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율법 즉 미쉬나mishina같은 규칙을 만들어가지고 그 규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가차없이 처단해버립니다.
아프칸사람들은 남편말안들으면 부인코를 베어버려도 법원에서 남편손을 들어준다는데
유대인들 즉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제사장들은 자기율법으로 병든자들까지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5.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그런 오징어 게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으로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져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모임이 베데스다 게임의 “참여자”도 아닐뿐더러 “감독자도, 심판자”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받아 그 은혜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오직 말씀과 성령안에서 자원하여 헌신하는 것으로 기쁨을 얻는 참예배자로 모인 모임이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시선처리/시선을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6-7)
■요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1.38년 병자의 눈은 항상 베데스다 연못에 가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그곳에 들어갈 수도 없으면서도 마음은 항상 베데스다 연못에 눈이 가있습니다.
1)컴퓨터 모니터앞에서 작업하다보면 두 가지가 보입니다.
하나는 문서작업하는 문서파일이 보이고
또 하나는 모니터에 비췬 내 모습이 보입니다.
일에 집중하면 내모습이 안보이고
내모습에 집중하면 문서가 보이지 않습니다.
2.주님이 자신곁에와서 말씀하시는데도 주님을 알아볼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그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그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낫고자하느냐 물어보시는데;
그는 여전히 베데스다 연못에만 주목하고 있지 주님에 대해서는 볼수가 없습니다.
곁에계셔 주목하시는 주님보다 내가 주목해야할것이 주님이 주목하시는것보다
소중하고, 급하니깐요!
3.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실 때
제자들이 큰 풍랑을 만나 죽게 될 지경일지라도 주님은 늘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배 고물에서 주무셔도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경험으로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큰 풍랑에 물이 차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가 가 없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님이 일어나니깐 해결되었습니다. 바람아 잠잠하라! 바람이 잠잠하니깐 바다가 고요해졌습니다.
내힘으로할때는 주님이멀어지고, 내방법으로할때는 주님의방법이멀어지고
내경험으로할때는 주님이하실역사를 믿지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옆에 계신 주님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미련해진 마음과 무감각해진 영적 감각을 깨우는 것이 아닐까요!
내 힘을 빼면 그제서야 주님이 보일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일어나셔야 바람을 꾸짖어 바다를 잠잠케 할 수있습니다.
주님은 멀리계시지 않습니다.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힘을 빼고 여러분의 시선을 주님께 맞추십시오!
한번은 거라지를 닫아도 또 열리고 닫아도 또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가서 살펴보니 작은 비닐하나가 카메라앞에 묻어있는 것이었습니다.
떼어내고서 다시 닫으니깐 그제서야 작동잘하는 것이었습니다.
4.오늘 본문의 38년된 병자의 시선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리뱀을 쳐다보지 못하고 죽어가듯
38년 병자는 시선을 주님께 돌리지 않고 베데스다 연못에 두고 있습니다.
성전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한푼만 달라고 베드로를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힘을 얻고 걷고 뛰고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38년 병자는 병이 깊어도 너무 깊었습니다.
아무리 주님을 볼래도 볼 수 없고
들을래도 들을수가없고
반응하고 싶어도 반응할 수가 없을 정도로 깊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너무 오래 굳어있어버리면 주를 볼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으로 굳어버린 자에게 “그가 먼저”고쳐주셨습니다.
셋째, 그가 먼저/ 내 믿음과 상관없이 그가 먼저 고쳐주셨습니다.(8-9)
❚8-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1.예수꼐서..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라고 말씀했습니다.
학문적으로, 조직적으로, 신학적 체계를 따져가며 물으면 절대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이 사람이 언제 부름받고, 언제 중생했고, 언제 회심하고, 언제 믿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주님이 말씀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비유컨대, 어떤사람이 차사고 났다가 차가 다 망가졌는데 난 살았어요 천불 헌금하겠습니다라고 말하니깐
내가 말하기를 (저는 아닙니다 비유컨대) 나느 평생 차사고 안났으니 나는 더 큰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것처럼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지못하고, 어떤 사고에서 건짐을 가지지 못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강권적이고 단독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하여주신 사람은
어떤 값을 치루고 구원을 받은 사람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것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꼭 내가 사고에서 구원받았다는 것보다 말입니다.
이것이 은혜였습니다.
이 사람이 먼저 믿어서 고침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그를 고쳐주신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경륜안에 이미 이 사람이 예수 만나서 구원얻기로 작정된 자였다는 것입니다.
2.그 하나님의 경륜Dispensation을 생각하니깐; 그런 은혜를 받았던 자가 바로 오늘날 나였다고 생각하니깐;
은혜가 안 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구원받아야할 그 어떤 조건과 상황과 태생이어서가 아닙니다.
아무 조건도 없는 빈털터리 인생가운데서 저를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단독적인 역사로 건져주시고 일으켜세워주시니 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 은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3.물론 내가 이정도 믿었기때문에 은혜받은것도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 댓가도 없는데 선물을 받았다면 그거야말로 더 큰 은혜 아니겠습니까!!
그냥 받은 은혜라고 함부로 여긴다면 그는 더 악한 자일 것입니다.
■눅17장10절에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고 갔더니 일을 다 마친 종이 집으로 돌아와 쉬지않고 바로 주인 저녁식사준비를 해서 차려드리고 또 주인이 다 드실때까지 수종들기를 기다리며 하는 말이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것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이런 종을 귀하게 여기겼던 이유는 바로 우리가 주를 위해 일하고, 섬기고, 헌신하는것들이 내 은혜, 내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인 것이었습니다!
4.저는 38년된 병자가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치유받은 은혜를 결코 잊지않고 살았다고 확신합니다.
본문■14-15절을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시니
(마치 간음하다 붙잡혀온 여자에게 했던 말씀처럼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했습니다.)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하니라.
그가 이렇게 말함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려고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38년의 몹쓸병에서 고쳐주신 예수님을 자랑한 것이고,
자신은 고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음얻었다는 신앙고백하는 부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남은 그의 삶은 모조리 예수님을 자랑하며, 예수님을 고백하며 사는 인생이되었던 것이었습니다.
5.오늘 우리가 38년 병자처럼 근본없이 살았던 분이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경륜안에서 믿기로 작정된 자는 하나님의 다 단독적이고 강권적인 역사로
부름받고, 갱신되고, 회복되어, 구원의 반열에서 주를 드러내며 주를 고백하며 살아가기를 주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교회사무실에앉아 설교를 준비하면서
몸이 찌부듯해서 기지개를 펴면서 옆벽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사진이 나를 보며 웃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힘들다고 짜증내고 화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얼굴을 보면
예수님의 얼굴사진이 나를 보며 째려보시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9월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달을 살아온 우리를 향하여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고 계십니까?
오늘 갱신의 마지막 말씀을 보면서
근본도없는 38년 병자가 하나님의 경륜안에 갱신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오징어 게임같은 믿음가지고 살던 인생!
아무리 곁에가서 말씀하시며 낫고자하느냐 물어봐도 그의 시선은 오직 베데스터 연못에 가있던 그런 인생이
예수님의 강력하고 살아있는 말씀앞에 ㅡ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간것처럼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을 일으켜 여러분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하시기는 말씀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남은 여생 여러분을 치유하신 주를 자랑하며 고백하며 살아가시는 갱신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오늘도 살아역사하시며 우리를 구원의 백성으로 날마다 갱신 시켜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영영 드러누워 죽어야만했던 인생까지 하나님의 그 높고 넓은 경륜안에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 하셨사오니, 남은 우리의 모든 삶의 시간들이 주를 자랑하며 내신앙을 고백하는 사건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영원한 죄로 죽어 지옥갈 저희인생을 구원하여주신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이름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