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본문
막2장23-28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4-05-26

 

 

막2:23-28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Mark 2:23-28 So the Son of Man is Lord even of the Sabbath.

 

갈멜산에서 엘리야 한사람과 바알선지자 450명과의 영적전쟁이 있었습니다. 어떤 신이 진짜 신인지 자기가 쌓은 제단에 불로 응답하시는 신이 진짜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자신이 쌓은 제단을 둘러싸고 신을 부르고 춤을 추고 칼로 자신을 찌르고 피를 흘리기까지 애를 썼지만 바알신은 연기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제단에 물통 4개에 물을 채워 제단에 붓고, 또 붓고, 세번이나 부었더니 물이 제단에 흘러 넘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불로 응답하소서 불로 응답하소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제단에 불을 붙여 모든 물이 마르기까지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던 엘리야가 마을로 내려와 이세벨의 후한이 두려워 도망쳐 로뎀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두려움과 죽음의 유혹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어루만지며 힘내라’ 격려하시고, ‘떡과 물을 공급’하시며 위로하시고 돌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탈진했을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십니다. 위로하시며 먹이시며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었어도 여전히 굴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시며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시니 “오직 나만 홀로 남았고 저희가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또 하나님은 두번째 물으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시니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하나님은 바람을 보내시고, 바위를 부수며, 땅을 흔드시고, 불을 보내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때에도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람왕을 다시 세우고, 이스라엘왕을 다시 세우고, 너의 후계자를 세우라.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천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고, 입맞추지 않은 자들이니라.” 그리고 말씀이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라고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현존 곧, 하나님께서 나의 현실속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두려워하거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몸부림치며 결국은 승리하도록 하나님이 이끌어주십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영적인 현존에 참여하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신앙 경험의 요체로서, 이를 통해 몸, 정신, 영혼이 회복된다. 식물이 물을 필요로 하듯 인간은 안식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인의 안식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교회안에서 주일 출석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현존 가운데 머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한 주일모임 곧, 성도가 성일에 성회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주일 출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 곧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씀가운데, 그 세미한 음성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ㅡ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 영광스런 구속의 은혜와 사랑으로 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안식일에 받을 안식입니다.

 

1.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제자들

막2: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길은 마치 세상의 왕을 모시고 가는 것처럼 신바람이 났습니다. 본문에보면,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다, 길을 열었다, 이삭을 잘랐다”라는 말은 ‘왕되신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앞서 만들어 드리며 이삭을 자르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옛날 조선시대 왕이 왕이 타는 가마에 오르면 가마병이 연을 어깨에 메고, 호위병들이 그 가마 주위를 애워싸고, 진두지휘하는 대장은 마을에 들어서면서 큰소리로 외칩이다. “왕이 납신다. 길을 열어라”. 그러면 동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엎드려 절하며 왕이 지날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마찬 가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호위병이 되어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만들어 드리며 이삭을 자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리새인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이되면 해서는 안되는 일 39가지가 있었습니다. 

1) 바느질 2) (밭)가는 일 3)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는 일 4) 곡식단 묶는 일 5) 타작 6) 곡식 등을 까부는 일 7) 곡식이나 거두어들인 것들 가운데서 좋은 것과 버릴 것을 고르는 일 8) 곡식 등을 가는 일 9)체질 10) 반죽 11) 빵을 굽는 일 12) 양털 깎는 일 13) 그것을 빠는 일 14) 그것을 치는일 15) 그것에 물들이는 일 16) 실을 잣는(빗질) 일 17) (실 따위를) 엮는 일 18) 두개의 고리를 만드는 일 19) 두 개의 실을 엮는 일 20) 두 개의 실을 푸는 일 21) 묶는 일 22) 푸는 일 23) 두 조각을 꼬매는일 24) 두 조각을 꼬매기 위해 찢는 일 25) 사슴을 덫으로 잡는 일 26) 그것을 도살하는 일 27) 사슴의 가죽을 벗기는 일 28) 그것에소금을 치는 일 29) 그 가죽을 가공하는 일 30) 그것을 반반하게 만드는 일 31) 그것을 자르는 일32) 두 글자를 쓰는 일 33) 두 글자를 쓰기 위해 두 글자를 지우는 일 34) (건물을) 짓는 일 35) 그것을 부수는 일 36) 불을 끄는 일37) 불을 켜는 일 38) 망치질39) 물건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일. (미쉬나, shabbat 7:2)

 

그런데 제자들의 행위를 보면 항상 자기가 만든 규례 때문에 불편합니다. 그리고 예수와 제자들을 처단해버리려고 얼마나 지켜보고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제자들의 열심은 예수님을 호위하는 일이 그 당시에는 최선의 섬김이었습니다. 

 

적용)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작은 제자들로 살아가기위한 열심은 무엇입니까? 제게 맡겨주신 역할을 생각하면 예배 집도에 최선을 다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주보를 만들고, 마음을 다스리며, 성도들의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하여 더욱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예배가운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더럽고 추악한 것들과 사단이 혼란하게 하는 것들이 범접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성도들의 마음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부족하지만 저에게 맡겨주신 역할을 성령안에서 기도하면서 주님이 임재하여 복을 주시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감사한 것입니다!

 

2.사랑 없는 율법해석자 바리새인

 

오늘 말씀 중에 “이삭을 잘랐다”는 말씀을 이해하려면 두 구절을 더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행차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잘라 가며 길을 만들어 드리는 목적도 있었지만, 다른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배고파서 잘라먹었다는 목적도 기록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오히려 시장해서 먹었다는 목적이 더 큰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마12:1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먹으니” 

2) 눅6:1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마태복음에서 “잘라먹었다”는 말에서 ‘자른 것’은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했던 일 3번째 “추수했다”라고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비비어 먹었다”는 말에서 ‘비볐다’는 말은 미쉬나 5번째의 ‘타작했다’는 말에 걸리기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의 하는 행위가 모조리 정죄할 것들로만 보였던 것입니다. 

 

본문)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보시오”라고 말한 것은 그 당시 유대 사회의 책임에 대한 관습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잘못했으면 스승이 책임져야한다는 그들의 관습 말입니다. 그래서 바로 예수님을 찾아와서 저항하며 말합니다. “보시오”. 이때 그들이 ‘보시오”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을 가지고 제자들의 행동을 들여다보며 판단하겠다는 말입니다. 그 판단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에서 벗어나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유전들(규례)입니다. 그 인위적 유전을 기준으로 내세우며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보시오, 어찌하여 저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라고 한 것입니다. 

 

적용) 오늘 날에도 자신의 부족한 이성과 경험을 가지고 만들어진 유전들이 사람들 속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것의 부족함을 깨닫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멈춘 사람들이 오늘날 많은 교회안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속에 성경은 멈추고 이성과 경험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다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될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ㅡ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의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자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사랑을 느끼게 되며, 변화가 일어나고, 치유가 일어나고, 결단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인위적 규례는 사람을 변화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올무에 묶어버리게 만들고, 자신도 변화되지않으면서 남들도 변화하지 못도록 만드는 굴레를 씌워버리는 것들이었습니다.

 

   3. 안식일에 대한 2가지 교훈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

1) 안식일은 인간의 기본생존권을 보장받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의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사울을 피해 도망하던 중에 너무 배고파 제사장들만 먹는 제사음식 곧 진설병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때  <아히멜렉 대제사장과 그의 아들 아비아달 대제사장>이 핍절한 다윗과 부하들을 위하여 제사에 사용된 후 물러냈던 진설병(떡)으로 저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라고 건네주었던 것입니다. 그 진설병은 자신의 것이었지만 그것을 배고픈 자들에게 온전히 드렸던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먹으면 안되었던 진설병을 일반인들이 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재 해석하셨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났고, 하나님은 인간의 기본 생존, 기본 생활권을 보장하시는 것을 율법의 기본전제로 가지고계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법이 엄하고 무서운 면도 있지만, 하나니의 법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큰 사랑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고, 하나님 자신의 권위를 인간의 생존권을 짓밟으시며 자신의 권리를 찾으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본문) 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먹든, 비벼먹던 전혀 하나님의 율법에 저축되지 않았습니다. 훔쳐가는 것 빼고는 그 자리에서 배고픔을 달래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이미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인간에게 주신 기본권리마저 자신이 만든 인위적 유전 규례를 가지고 정죄하려는 마음으로 가득찼으니,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던 “인간의 기본 생존권”을 박탈하며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왜곡했는지 깨달 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율법을 주셨을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를 찾으려고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권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인간의 건강을 위하여, 인간의 영혼의 만족을 위하여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심이셨습니다. 

 

적용)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그분 안에 안식할 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참된 쉼을 얻고 자유를 얻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안식일은 예수님이 주인되심을 선포하신 날입니다. 

인간이 쉬지않고 일만하는 날만 있으면 인간은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예수님께로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본문) 27-28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해서, 안식일을 경홀히 여겨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행복하기를 바라시며 주신 ‘하나님의 마음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참된 안식일을 들고 오셨습니다. 그분안에서 새롭게하시고,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은 안식을 안식일에서 찾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 그분에게로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건으로 죄를 해결하셨고, 부활로 영원한 안식을 보장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일을 정하고 지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셨고, 주일날 그의 부활로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의 주인되신 주님안에서 지키는 주일은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안에서 맞이하는 새날입니다. 

이제는 주님의 날을 기념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주일날도 주님의 날이지만, 우리 삶의 매일 매일이 주님의 날, 주일이 되어야합니다. 

 

결론

[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훈련]을 공동저자 백상훈목사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안식 훈련 2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1) 공동체에 참여하고, 영적일기를 쓰는 것이라고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에 동의하며 우리 교회야 말로 함께 모여 예배하며, 새벽기도하고, 말씀공부하고, 수련회에 참석하는 시간들이야말로 거룩한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 일상생활속에서 스스로 안식 훈련을 찾아 텃밭을 만들고, 목공을 하고, 음악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ㅡ그가 개인적으로 제안하고 싶었던 안식 훈련은 호흡의 들숨과 날숨을 통한 하나님의 현존기도였습니다. ‘의식적으로 호흡하며 들숨과 날숨’을 쉬면서 장소 시간 불문하고 호흡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으므로 숨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라고 추천했습니다. 그렇다고 호흡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이 “육체의 회복, 고통의 치유, 마음의 평강, 분노와 번민과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는 산만했던 마음에 평강을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5월달에 안식에 관한 말씀을 들었고 들은 말씀이 우리의 삶속에 잘 적용되어 매일의 삶이 주안에 머무는 삶으로 참된 안식을 영원까지 이어가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오늘도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주일을 제정하여 주셨사오니 과거의 형식적인 율법 생활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동행하며 함께하는 매일의 주일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 지시고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를 기뻐하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생명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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