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7:24-27 The Wisdom of Hearing and Doing the Word
지난 한 주간에 큐티속에서 열왕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지혜라는 것은 교만하게 남을 속여가며 나의 욕망을 채우려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으로 출발했던 왕들이었지만 어떤 왕은 세상 지혜를 따르다가 망하는 길로 가고, 어떤 왕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다가 흥하는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로부터 주시는 것이 구원받는 지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세상 기준으로보면 미련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보면 구원받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왕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고 말씀과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아합 그리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왕들을 보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같이 하였더라”했습니다.
고린도전서1:18-25절에보면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오늘 하나님께서 지혜를 열어주셔서 말씀이 보이게 하시고, 들리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는 지혜자가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1.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 민족을 초월하여 누구든지입니다. 재물과 학벌과 외모를 초월하여 누구든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차별없이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어떤 한가지 말씀만 지칭하신 것이 아니라, 마5-7장 전체를 아우르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의 이 말들을 듣고 행하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그 모든 말씀들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너무나도 많은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에 다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다 실천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말씀을 매일 매일 읽어가야할 체계적 성경읽기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성경 전체를 보는 눈이 열리게 될 것이고, 성경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자신의 영혼을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교인은 성경을 뽑기식으로 읽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성경을 펼쳤더니 -마27:5 “유다는 물러가서 목매어 죽은지라”… 이 말씀이 아닐꺼야, 다시 펼쳤더니 -눅10:37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이 말씀도 아니야, 다시 펼쳤더니 -요13:27”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그래서 구약쪽에서 다시 펼쳤더니 -수18:3 “어느때까지 지체하겠느냐”: 그렇게 성경을 읽을 때 오늘의 운세 보듯이 읽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내가 먹고싶은 것만 먹으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성경 전체를 보기위해서는 매일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면 혈압측정을 해봅니다, 피를 뽑아 당뇨를 체크해봅니다. 그래도 이상하면 병원가서 검사해봅니다. 의사가 진단하고 약처방을 해주면 약국가서 약처방을 받습니다. 그런데 귀챦다고, 번거럽다고 해서 집으로 바로 돌아와버리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점검받아야하고, 성경 곧 신약ㅡ구약,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면서 신앙의 올바른 균형을 지켜가야 합니다.
아무리 손에 들려진 약이라도 먹고 삼켜야 하듯이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고 말로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말뿐인 신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집을 반석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같다”고 비유해 주셨습니다.
2. 주초를 반석위에 세운 지혜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1) 삼중시련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지혜에 대한 비유속에는 ‘삼중시련’이 있습니다. (1)비 (2)창수 (3) 바람입니다. 비 창수 바람의 삼중 시련은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들입니다. 연속적으로 찾오온 시련입니다. 시간을 두고 쉼을 얻다가 다시 찾아온 것이 아니라 돌아서면 시련, 또 돌아서면 시련, 또 돌아서니깐 시련이 찾아왔다는 말씀입니다.
첫번째 시련은 “비를 만난 시련”입니다. 비의 종류에도 여러가지입니다.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맞는 비가 아니라, “헬)브로케: a torrential rain: 폭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폭우는 한순간에 비가내려 사람들의 활동을 마비시켜 대피하지 않으면 금방 온 몸이 흠뻑적셔질 것이기 때문에 피해야하는 비입니다. 얼마나 큰 폭우였냐하면 노아홍수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처럼, 비가 아니라 물을 퍼붓는 것 같은 비, 너무 많은 비로 인하여 숨조차 쉬울없을 정도의 비말입니다.
두번째 시련은 “창수를 만난 시련”입니다. 창수는 “헬)포타모이: 게센 강물을 이루어 사람을 사로잡아 갈만한 물살입니다. 사람만 삼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쉬는 집과 사람이 경작하는 논밭과 짐승과 자녀들까지 모조리 휩쓸어 가버릴 만한 창수를 말합니다.
세번째 시련은 “바람을 만난 시련”입니다. 바람 또한 헬)아네모스: 광풍, 대풍, 돌풍을 모두 의미하는 말입니다. 오클라호마에 살면서 많이 듣는 말중에 하나가 토네이도입니다. 나무가 뽑혀나가고, 지붕이 날아가고, 초토화시켜버릴 만큼 강력한 돌풍 앞에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 만큼의 바람앞에 우리는 실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 버텨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삼중시련을 어떻게 극복하게 하시는지 다시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였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삼중시련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지혜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긴장속에 살아갑니다. 비-창수-바람에 대한 긴장, 삼중시련이 나에게 부딪힐 때 찾아오는 긴장, 무너질까 아니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심리적 긴장… 그런데 본문을 보면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위에 놓은 연고때문”라고 한 것입니다.
주초는 주춧돌의 주추(柱魔)라는 말입니다. 집을 세울 때 집 기둥을 세우기 전에 밑에 받혀주는 역할을 하는 파운데이션입니다. 파운데이션이 온전치못하면 무너져 내립니다. 그래서 밑에서 받혀주는 역할을 잘해주는 가정, 교회, 사업, 나라-국가는 싸이즈에 상관없이 견고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마25장:1-13절 말씀에 보시면, 신랑이 올 때 신랑 맞을 들러리들 10명이 나옵니다. 그 중에 5명의 들러리들은 등과 기름을 모두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랑이 온다는 소식이 들려지면 자다가도 일어나 등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5명은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천국혼인잔치에 함께 들어갔지만, 등만 준비한 5처녀는 혼인잔치집 문전앞에서도 내어 쫒김을 당하고야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준비해야할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말씀과 성령이라는 기름 준비가 필요합니다. 믿음만 있다해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말씀과 성령이라는 기름없으면 껍데기뿐인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삼중시련을 견딜 준비를 해야합니다.
적용) 지구는 지금 ‘폭우와 창수 그리고 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대피소를 만들어 그때를 예비합니다. 어떤 사람은 산속에 지하 벙커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또 다른 행성으로 피난가려고 대피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신 지혜로운 방법은 피하는 것에 있지 않고 버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집이라는 *구조자체가 걷지도 못할뿐더러, *업고 갈 수도 없는 조건속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3) 주초를 반석위에 놓으십시오!
버텨야 할 때, 인생을 버텨야 할때, 예수님은 주초, 곧 파운데이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다시 본문을 보십시오.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주초를 어디 위에 놓았다고 합니까? “반석위에놓았다”고 했습니다. 놓았다는 것을 믿음과 관련있는 단어입니다. 내가 정말 안심하고 맡길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반석되신 하나님님과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지하고 마음을 맡길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기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의 보내신 성자 예수님은 육체를 입으시고 오신 구세주셨습니다. 우리가 볼수 있고, 만질수있고, 느낄수있는 예수님이 신앙의 표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요 메시야요 구원자로 믿을 때 그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적용) 저는 우리가 이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조건속에 놓인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은 4가지 기본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4가지를 소개합니다.
1)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너진 인간의 정체성, 문닫을 것 같은 교회, 위기를 맞은 가정,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촌이 살길은 다양한 것들이 만연한 세상속에서 잃어버린 기본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기본은 잘못된 것에 대한 고집이 아니라, 바른 것에 대한 고집이고, 바른 것은 하나님께 있으니 나를 만드시고 부르시고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이 기본입니다.
2)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벧전1:24-25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날 때에도 말씀이 붙잡고 계시는 자들이 되어야합니다.
3) 다시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희망이기때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우리가 모여있는 곳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몸부림쳐 드러낼수있는 곳,예수그리스도안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함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곳이라면 그곳이 작아도 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4)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가지고 위임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어디를 가든지, 어디에 머물든지 당신은 살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분위기를 살리고, 생태계를 살리고, 마음상한자들을 위로하십시오. 이웃들에게 빛을 비추고, 맛을 내는 사람되십시오. 그리하여 저들로 나를 보고 빛을 찾고, 맛을 보게 하십시오! 내가 믿는 그리스도를 저들도 믿고 함께 천국가도록 인도하십시오.
그것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비결입니다.
끝으로 26-27절을 함께 읽고 나는 미련한 자 되지 않기를 다짐하시기를 바라며 함께 봉독합시다.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기도
하나님 살고 싶습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경청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운지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다 깨닫지 못하고, 다 실천할 수 없기에 매일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세상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에 순종하게하시고, 세상이 보는 기준보다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대로 살아가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하시고 악에 빠져있다면 건져내 주옵소서! 그리고 이웃을 향하여 살리는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