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일생(17) 택함받지 못한자와 택한 받은 자의 삶
본문
창28:6-9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14-08-03
성경속에는 하나님께 택함받은자와 택함받지못한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그 선택하심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며 창조자의 권한입니다.
성경에보면 가인과 아벨이 함께 예배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배를 선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이십사장에보면, 두 사람이 맷돌을 갈다가 한사람은 택함을 받아 데려감을 당하지만 한사람은 버림을 당하고, 두 여자가 맷돌을 돌리다가 한 여자는 데려감을 당하지만 한 여자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은 이십오장에보면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둔다고했습니다.
로마서 구장 십일절로부터 십삼절에보면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하심과 같으니라” 그리고 나서 이런 비유가 나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했습니다.
 어떤 자매로부터 그런질문을 받아본적이있었습니다.“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왜 택자와 불택자를 만드셨고, 왜 천한그릇과 귀한그릇만드셨냐?” 그때 당시, 그 자매의 삶이 너무 힘들었고, 너무 억울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마치 어릴적,불만쌓이면,부모님께,왜낳았냐?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애매히 고난받고, 억울한일 당해도 예수님 때문에 당하면 복이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이라는 인물을 잘알고있습니다. 그는 재물, 자식, 몸의 질병속에서도 고백하기를 ‘주신자요 하나님, 취하신자도 하나님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개입하시며 주관하신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다 그분의 것임을 인정할 때 여러분의 삶속에 참된 신앙의 이야기를 써내려갈수있게될것입니다.

 창세기 이십팔장은 에서와 야곱의 삶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본장의 골자는 택함받지못한자와 택함받은 자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자를 부르실때는 자신의 가진 것을 내려놓게하신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하시며 부르십니다.  그러나 택함받지 못한자는 끝까지 자신의 가진 것이 전부인냥, 그것을 의지하며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공로로 살게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가면 “너 뭐하다 왔니?”하시면 “네, 저는 내 할 일만 하다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게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외에 것들을 주인으로 섬기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나의 왕좌의 자리로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알던 목사님 한분이 카톡으로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신데 나의 삶은 왜 그렇게 부족한 것이 많은지! 때로는 갈급하고, 허전하고, 스트레스받고, 상처받고, 건강치못하고, 만사가 귀챦고, 물지도 쪼들리고, 정서적인것도 메마르고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나의 목자였습니다. 나의 고집, 나의 자존심, 불순종, 쓴뿌리, 자기 자신, 물질이 이런 것이 나의 목자가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니깐 풍성하지 못하고 늘 부족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목자라는 것을 깨닫기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삶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 자체가 나의 목자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되니깐 ‘부족했던 나의 형편과 관계없이 하나님 한분만으로 부족함 없는 하루를 사는 것을 체험하게되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하시는 것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에서는 축복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까?
우리는“에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장자의 명분을 팥죽한그릇에 팔아버린자다>라고 생각이듭니다.
 그렇다면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기떄문에 장자의 축복을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단정할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냐하면 38절에보면 에서는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후 누구보다 장자의 축복을 눈물을 흘리며 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받고싶지않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축복이 내 것인냥 살아가다보니 경홀히 여겨버렸던것이었습니다.
창세기 이십칠장 삼십일절에보면 마음껏 축복하소서!, 삼십사절에보면 내게도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삼십육절에보면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삼십팔절에보면 내게도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사십일절에보면,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에서>는 축복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자의 축복이 자기것이기에 더 집착했고 더 간절히 원했습니다. 내것을 빼앗기니깐 미움이 생기고 살인까지 생각하게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에서는 태어나면서 간발의 차이이긴 하지만 야곱보다 먼저 태어났고, 그것은 누구도 변개할수없는 신의 뜻이라고 여겼습니다. 동생이 아무리 팥죽 한그릇에 내가 받은 장자의 명분을 산다고 할찌라도 장자의 축복은 절대로 팔리지않을뿐아니라 팔려지지도 않는 나의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받은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그릇에 팔아버리며 장자의 명분을 남용하고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장자의 축복을 받게되는 날에,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빼앗기게되자 견딜수없는 미움으로 동생을 죽이려고까지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믿으니깐 구원받겠지 이미 난 구원받았어라고 생각하고 에서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않겠습니까!  오늘 내가 바로 에서식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 들지 않습니까? 
 에서 신앙은 난 이미 하나님을 믿으니깐 내 삶이야 어떻게든 살아도 된다는 구원파의 신앙관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런 이삭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것과 예수님을 바꾸자라고 제안이 들어오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바꾸며 살아갈수 있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축복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자의 인생의 모습입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육절에서 구절 말씀에보면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쫒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보았다는 말씀이 두 번 기록되고 있었습니다. 두 번 다 자기 목적을 가지고 세밀하게 관찰하며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에서는 무슨 목적으로 주목하여 보고 있었습니까? 
 첫번째로 육절에서 보았다는 것은 아버지를 자세히 관찰하며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야곱을 축복하고 밧단아람으로 보내주면서 거기서 아내를 취하고 절대로 가니안 이방여인은 아내로 취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아버지께서 야곱에게 무엇이라고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고있었던 것이었던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팔절에서 에서가 주목해 본 것은 아내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야곱에게 축복하며 거론하시며 당부하신 말씀대로 이방인의 여인을 취하지말라하신 즉 자신의 아내들에게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래서 아내들을 보니깐 아버지를 기쁘게 못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단순히 기쁘게 못하였다는 뜻 정도가 아니라, 원뜻은 “나쁘게, 사악하게, 악하게, 아버지에게 아주 잘못되게 행동하고 있었다”라는 뜻인데 그 잘못되게 행동하는 말속에 적극성을 띠는데 보다 더 더 적극적으로 기쁘게 하지않다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하면 이방인 아내들이 이아버지에게 불효막심한 행동을 서슴치 않게 하고, 불안하게하고, 걱정끼치는 일을 하는 것을 자세하게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자, 에서의 아내들과 시부모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무엇이었습니까?
언어차이입니까? 문화차이입니까? 세대차이입니까? 가장 큰 고통이있다면 바로 신앙에서 오는 갈등이었던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선택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싶어 그제서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큰아버지였던 이스마엘의 집을 찾아가서 그 집안에서 딸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에서가 이렇게 했습니까? 에서는 야곱에게 빼앗긴 축복을 다시 되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이제 늙으셨고, 야곱은 돌아올지 못올지 모르는 먼길을 도망갔고, 빼앗긴 축복을 아버지로부터 다시 받을수 있는 챤스는 지금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기위해서 자세히 살펴본즉 하나님을 믿는 아내를 데려오는 것이었던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보낸후 다시는 거론되지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며느리들 때문에 홧병나고 사랑하는 야곱을 보낸후 걱정하다돌아가신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해서 에서는 이제라도 아버지에게 잘 보여서 장자의 명분과 그 축복을 되찾고자 시도한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 이스마엘의 집안에 여자를 데려와 아내로 취하는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에서는 자기나름대로 잘못된 부분을 살펴보면서 고쳐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눈치도 보고, 그래서 한번 고쳐나가보려고 했던 방법이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이였고, 자기에게는 큰 아버지격이던 이스마엘에게 찾아가 그 집안에 여자중에 며느리감을 데려왔던것이었습니다.
에서는 정말 나름 자기를 돌아보았고, 자기의 문제점을 살펴서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결국 장자의 명분과 그 축복을 받지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바로 에서가 축복을 되찾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정말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려고 정말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실수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만봤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지 못했던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살펴볼줄을 압니다. 그런데 정작 그 문제의 겉모습만 살펴보며 고치려하지, 정녕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잘못된 것은 살펴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것은 살펴보는데 이것이 하나님앞에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는 보지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를 다니면서도 비신앙인과 신앙인의 차이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아버지를 기쁘게해드리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잘 모시고 봉양하며 기쁘게해드려야합니다. 
그러나 남들에게 보이기위하여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사로운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에서와 같이 육신의 아버지를 기쁘게해드릴려고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지말아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셋째,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에서가 하나님앞에 회복되지 못한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에서가 하나님앞에서 정말 회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의 아버지의 기쁨을 위해서 애 쓸것이니라, 먼저 하나님아버지의 기쁨을 위해서 간절히 애썼어야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축복에 대한 집착과 욕심만 있었지, 그 축복의 근원지가 어디에서오며 누가주시는지 몰랐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일것입니다. 축복의 근원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막히고 하나님께서 푸시면 풀려지는게 인생입니다. 내 힘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맡기십시오! 맡겨버리십시오! 주께 맡겨버리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의 인생의 주관자이며 창조자이십니다. 여러분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여러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이십시다. 할렐루야!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팥죽한그릇의 가치만도 못하게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것이 육신적으로 얻어진 것이기에 아무도 빼앗아 갈수 없을것이라고 찰떡같이 믿고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것이기 때문에 가져가려면 가져가보라고 남용하며 경홀히여기며 하챦게 여겼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세상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줄 모르고,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귀한줄도 모르고, 천국가게된 것이 얼마나 좋은줄도 모르고, 세상것과 짝하며, 세상것과 바꾸고, 세상을 따라가는 모습과 일반인것입니다.
 찬송가 사백구십이장에보면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십이장 십육절부터 십칠절을 보면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리고 오늘 본문 구절에 보면,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을 대하는 판단과 기준이 잘못되니깐 그에대하여 나타나는 행동표현들마저 다 잘못되어져가고 있었던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에서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아버지와의 관계, 며느리와의 관계, 어머니와의 관계, 동생과의 관계, 인간관계가 꼬여도 이렇게 꼬일때로 꼬이는 것을 보면서 에서가 정말 이 한가지를 볼줄 알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정말이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처럼 어긋난 나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니, 하나님과의 약속이 얼마나 소중한 약속이었는지 이제야 알것같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주세요! 육체의 이로움을 위해 살았던 자를 용서해 주세요!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나쁜 놈이었습니다. 내가 부족했었습니다. 내가 육적병자보다 더 무서운 영적으로 병자였습니다. 내 영혼이 파멸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말라흔 길을 갔습니다. 앉지말라는 곳에 앉았습니다. 사귀지말라한 자와 사귀었습니다. 이제 늦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에 동참할수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에서가 이렇게 기도하며 어그러진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이 먼저 이루어졌었다면 에서는 회복하게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마지막기회가 주어지기까지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육신의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는데 전심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보여지는 기회마져도 볼수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육신의 아버지만을 기쁘게하려고 그래서 축복받아보려고 이스마엘을 찾아가 그 집안에 여자를 아내로 취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에서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택한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으로 몰아가셔서라도 하나님을 만나게하실것이고, 하나님앞에서 자신이 발견하게하실것이고, 반드시 치유하실것이고, 반드시 회복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게하셔서 참예배자로 세워주신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나 택함 받지 못한자는 아무리 많은 기회가 주워지고, 아무리 많은 말씀을 해주고, 아무리 보여주고, 들려줘도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지지않고, 들려지지않아 마지막 기회에서도 회개할 기회를 얻지못하게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며 창조자의 권한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신 그 은혜 감사하며 세상것과 견주거나 바꾸는 일이 있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택함 받지 못한자는 문제의 겉모습만 살펴 고치려하지, 정녕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잘못된 것은 살펴보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택함 받지 못한자는 아무리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마지막 기회까지 주어진다해도 회개할 기회를 얻지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루어가고있는지 자신을 살펴보고 하나님앞에서 회개하며 긍휼을 구하십시오!
택한자는 반드시 회개하며 돌아오게되고 하나님을 만날뿐아니라 회복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우리를 만세전에 택하사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돌려 드립니다.
에서처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본분을 망각하며 살았던 지난 과거의 모든 시간들을 하나님앞에 회개하며 돌아봅니다.
나의 것도 아닌 것을 나의 것이라고 자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것보다 내 영광을 위하여 살았던 것들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주옵소서!
오늘 들은 말씀처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회개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세상의 그 어떤것도 예수님과 비교하지않으며, 나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며 그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성도되게 하여주옵소서!
육신적인 방법으로 세상사람들의 귀와 눈을 즐겁게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중한 일들을 해나갈 수 있는 눈을 우리에게 열어주옵소서!
우리의 숨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사 구원하신 은혜 다 갚을길없지만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이땅에 오사 십자가로 구원하신 우리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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