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8: 1-25 성령안의 삶(1)
이번 수련회의 주제 말씀은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번 수련회가 마칠때까지 우리가 암송해야할 말씀입니다. 한번 따라 외워볼까요!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요한복음6:56, 57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의 인육을 먹는 것이지만, 영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해석해야하며 예수님께서도 영적으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요6: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
“영”은 헬라어의 “프뉴마(πνεῦμα)”로서 그 의미는 “숨 쉬다”의 뜻을 가진 ‘프네오(πνέω)’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적용) 성령은 답답한 곳에 오셔서 숨통을 열어 주시며 숨을 쉬게 하십니다. 그리고 “영”이라는 말이 구약 히브리어에서는 “르아흐(רוּח) 곧, 생명을 담는 울타리”라는 뜻입니다. 적용) 성령께서 이번 수련회에 모인 우리를 “생명을 담은 울타리”처럼 지켜주시며 보존하시며 우리의 모임이 생명이 넘치되 더욱 풍성하게 넘치는 수련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생명의 말을 합시다! 생명의 행동을 합시다!”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1절부터 25절 말씀입니다. 먼저,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이제’라는 말씀은 앞에서 겪었던 고민이 이제 해결되었다는 말씀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에 겼었던 고민이 무엇입니까? 로마서7: 14절로부터 오늘 본문 8:2절까지를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면서 사도바울의 고민과 해결을 좀더 쉽게 살펴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롬7:14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것인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육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입니다. 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6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17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나에게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0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롬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멘)
바울은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던 자였습니다. 늘 그렇게 율법주의자로 사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후 율법 아래에서 끌려 다니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된 것입니다. 롬7: 14절) 나는 육정에 매인 존재, 죄 아래 팔린 몸, 22)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이고, 이런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줄자가 누구냐”고 스스로를 비참한 사람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자기 인생속에 두 마음의 투쟁이 공존하고,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을 오가며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비참한지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8:1,2절은 그런 비참한 인간 실존의 모습속에서 확실하게 해결을 보게 된 말씀으로 그의 고민의 결론을 매듭짓게 되었습니다. 적용) 오늘 우리의 투쟁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머뭇머뭇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여러분의 모든 고민에서 해방되기를 축복합니다.
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연약해서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이 본성 곧 육신대로 살아가려하니 율법대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제한시키고, 왜곡시켜 율법의 본래 의도를 훼손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없었던 율법의 요구를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성취하셨고, 모든 인류가 받아야했던 죄의 징벌까지 다 담당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율법으로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율법의 성취자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인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게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적용) 죄로 타락한 인간은 연약한 실존입니다. 결정할 수도 없고, 결정을 한다해도 모두가 삐뚫어진 결정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연약한 인간의 실존을 모르던 한 돈 많고, 젊은 청년 율법주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자신만만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마치 자기는 못지키는 율법규례가 없다는 모양새로 물은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말라, 너의 부모님을 공경하라”했더니, 청년이 대뜸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다 지켰습니다. 다르게 지켜야할 것들은 없습니까?”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부족한 한가지가 있으니, 네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하셨습니다. 이 청년은 자꾸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주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자꾸 하려는 것보다 누구를 따르라고 가르쳤습니다. 무엇을 자꾸 해야만 영생얻는 줄 알고 살아왔던 부자청년이었는데 그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에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 예수라는 사람이 누군데 내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공덕 따위는 아무 필요없이 여기고, 자기가 뭔데 자기를 따르라고 한다냐…” 그러면서 고민에 빠진 것입니다. “내가 쌓아 올린 의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모든 인간은 연약하여 결코 율법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육신의 보내사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오직 우리의 의로움도 심판도 오직 다 담당하사 성취하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믿고 따르기를 축복합니다.
5-9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첫째, “육신”(사르크스(σάρξ): sinful nature"; flesh)이라는 말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과 ‘세상 물질적인 욕망과 유혹과 죄악에 끌려 다니는 행동’을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미 로마서 2장에서 말씀하였고,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적용) 나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내 마음속에 두기를 싫어하십니까 아니면 기뻐하십니까? 저는 저를 돌아보며 다시 되물었습니다. ‘돼지를 씻기고 옷을 입히고 액세서리를 달아주었더니 다시 돼지 우리에 가서 뒹굴었다(벧후2:22)는 말씀처럼, 옛 성품이 자꾸 튀어나오면 되돌아 가지말아야할 곳으로 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후에는 그것이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하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결코 그 더러운 곳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영”(프뉴마(πνεῦμα): Spirit)이라는 말은 ‘성령님’을 말하고, ‘영을 좆는다’는 말씀은 “성령님의 인도와 지도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성령님의 인도와 지도를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1) 노년기: 그의 노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삼하23: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면서까지 여호와의 영, 성령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2)전성기: 그가 젊은시절 전쟁의 승리를 만끽하고 즐길 때, 성적 욕망을 참지못하고 밧세바라는 여인에게 범죄하였습니다. 그것을 감추려고 그의 남편까지 죽였습니다. 그때 나단이 와서 비유로 회개를 촉구했을 때 못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직선적으로 이야기하니깐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때 다윗은 회개하며 자신의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하며 지었던 시가 시편51편이었습니다. 그곳11절에는 성령을 거두지 말아달라는 다윗의 울부짖는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주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둬가지 말아주소서.” (3)소년기: 다윗이 어릴적 아버지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절, 사무엘 선지자가 미래의 왕으로 뽑아 기름붓는 예식을 치를 때 다윗 집안에 짱짱한 형님들이 7명이나 사무엘 앞을 지났으나 기름을 붓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윗이 막내로서 그 앞에 지났을 때 사무엘은 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삼상16:13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감동되니라.”
이제 성령님이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확실하게 증거하기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께 굴복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지만, 영의 생각은 하나님께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지도를 받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지만, 영의 지도를 받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그리스도의 사람이지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적용)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 결단해야 합니다. 주여 내 속에 하나님의 영, 성령이 영원토록 함께하여 주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찬양)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ㅡ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10-25.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섭리에 굴복하나 장래 영광의 소망을 바람)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교훈1) 성령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14,15절에서 말씀하신대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훈2) 성령안에서 우리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18절을 보시면,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훈3) 성령안에서 우리는 문화적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19절 말씀을 보시면,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라고 했습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만 바라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락할 때 피조물이 타락했고, 우리가 회복될 때 피조물이 회복되기때문입니다.
교훈4) 성령안에서 우리는 몸의 구원을 기다려야합니다. 23-25절에 보시면,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결론
세상은 여전히 투쟁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울타리속에 보호받는 우리들에게 생명의 풍성함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수련회의 모든 시간들이 성령의 인도함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시간들로 만들어가신다면 이번 수련회는 은혜와 기쁨과 안식의 수련회가 될 것입니다.
찬양) 주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합심기도: 1.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됨의 삶을 살도록 기도합시다. 2. 은혜와 즐거움과 영혼이 참된 쉼을 얻는 수련회되기를 기도합시다. 3. 정죄하려는 무기력한 자의 모습을 털어버리고 성령안에서 주시는 열매로 살아가는 수련회 되기를 기도합시다.
롬8: 26-39 성령안의 삶(2)
수련회를 지내면서 과연 내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삶을 살았는지 돌아봅니다. 여전히 우리는 로마서7장의 두 사이에서 머뭇 머뭇하는 인간의 실존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벌어지는 두 가지의 법속에서 일어나는 투쟁속에 살아간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하시며, 기다려주시며,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구원하시는 계획속으로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성령을 좇아서 성령의 생각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이번 수련회를 오기전이나 와서 그리고 돌아가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에서 이룩하시고 부활로 다시 생명을 얻게 하신 사랑의 증거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 증거를 믿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며, 그 성령님은 우리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구원과 진리와 믿음과 새 사명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칼빈은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거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너무 연약하여 그처럼 많은 무거운 짐들을 감당할 수 가 없다는 반대를 내세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바울은 신자들 앞에 성령의 도움을 제시하고 있다. 이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어려움들을 넉넉히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강건하여진 까닭에, 십자가를 지는 일이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아무도 불평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무거운 짐을 지고 간다할지라도 성령께서 도우시기 때문에, 자꾸 안된다, 못한다고, 불평원망하지말고, 위로부터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받기에 힘쓴다면 능히 우리도 성령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1:8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시니라.”
오늘 우리는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힘입을 때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고, 기도로 감당할 수 있고,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1.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우십니다.(26-30)
26-30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아직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며 살던 어떤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소그룹 모임을 인도하는 인도자였습니다. 그는 오늘 본문 말씀속에서 궁금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그 집에 들어갔을 때 그는 이 본문을 가지고 몇 명의 맴버들과 토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향하여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그때 제가 한 가지 비유를 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축소해서 이야기했지만 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실화) 베일러스 목사님과 그의 아내는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마음이 답답해서 식사를 멈추고 특별한 30분의 기도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카페를 들려 커피를 마시려는데 카페 주인이 “목사님, 목사님의 부모님이 트럭 밑에 깔려 병원에 실려가셨습니다.” 목사님과 부인은 다급히 병원에 갔는데, 어머니의 얼굴에 긁힌 자국외엔 부모님 모두 무사하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고 난 시간이 목사님과 아내가 식사를 하다가 식사를 중단하고 기도하던 그 시간과 일치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 내가 큰 트럭에 깔려 있었는데, 누군가 강한 힘으로 자신을 차밖으로 밀어 내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고 간증하신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는 우리가 정해 놓은 대로만 살게 하지 않으십니다. 특별한 일을 위하여 특별하게 기도하게 하시며, 내가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어 가실 때 순종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을 통하여 긴급한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사도행전16장 6절에 보면,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아시아에서 전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아시아 전도를 위하여 모든 계획을 세웠는데 그래서 그 계획대로 아시아 전도여행을 하고 이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나타나 유럽으로 가서 전도하도록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미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거절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 당시 성령께서 바울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방향을 돌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방향을 돌린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선교정책에 거슬리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선교의 주체가 오직 성령의 주권에 달려음을 더욱 믿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계획이 치밀해도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교회는 세워졌던 것이었습니다. 잠언서16: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적용) 저는 한국에서 개척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나의 사역의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사람들이 미국에 보낸 것같았고, 사람들이 미국에 초청한 것 같았지만, 사명자로 부름받은 저는 지금껏 저의 가고, 서는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겼습니다. 저는 기도했고 일생일대에 딱 한번 있었던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앞에는 유리조각 길이 놓여있었고, 예수님은 머뭇거리는 저의 길 앞서 그 유리조각길을 걸으가셨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시며 오라고 손짓하셨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이 길을 걷는데 예수님은 입으시던 흰색 두루마리를 벗어 내 앞길에 깔아주셨습니다. 그때 나는 발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고, 사도바울과같이 부르심의 사명이 사람에거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만 두었습니다. 저에게 고마운 분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제가 사명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끌어주시고, 뒤에서 밀어주신 많은 분들에게 정말 또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버티게 해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참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마운 사람보다 항상 새 사명으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없기에 날마다 성령하나님과 함께하기를 내 영혼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어쩔때는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고, 듣지 말았으면하는 소리도 듣게되고,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럴때 마다 하나님은 저를 강하게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독수리는 자기 새끼를 훈련시키실 때 혹독하게 훈련시킵니다. 절벽 높은 곳에 새끼들을 키우고, 어느정도 자라면 그곳에 더 이상 있지말라고 밀어내버립니다. 그러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경험하지만 어미 독수리는 그가 날개짓을 하며 창공을 날을 수 있게 만들어 갑니다. 결국 한 마리도 빠지지않고 자기 새끼들을 전부 날아 다닐 수 있도록합니다.
이사야40: 29-31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수련회를 마치고 이제 세상속으로 나아가 살아가면서 수련회를 통하여 받은 성령의 힘으로 창공을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새 사명으로 날마다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1-39)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
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지난 밤에 우리는 성극을 하게 되었습니다. 4가지 주제를 가지고 다루었는데 그때 했던 성극의 인물은 노아, 다윗, 요나, 다니엘이었습니다. 1) 노아는 세상 유혹대로 살지 않고 약속을 따라 방주를 예비하여 마지막 날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2) 다윗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3) 요나는 하나님의 선교 명령에 불복종했다가 고래를 만나 회개하고 사명에 다시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4) 다니엘은 하나님만 섬긴다는 이유로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막으시고 그를 살려내며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구약성경의 특징은 신약성경과 다른 것이 성부 하나님께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성령하나님께서도 함께 역사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성령의 이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성령 하나님은 노아와 함께 하시고, 다윗과 함께하시고, 요나와 함께하시고, 다니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본문을 살펴보십시오!
“31 그런즉 이 일(로마서전체내용속에 나타난 인간실존에 대한 일을 의미합니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입이 백개라도 할말이없는 존재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심판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안에서 내편되십니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우리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아끼신 하나님은 구원도, 권세도 주셨습니다)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아끼시는데, 감히 누가 예수안에 있는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지금도 우리의 변호사가 되셔서 변호하시며, 우리들이 죄의 종노릇하지 않기를 기도하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헐벗음)이나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난, 감옥, 핍박,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없습니다)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함과 같으니라(시44:22절을 인용했습니다ㅡ비참한 고난속에 도살당하는 양처럼 죽임당하고 있는 현실일지라도)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죽임 당할 위기에 놓여질때라도 넉넉하게 이길 힘을 주십니다. 아멘)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확신은 지식적 고백이 아닙니다. 실제 상황속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이 도사린다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적용) 하나님은 실패한 저에게 다가오셔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럴때 나의 앞길을 예측할 수 없었어도, 그 사랑안에 붙잡힘을 받고 있는 이상, 나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있었습니다. 지금도 종종 실패할때도 있고, 낙심될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결론
인간의 실존? 그것은 정말 지긋 지긋한 전쟁입니다. 언제쯤에나 주님이 오실지 기다려지지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으로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우리를 붙잡아주시며 넉넉하게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제 수련회의 폐회예배이며 새로운 주일을 맞이하는 한주간의 첫날 그리고 새로운 한달 7월달의 첫번째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새사명을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새용기를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새희망을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성령안의 삶’을 로마서8장 말씀을 통하여 배우게 하셨사오니, 이제 세상속에 나아가 성령의 울타리속에 거하며, 성령의 지도를 받으며, 성령의 도우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사랑안에 넉넉한 승리자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영원토록 붙잡아 넉넉한 승리로 이끌어 주시기위하여 이땅에 오사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사 영생주신 우리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