하였고 또 그들은 이전 선교사들이 어떤 방법으로 선교하였다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들이며 오히려 그들 편에서 선교사들을 이용하는 잘못된 모습이 붉어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일 중심의 선교, 사역 위주의 선교 정책, 선교의 열매를 빨리 보고 싶어하며 또 그 결과를 파송한 선교단체나 교회에 보고해야 되겠다는 강박관념이 쌓이면 자기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접어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립 교회를 목표로 하는 교회 지도자 훈련이다. 원주민 스스로 교회를 섬길 수 있게 하는 비결은 무엇 보다 원주민 지도자를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좋은 방법임을 누구나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방법은 일관성 있게 시행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사역자를 양육하는 선교 정책보다 더 쉬운 방법을 찾고 또 쉬운 방법을 택하다 보니 본질 사역은 회피하고 부차적인 사역에 촛점을 맞추는 엉뚱한 곳에 가 서 있는 선교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파라과이 선교에 부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방법에 바탕을 둔 선교가 일반화 되었다 시피 하였기 때문에 그 쓴 열매를 맛보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는 것이다.
7. 파라과이 선교를 위한 과제
1) 무엇이 문제인가?(협력선교의 필요)
지금 까지 우리는 개인 사역 위주로 선교를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개인 사역으로 감당할 부분은 얼마든지 많이 있으며 또 효과적으로도 사역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사역 위주로 사역을 계속해 나가면 나갈 수록 지속적인 선교의 장벽과 어렵고, 또 유혹받는 많은 부분이 생길 수 있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본인은 뜻을 같이하여 한 선교지에서 협력사역이 가능할 수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된다. 물론 같은 선교지에서 아름답게 협력해서 사역하는 팀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외 대다수의 선교단체나 선교사들은 협력사역보다 개인 위주의 사역에 촛점을 맞추고 개인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장기적인 사역에서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해 본다. 본인은 파라과이에 3년 6개월 가량 선교를 배우며 또 사역하면서 여러 선교단체나 선교사들이 사역하는 것을 눈여겨 보아왔다. 역시 파라과이에서도 대부분의 선교사들의 사역이 개인 위주로 치닫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개교회 중심으로 파송을 받아 기도와 물질의 지원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위주로 사역하는 선교사의 위험은 우선 실적위주의 사역으로 치우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선교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파송 받고 사역하는 선교사에 대하여 어떻게 사역하고 있느냐에 대한 평가를 쉽게 내릴려고 하는 움직을 늘 간직하고 있다. 선교사는 후원교회에 정기적인 보고를 해야하며 그로 인하여 자기 사역에 대한 신뢰를 받기 위해 긍정적인 위주의 보고를 해야하며 그 보고에는 정직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항상 도사려 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위험에 빠져들어 가고 있는 자신을 가끔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변의 다른 단체 선교사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정기적으로 한국에 나가 많은 선교비를 모금해 오는 것을 보아 왔다. 물론 선교비를 모금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무턱대고 개인 사역을 벌려 온통 일에 매달려 있는 선교사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일을 시작하여 이 사역이 자신의 사역에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사역인 것처럼 보고하고 사역에 따른 재정지원을 공급 받기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력 있게 호소하므로 목적한 재정을 지원 받게 되고 또 계속적인 지원의 약속과 보장을 받기위해 자주 한국을 드나드는 일을 하는 선교사도 없지 않아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이것이 모든 선교사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이라고 볼 수 있다. 선교사도 돈에 약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다. 그러나 협력 사역이었다면 그런 위험에 빠지는 일이 휠씬 줄어들 것이며 힘있게 목적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 위주의 사역이 가지는 또 다른 위험 가운데 하나는 다른 선교사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선교사에 비하면 자기의 사역은 보잘 것 없는 것 같고 타 선교사는 보란듯한 사역을 척척해 나가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열등감이 존재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위주의 사역이 빚어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팀 사역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동사역에도 많은 난제가 존재한다. 우선 사역에 대한 같은 목표를 가진 철학이 있어야 하고 높은 신앙 성숙을 갖추어야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무턱대고 팀 사역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고 공동 사역을 할 수 있는 신앙과 인격을 먼저 구비하는 것이 휠씬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선교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일이 (사역)이 아니라 사역을 하는 선교사 개인의 인격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팀 사역이 필요로하여 두 가정 이상 함께 사역을 시작을 했지만 공동 사역에 대한 사전 충분한 준비와 사전 지식도 없이 그리고 서로에게 나타날 수있는 인간 관계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가며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훈련없이 일(사역)만 하면 되는 것인양 서두르게 되면 나중에는 엄청난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그러므로 공동 사역이 중요하며 팀 선교의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만 먼저 선교사 개인의 인격과 삶이 공동 사역을 감당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준비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사역으로 인하여 만나게 될 어려움과 인간적인 갈등에 대한 이해와 연구 그리고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성경적인 방법등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2)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
먼저 무엇이 갈등인가를 정의하면서 첫째, 선교사 개인이 겪는 갈등이 존재할 수 있고, 둘째 선교사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사실 갈등이라는 말은 신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갈등은 어떤 문제나 사건에 대해서 마음이 둘로 나누인다고 볼 수 있는 말인데 선교지에서 선교사의 마음이 어떤 문제로던지 간에 나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고민과 갈등과 기도의 범벅이 되는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한번은 파라과이 선교의 어려움과 앞으로의 전망과 그들의 기질과 성격을 어느정도 경험하고 난 다음 인근 브라질 사람들과 비교해 보는 때가 있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오랫시간 동안 선교해도 뚜렷한 열매나 일꾼들이 나타나지 아니하 줘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선교의 대상을 브라질 사람으로 바꿔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한때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곧 이어 디도서 말씀을 묵상하다가 나의 이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