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본문
고전15:1-20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3-04-30

고전15: 1-20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1 Corinthians 15: 1-20 I want to remind you of the gospel I preached to you

 

 지난 주간에 엄청난 사건을 보았습니다. 남자의 모습으로 태어나 여장을 함으로 자신을 희생함으로 아이들을 살렸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또 한 분은 남자의 모습으로 태어나 부엌에 들어가 소보르빵을 만들어 교인들을 기쁘게 했던 사건입니다. 새로운 변신이 일어나는 것에 대단히 감사를 드립니다. 남자가 여자가 실제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할로서 자신을 낮은 자들에게 찾아가 기쁨을 주려고 했던 것은 매우 좋은 자세입니다. 

 

 복음(Gospel)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에 관련한 신 ∙ 구약 성경말씀을 보겠습니다. 구약, 사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신약,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  구약에서는 ‘너희 하나님을 보라’하며 그 아름다운 소식을 힘써 소리 높여 전하라”고 했고,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오셔서 천국복음을 3중 사역방식으로 전하시고 - 가르치시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가 예수이시며,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죄로 죽을 영혼 살리신 사건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이 오셔서 나의 죄를 사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사함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을 믿음으로 받으면 마지막날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일어나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이 복음은 절망한 자에게 새희망을 주고, 폐허가된 성읍에 새소망을 주고, 죽어가고 무너진 인생에게 다시 붙잡고 일어설 새힘을 주는 것입니다: 미국 이민와서 이민교회를 섬기면서 한인들은 열심히 살며 잘 이겨내는 좋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누로 씻으려해도 씻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이방인이라는 겉사람의 모습입니다. 겉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찾아오는 불안과 고독은 누구라도 이곳에 살면서 겪어야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차별없는 복음, 불안을 물리치는 복음, 고독과 외로움으로 세상 것으로 채웠어도 만족하지 못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생수로 그녀를 채워 주셨듯이 복음은 인간의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재차 복음을 설명해주는 말씀을 가지고 말씀증거 하겠습니다.

 

1. 은혜의 복음: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은혜의 복음입니다.(1-11) :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은혜를 느낄 수 있는 분은 첫째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다음으로 은혜를 잘 설명해주는 분이 있다면 어머니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몰라도 모든 사람들이 다 공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이란 노래에도 보면 “낳으실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도 높다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 가이없다는 말은 끝이 없어라는 뜻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에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포기가 없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 모습속에 철없던 투정부림이 생각납니다: 오해,반대,마음몰라줌)

 

고슴도치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고슴도치의 사랑합니다. 그러나 가시 때문에 끌어안을 수 없습니다. 무슨 말 만하면 상처를 주고, 무슨 일 만하면 상처를 주는 고슴도치의 사랑도 사랑의 방식이 있습니다. 고슴도치는 5천개의 가시로 자신을 방어하며 생존하는 동물입니다. 태중에 있을때는 보호막(태막)이 있어 찔리지 않고, 가시가 부드러워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후에는 어미가 보호막을 핥아주고, 몇시간만 지나면 가시가 딱딱해집니다. 그런 위험한 가시임을 알면서도 어미는 보호막을 벗겨 줍니다. 그래야 자신의 연약한 몸을 보호받고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슴도치를 키우려면 매우 매우 매우 친한 관계가 아니면 키우기 어려운 동물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전한복음이 은혜의 복음이라는 것을 10절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고린도 교회를 그 은혜로 포용하며 갈 수 있었습니다. 은혜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사역이었습니다. 저는 고린도 교회 등짝에 돋아난 가시가 많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분쟁의 가시, 하나되지 못하는 가시, 파당의 가시, 차별의 가시, 막말하는 가시, 복음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가시,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가시, 미혹의 가시,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가시, 사도 바울을 불신하는 가시, 버리지 못한 우상숭배의 가시, 음란과 간음의 가시, 동성애의 가시, 도적질하는 가시, 탐심의 가시, 술취함에 빠져 사는 가시, 전혀 배려가 없는 가시, 자기 은사가 최고라며 남무시하는 가시… 정말 악하고 남을 아프게 하는 날카로운 가시들을 보았습니다.

 

 이런 교회를 위하여 바울은 은혜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다시 전하고 있습니다. 

Ⅰ. 은혜의 복음 방식은 포기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1절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한다(그노리조)”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특별한 방식으로 알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이전에 전한 복음을 포기하지 않고 가르치겠다는 뜻입니다. 자식을 포기할 수 없듯이 끝까지 복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두번, 세번, 7번, 죽을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복음이 은혜의 복음이었기 때문에, 내가 받은 그 은혜의 복음대로 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기때문이라고 2절에 말씀하고 있기때문입니다. 복음만이 살길인데 복음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내 자식인데 내 자식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끝까지 복음을 붙잡고 살게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 었습니다. 

 

Ⅱ. 은혜의 복음방식은 성경과 증인과 함께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을 총동원하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대로 믿는 것은 성경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제외시키고 믿는 것은 진리가 없이 믿는 것입니다. 얼마 못가서 탈선하고 말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식 곧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살아있는 지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증인들과 함께 복음을 전한것입니다. ①베드로가 본대로, ②열두제자가 본대로, ③500명의 형제들이 본대로, ④야고보가 본대로, ⑤그리고 만삭되어 태어나지 못한 자신,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신이 본대로 전한 복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믿음과 이성은 부딪히는 것을 경험합니다. 무슨 일을 하고, 또 결정을 할때, 믿음은 내가 알지못해도 믿음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성은 자기가 다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 알아서 사업/직장생활/공부를 하신다면 대박날 것입니다. 결코 실패나 낙심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도 이전에는 자기가 다 알아야했고, 다 이해해야 일을 하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보니깐 ‘살고 죽는 것’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나의 나 된 것이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되어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성은 은혜 아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고, 어떻게 믿느냐는 무지한 믿음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에 무작정 믿을 것이 아니라 지혜의 성경과 훌륭한 증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이런 지혜주심과 증인들을 붙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총체로 전하는 바울의 은혜의 복음을  ”①포기하지 않고, ②성경적 믿음과 훌륭한 증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는 복음”입니다. 이런 은혜의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당신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특별한 사람은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는 연약하여 포기할지라도 하나님아버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성경과 증인들과 함께 할 사람입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수없듯, 나무가 땅에서떨어져나가 살수없듯,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과 증인들과 더불어 살아야 살 수 있습니다.”

 

2. 부활의 복음: 바울이 전한 복음은 부활의 복음입니다.(12-20) : 내일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말라 머지 않아 기쁨의 날 오리라」 했습니다. 평지만 살고 있는 오클라호마의 인생이 오르막이 뭔지, 내리막은 뭔지 잊어버리고 살았어도, 인생은 늘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①인생의 언덕을 오르내리고, ②인생의 하루 속에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고, ③인생의 들숨과 날숨을 내뱉으며, ④인생의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셨는데 그것이 ”새 희망”이었습니다. “새희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고난가운데 새희망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다시 살다”라는 말을 12번 보았습니다. 숫자가 12번이나 나온 것도 귀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더 소중합니다. 언젠가 저는 이 본문을 읽었었고 그때 저는 언젠인지는 몰라도 성경책에다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었습니다. “다시뭉클, 가슴심쿵”: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 과거의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 죄된 우리를 살리시려고 그는 사셨고 우리를 살리셨던것입니다!

 

바울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영원한 복음을 가졌고, 이제 죽어도 주님 다시 오실 때 부활의 소망을 간직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나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이 그런 이기적이신 분이 아니시기에, 내가 복음 때문에 살아야 했다면 남들도 복음 때문에 살려야겠다는 불타는 사명이 생겨났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거듭나 사는 것이 기쁘다면 저 땅 저 영원한 천국에서 부활의 몸으로 변화하여 영화롭게 사는 것이야 말로 허무하게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바울과 함께 포기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는 자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복음을 전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Ⅰ) 은혜의 복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과 증인들과 함께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Ⅱ) 부활의 복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새희망을 주십니다. 이런 가슴뭉클한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영원한 죽음에 살던 저희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수많은 가시로 분쟁과 싸움과 상처와 고통속에 살았지만 이제 이 복음의 능력이 우리에게 은혜와 부활로 우리를 오늘 새롭게하셔서 내일의 새희망을 위해 살아갈 수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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