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빛 예수(1)
본문
요1장1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14-08-24
요1:1 생명의 빛 예수(1)
 질문을 하나드리겠습니다. 어려운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빛)창세기 1장 3절에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이는 첫째 날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 첫째날 창조하신 빛은 뜨겁게하는 불도 아니고, 대낮에비취는 태양의 빛도 아니고, 열도 아니고, 번개 빛도 아닙니다.어기스틴은 이 빛을 신의 은사와 능력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교회 역사에 중요한 인물입니다. 젊은 시절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날도 공원을 거닐며 혼자 말하기를 “주여 어느때까지 입니까?” 그때 갑자기 어린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는데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깜짝 놀란 어거스틴은 눈앞에있는 성경을 폈습니다.로마서13:13-14절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 말씀을 읽고 난 다음 그의 <어거스틴 참회록에는>이렇게 백을 했습니다. “내가 그 구절을 읽는 순간 확신의 빛이 밀물처럼 내 마음 속으로 밀려 들어오고 모든 의심의 어둠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신약성경의 서신서의 대부분을 기록했던 인물입니다. (로마서, 에베소서...고린도전서~빌레몬서까지)그의 부모님은 유대인이었으나 공로로 로마시민권을 획득했고, 그 덕택으로 자연히 로마의 시민권자로 태어났습니다.가말리엘 밑에서 학문을 배워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고 모든 것은 다 갖추게된 전혀 흠이없는 자였습니다. 그의 열심은 교회를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동참했습니다.그날도 예수믿는자들을 잡아 공회에 넘기려고 가다가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었습니다!>>“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그는 더 이상 자신이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전하는데 삶을 다 드렸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요20: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힙입어 생명을 얻게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은 분명하게 기록의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과연, 예수님을 어떻게 믿을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방향과 내용 그리고 그 결과까지 다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올바로 한번 믿어보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다면, 오늘부터 설교하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내방식의 믿음, 내듣고 싶은것만 듣는 믿음에서 벗어나, 성경이 요구하는 믿음>을 소유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의  시작은 <태초>란 말로 시작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1절에도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합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태초는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세기 태초보다 훨씬 더 오랜 이전의 태초를 의미합니다.
창세기의 태초는 창조에 집중하지만, 요한복음의 태초는 예수님의 사역에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태초는 우리의 시간을 포함한 모든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시며/모든 시간의 창조자/모든 시간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게하는 단어입니다.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1절에서 말씀하는 <<말씀>>이란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도요한이 증거하는 <<이 말씀>>이란, 문자/글짜/ 또는 사상/생각속에 가둬놓은 말씀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고 계셨던 그 말씀을 의미하고 있으며, 그 말씀이 곧 성자하나님, 곧 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당시 헬라철학에 물들어 예수님에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면서 믿음에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은 한 선지자 정도로 여기는 <에비온파>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는 한 훌륭하고 지혜로운 인간에게 신적인 그리스도가 세례시 임했다가 고난받기 전날 밤에 떠났다고 가르치는 <영지주의자들>도 많았습니다.
 그 외에도 바울서신만 인정하고 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열등한 창조신이이라고하는 <말시온파>도 많았습니다.
 성령을 너무 강조하면서 새예루살렘이 이 땅에 세워진다는 거짓된 예언을 하던 <몬타누스파>같은 이단들도 있었습니다.
 마치, 비유컨대 예수그리스도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생각과 방법대로 난도질을 하며, 자기 편한대로, 믿고싶은대로만 믿게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의 거짓된 가르침에빠져, 예수님을 자기의 지혜와 자기의 생각에 가둬, 자기 믿고싶은대로믿고, 믿고싶은것만믿는 혼탁한 세대속에
 예수님을 과연 어떻게 믿어야하는지, 올바로 믿는 것이 무엇인지, 한 획을 그어주는 중요한 말씀이 1절이 주는 교훈이며 진리가 되는것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절안에 강조하고있는 말씀의 단어는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있습니다. 그 말씀은 문자가 아닙니다. 인간생각에 갇힌 단어가 아닙니다.
 로고스는 인간적인것으로부터 얽매일수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시간과 물질과 사상과 생각 그리고 이 현상계로부터 얽매이지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본질을 의미하는 말이 로고스인것입니다. 그 본질을 철학자들은 물에서 찾고, 불에서 찾고, 땅에서 찾지만, 사도요한은 로고스되신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찾았던것이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는 이 세상것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는 로고스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영원한 구원계획을 가지고 오셔서 반드시 말씀하신대로 구원하시는 로고스의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시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받은 제자로서 십자가의 고난의 현장까지 따라다녔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를 맡기기까지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않고 성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씀한마디에 죽은자가 살아나고, 바다와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그 말씀의 권위는 마치 창조자의 권위였고,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우리를 위하여 오신 메시야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저나 여러분은 로고스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께 집중되어야합니다.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말씀안에 머무르지마시고 그 말씀대로 오셨고, 말씀대로 죽으셨고, 말씀대로 성취하신 예수님을 믿는 단계까지 나아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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