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 이방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신 예수님
본문
마15장 21-28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3-07-16


마15장 21-28 이방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신 예수님

Matthew 15:21-28. Jesus Who Granted the Gentile Woman's Wish

 

Ⅰ. 두로와 시돈으로 들어가신 예수님 (21)

21 예수께서 거시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두로(Tyre)와 시돈(Sidon)은 베니게(Phoenicia: 지금의 레바논공화국)라는 작은 나라의 전략적 항구 도시였습니다. 특히 두로경우에는 국제적∙ 군사적∙ 상업적∙ 정치적으로 교량역할을 하며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시대 궁궐과 성전을 건축할 때 백향목 건축자재를 지원하고, 기술을 전수하고 이스라엘로부터 곡물을 받던  매우 중요한 교량지였습니다. 겔28:2절에보면 두로 왕은 자신이 신이며 참 지혜자라고 교만을 떨다가, 바벨론에게 13년간 침략당하고, 헬라에게 7달 공격당하다가 결국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두로에 살던 2천명의 지도자가 죽고, 3천명의 사람들이 노예로 붙잡혀갔던 고통을 겪었던 곳이 이곳입니다.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냥 통과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 도시속으로 들어가신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확장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했던 제자들도 예수님도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혼열족이었던 사마리아도 더럽다고 취급하며 그 동네를 돌아가는데, 두로와 시돈 같은 완전 이방인들의 도시를 들어가겠는가 의구심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대인들이기때문에 두로와 시돈 지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저 이스라엘과 베니게의 경계지역을 지났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7:24절에서 분명히 두로에 들어가셨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한 이방여인의 소원까지 들어주신 사건이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확장 때문이었습니다. 행1:8절에보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지상명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2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것은 1) 유대인의 관점에서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하고, 2) 이방인의 관점에서 유대인에 대한 오해를 버려야 합니ㅏㄷ.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을자격이있고, 유대인들도 형식과 전통과 과거에만 묵였있지말고 그런 퀘퀘묵은 것들로부터 회개,회복하지 않으면 구원과도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Ⅱ.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22-24).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가나안의 도시는 진멸의 대상: 마15장과 막7장>

본문에서는 그저 가나안이라고 포괄적 지명을 거론하지만, 마가복음7:26절에서는 그 여인이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마가복음의 말씀을 참고해서 살펴보면, 이 여인은 “헬라인”이라서 헬라인이 아니라 헬라의 문화권에서 자라 헬라어에 능숙하였기에 헬라인이라고 불려 졌던 것이고, “수로보니게 족속"이란 수로 곧 수리아(나라)에 사는 보니게 곧 베니게 민족의 피를 받은 사람이란는 뜻으로 “헬라인,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완전히 이방인이었고, 조금도 유대인과는 관계도 없는 사람이고, 긍휼을 베풀어줄 이유가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 밖에 사람이라서 적대감을 가지고 진멸되어야 할 나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본문 22절에서 “가나안 여자 하나”라고 총체적으로 표현한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가나안은 진멸되어야 할 족속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에게는 약속 받은 땅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진멸하고 쫓아내어야할 명령이 주어진 도시였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가나안 족속들이 두로와 시돈을 중심으로 베니게라는 나라를 이루며 번성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저 진멸 받을 놈의 족속들”이 버젓이 살아있는 꼴을 못 보겠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멸망받을 것들이 계속 버티고 사는 것을 볼때마다 하나님이 어서 속히 멸절시켜 버리시기를 기도하고 있었던 곳이 가나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저런 놈을 안잡아 가시는 모르겠어!”그런 나라 그런 도시 그런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한 가나안 여인의 등장>

그녀의 등장은 딸 자식의 귀신들린 문제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흉악하다, 마가복음에서는 더럽다는 표현입니다. 바로 유대인들이 보는 입장에서는 그들은 정결치못한 흉악하고 더러운 자들이란 것입니다. 딸이 이렇게 미쳐가는데 괴롭지않을 어머니가 어딨겠습니까? 그래서 소문으로 들었던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오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막연한 외적 정보만으로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은혜를 주셨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저는 초코파이 때문에 교회나갔고, 바나나 때문에 성가가에 입단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중풍 때문에 교회나갔고, 어머니는 자식들 때문에 교회나갔고, 형님은 결혼하려고 교회나갔습니다. 그런데 ㅎ나님꼐서는 유치한 신앙, 외적인 질병문제를 통하여 예수님을 찾아왔었어도 믿음을 갖게하시고,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 붙잡히게 하신 것입니다.

 

<이방여인의 간청에 침묵하신 예수님, 무시하신 예수님, 거절하신 예수님>

22절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23절 “예수는 한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하는 말이 “따라오면서 소리지르니 보내소서”; 2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예수님의 침묵과 무시는 이방인들에게는 믿음의 테스트가되었고, 유대인들에게는 회개하고 회복하라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예) 저희 가정은 예수 밖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가문에서 예수복음이 들어왔는데 할머니셨습니다. 할머니 한분이 예수를 믿게 되면서 고모가 목사부인이 되셨고, 저는 목사가 되었고, 큰누나가 에수믿게되었고, 가족들이 하나둘씩 예수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조상에게 제사하고, 무당을 불러 굿하고, 용하다는 철학관 선생들을 불러 사주팔자나 보았습니다. 이용만 당하다가 영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저의 신학도의 부르심, 누나의 정신질환, 아버지의 중풍 같은 질병이 계기가되어 하나님께 나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제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예수님은 침묵과 무시와 거절을 경험하게 하실때마다 엎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셨습니다. >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과 무시와 거절을 경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고, 또 어떻게 극복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성찰합니다. 이방인 같은 자에게는 믿음의 테스트를 하시고, 유대인같은자들에게는 회개와 회복하라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Ⅲ.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5-26).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방여인은 지식적 믿음에서 점점 성장하는 믿음으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극복하기 시작합니다. 머리로만 알던 예수님이 가슴으로 밀려들어와 예수님께 절하며 엎드립니다. “엎드림”은 어떤 말씀도 순종하겠다는 자로 돌입하게 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25절에보면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즉, 저는 어떤 말씀에도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이방여인이 이런 믿음까지 성장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닥칠 시련에 극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얼핏 들으면 “예수님도 세상의 지도자처럼, 민족적 편애주의자, 편견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더 큰 믿음의 성장을 이룬 이방여인의 귀에는 다르게 들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속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들은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는 말씀이 (부정적)“너 같은 진멸의 민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들린 것이 아니라, (긍정적)”나는 마땅히 진멸받아야할 인간이지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다”고 들린 것입니다. 그 증거로 “개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예수님은 이방인들을 표현하셨지만 개들을 경계해야할 들개도 아니고, 목줄 풀린 도사견도 아닌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의미하는 말씀이었던 것이었고 이방여인은 그것을 캐치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들으니 예수님의 말씀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들을 수 있었고, 진멸의 대상이었던 두로와 시돈 즉 가나안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여인은 예수님이 말씀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 말씀이었는지 깨달아 들었던 것이 었습니다. 아직까지 깨달아 듣지 못하는 유대인 제자들보다 더 큰 믿음을 이방여인 가나안여인 진멸받을 족속의 여인에게서 보게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심을 믿으십니까? 서로 인사해봅시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Ⅳ.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28)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성경은 이 땅의 부귀와 형통과 복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장래 예수안에서 받을 영생천국과 위로평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이방여인은 딸의 흉악한 귀신들린 것을 고친것만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 여인 한 사람을 통하여 교만하고 강팍한 두로와 시돈에 복음을 심으시고 그녀를 통하여 복음이 확장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두로와 시돈은 어디입니까? 여러분 마음? 가정? 직장? 혹은 내가 다니는 교회? 예수님께서 찾아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나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나가 긍휼과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침묵하시고 무시하시고 거절하실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들어야합니다. 내게 더 큰 믿음으로 극복하라시는 테스트로 알고 더욱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주의 일에 열심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소원이 큰 믿음안에서 성취될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이방인 같은 저희를 사랑하사 믿음으로 구원시켜 천국영생, 위로평강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믿음의 성장없이 점점 굳어가는 유대전통, 차별, 편견의 벽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허물러지게 하여주옵소서!

두로와 시돈 같은 저희 마음속에 세상속에 교회속에 가정속에 예수님의 임재하여주시고, 멸망에서 생명을 경험하고, 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저희되게 하옵소서!

때로는 하나님이 안보이고, 안들리고, 안느껴져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의 영생과 소망을 품고 세상을 담대하게 극복하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사 영생주신 우리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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