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복음] 이사야가 증거하는 예수님의 고난 복음
본문
사53장1-12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4-04-14

이사야서53:1-12 이사야가 증거하는 예수님의 고난 복음

Isaiah 53:1-12 Isaiah's Witness to the Gospel of Jesus' Suffering

 

구약성경의 말씀이 필요한 것은 ‘신약성경의 메시야를 통하여 말씀을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말씀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메시야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약의 메시야에 대한 말씀이 오늘을 복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메시야의 고난 복음이 예수님의 고난 복음으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살펴보면서 구원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구주요 메시야 그리스도되심에 대하여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J.D.그리어의 담장을 넘는 크리스챤/ 어린딸이 태어났을때부터 헬룸 넣은 풍선을 좋아했다. 딸이 3살 되었을 때 생일 파티를 열어주기위하여 아빠는 50개의 풍성을 자신의 입으로 열심히 불어 만들어주었습니다. 기뻐했을까요? 딸은 시큰둥해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왜 풍성이 뜨지 않아요!”. 아빠가 풍성을 들고 공중으로 쳐 올렸더니 잠시 떠 있다가 다시 주저 앉아 버립니다. 그때뿐이었습니다. 복음이란 잠시 충성했다가 식어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뜨거워졌다가 식어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는 “사람들로 하여금 배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조선(shipbuilding) 매뉴얼을 주지 마라. 작업팀을 조직해 나무를 제공하지 마라. 그보다는 끝없이 펼져진 바다를 동경하게 만들라”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생명바쳐도 아깝지 않을 복음을 발견했기때문입니다. 복음은 자신의 전생애를 투자해도 결코 후회 하지 않을 보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의 좋은 것을 다 가졌다해도 하나님앞에 후회할 것들만 쌓일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깨닫고, 붙잡고, 세상속에 흩어 뿌리기위해 마지막까지 힘썼던 복음의 증인들처럼 우리도 구약성경 이사야서에 기록된 ‘메시야의 고난 복음’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깨닫고, 붙잡고, 살아가는 자 되기를 위하여 하나님 말씀증거하겠습니다.

 

1.여호와의 팔이되신 예수님(1)

사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오늘날에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우리 주변에는 홍수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에나, 오늘 지금 이 시대에나 불신하는 자들은 여전히 불신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팔은 오늘 날에도 여전히 구원하시는 능력이 있어서 구원받을 자들을 건져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의 강한 팔로 붙잡고 있기때문입니다. “어느곳에 있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 함이라”

 

2.아름다운 것이 없으신 예수님(2)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불신자들이 메시야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메시야는 고난이 없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기때문입니다. 메시야는 구원자인데 왜 메시야가 비참하게 죽느냐는 딜레마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니깐 고난에서 다시 사시는 것도 다시 오시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본장을 금장으로 보는 것은 죄에서 구원이 아니라 정치적 구원을 기다리기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메시야의 고난이 복음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나의 죄를 철저하게 깨닫고 그 추악한 모습을 보고 장차 지옥형벌을 면치못할 자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추악한자였는지 1:1로 깨달을 때 그 절망, 흑암, 고통속으로 나를 구원하시기위하여 친히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셨을뿐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시는 구원자를 보기 때문에 오늘 우리 신자는 고난이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추악한 죄악을 주님께서 담당하시기위하여 대속하신 줄 믿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3.우리가 귀히 여기지 아니한 예수님(3)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불신의 눈으로 볼때는 예수님의 모습, 모양, 꼴은 전혀 메시야의 꼴이 아니라, 저주받은 자의 모습같아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릴적 어머니가 얼굴이 일그러진채 니어커를 끌고 집으로 들어갈 때, 딸 아이가 어머니가 챙피해서 친구들에게 ‘우리집의 식모’라고 소개했던 이야기처럼, 예수님의 꼴을 보아하니 전혀 나를 구원하시는 꼴이 아니라 나를 챙피하게 만드는 꼴로 해다니다보니 챙피한 예수님으로 여기며 살아가며 세상속에서 예수님을 챙피하게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속에서 챙피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챙피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챙피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받는 예수님은 절기 행사로만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 받은 메시야가 나를 대신하여 그 고난을 받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1:16,17절에보면,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은 이 복음이 구원하는 능력이 있었음을 믿었기때문이었고 오직 그 믿음 하나로 죽음에서 영생을 얻었기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의은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줄 믿습니다.” 

 

4.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4-6)

사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4-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질고를 진 것이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기를 예수는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징벌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지 우리를 위하여 고난받는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더욱 큰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 자였고 우리가 예수님께 지금도 그런 자로 위협을 끼치는 자로 살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5-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찔림이 우리의 허물때문이고, 예수님의 상함이 우리의 죄악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으로 다시 시작되어야 함이 복음을 오해없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자유하게 해 줄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의 아픈 곳마다 치료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그늘 밑에 나아가 쉼을 얻고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6-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모두가 다 양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시각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습니다. 양은 자기 뿔뜯어 먹는 것외에는 주위 상황을 전혀 모릅니다.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도 모릅니다. 옆에 몰래 숨어 잡아 먹으려는 늑대가 있는 줄도 모릅니다. 그저 자기 코 앞에 있는 풀을 뜯어먹는 것 외에는 전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상황파악이 안되는 짐승입니다. 우리는 다 양같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각기 코 앞에 먹는 것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죄악인 것도 모른채 나는 늑대처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악하지 않다고 하면서 계속 향방없이 코앞에만 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양들의 목자되십니다. 가만 두지 않으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를 믿고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요10:10-11&27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말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5.침묵하신 예수님(7-9)

사53:7-9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악인들과 함께 묻힐 상황)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님은 양 같은 우리들을 위하여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끌려갔습니다. 털깍이는 자 앞에 잠잠한 양처럼 순순히 죽으셨다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아셨고 그 죽음에 거부하거나 버티지 않고 자원하여 자신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 당시 그 누구도 예수님의 죽으심은 세상 사람들이 범죄하여 받을 징벌로 생각했지, 자신의 허물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잔인학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입술로 속임수를 쓰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두 강도들과 같은 대우를 받으셨지만, 예수님의 장례식은 (부자요 산헤드린 공회원이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마련한 새 무덤에 부자들과 함께 장례를 치르게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끝자락에 희망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 땅에서 떠나가셨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숨겨진 제자가 용기를 얻고 세상밖으로 나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인생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새생명을 탄생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 십자가 밑에 나아가 그 은혜를 깨닫고 새로운 제자를 탄생시키는 곳은 다름아닌 십자가 밑에 나아와 그 은혜를 알고 세상속으로 믿음을 증거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는 것입니다.

 

6.영혼을 드리신 예수님(10-12)

사53:10-12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육체만의 죽음뿐아니라 그 영혼을 다 바쳐 우리 인생의 상함과 질고를 담당시키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내진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을 희새하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히기 위한 하나님의 큰 뜻때문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소망과 부활 그리고 영생을 믿게 하신 복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저주의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생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할 때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며 천국에서 누릴 기업을 바라보며 힘차게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이사야53장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붙잡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아야 할 이유는 그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징벌을 받으셨고 우리를 구원하셨기때문입니다. 그 많은 곤욕과 고통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십자가를 대할 때 예수님이 영혼을 바쳐 우리를 살려주신 것을 믿고 우리도 영혼을 다하여 세상속에 새 소망과 부활과 영생의 예수님을 전하며 사는 자들이 되어 살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오늘날에도 살아역사하시며 택한자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원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바로 이해하며 그 사랑을 마음깊이 믿어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저희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로 우리 모든 죄악을 담담시키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교회되어 마지막때까지 그리스도예수님을 믿어 영생천국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징벌받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찬양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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