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전한다”는 뜻입니다. 그 배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셔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모세를 대적하며 우상을 섬기며 불평 원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1세대들을 광야에서 죽이시고 그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로 작정한 것으로 신명/명령을 다시 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2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설교를 듣게 되는데: 그 첫번째 설교는 지난 과거의 출애굽과 광야40년 생활속에 행하셨던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설교했고(1:1-4:43/과거회상), 두번째 설교는 가나안에 입성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규범(율법)에 대하여 설교했고(4:44-26:19/현실규범) & 세번째 설교는 앞서 1세대들의 불순종으로 실패했던 교훈을 삼아 순종은 축복이 되고, 불순종은 저주가 된다고 설교했습니다(27:1-34:12/미래의 축복과 저주를 예언).
본문은 두번째 설교에 속합니다. 새 땅으로 들어갈 2세들에게 규범이 주어졌고, 이 규범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1세대들에게 주었던 규범이었고, 노년의 무르익은 모세의 설교스타일로 다시 전달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2세들은 그 설교를 통하여 새 땅에 들어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하여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안에 거하며 살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2세대들에게 주셨던 규범 곧, 그들이 핵심적으로 여기며 살아가기위해 붙잡았던 말씀 구절을 보면서 오늘 1세대이 우리 자신에게는 물론이거니와 2세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본문의 신앙)을 전수해 줄 수 있는 교훈의 말씀이 되기를 바라며 증거하겠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4)
본문 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단어를 제공합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고 하지만, 그들의 언어에서는 다음 6가지 순서대로 단어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 1) 들으라, 2) 이스라엘아, 3) 여호와는, 4) 우리 하나님, 5)여호와시니, 6)오직 하나인 -이라는 순서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쉐마/들으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그들에게는 전체 문장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의미를 담게 되었고 “그 들음”을 중점으로 쉐마교육, 쉐마전통, 쉐마신앙을 전수하게 된 것입니다. “쉐마/들으라”는 한 단어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한문장을 외우게 했고, 이 한 문장은 오늘 본문 6:4-9절을 전체를 외우게 했고, 이와 연관된 신11:13-21절과 민15:37-41절 (그 외에도 출13:1-16절)을 “쉐마’에 포함시켜 외우게 되었고, 그 말씀을 통에 담아 미간에 달고 다니고, 손목에 달고 다니고, 옷술에 상징적으로 달고 다니며, 후손들에게 전해주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이 이같이 쉐마에 꽂혀/ 꼭 들어야만 했던 이유는 그 들어야 할 말씀이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을 들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존재와 삶의 전부였기 때문에 “오직 하나”라는 말을 사용했고, 인격적인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이란 말을 사용했고, 자존자-구속자셨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말을 사용하며 철저하게 하나님을 들었던 쉐마 민족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교훈하는 말씀은 하나님을 들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들어야 삽니다. 성경을 읽다가 보면 좀더 쉬운 방법으로 읽으려는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화성경을 사서 읽기도하고, 점점 더 쉬운 해석을 찾아가며 읽어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렇게 계속 편하게 성경을 들으려 하다 보니깐, 인간적인 입장에서 이해는 되는데, 계속되는 신앙의 깊은 성숙함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만화성경을 내려놓고 다시 읽던 성경을 잡고, 나머지는 보조용으로 삼고 읽어 나가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연륜에 따라 성경을 읽어가며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담긴 하나님의 뜻이 -현실에서 어떻게 분별하여 적용되는지, 성령안에서 순종하며 덕과 화평과 질서를 따라 행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적용과 성찰없이 그저 형식적인 신앙생활만 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인정받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가 하나님이 “나는 너를 모르겠다”고 하시는 것이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대표적 예로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손목과 미간과 옷술에 말씀을 달고 다녔어도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그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니깐, 회칠한 무덤같이 겉만 잘 믿는 자처럼 다녔지 그 속에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살아 역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예인이가 5살때였습니다. 아내가 예인이에게 “예인아, 너 정말 하나님을 믿느냐? ‘믿어요!” 천국가는 거 믿느냐? ‘믿는데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누구위해 죽었니? 곰곰히 생각하더니 “우리 오빠위해 죽었어요!” 자기를 위해 죽었다고 생각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11살된 예일이에게 물어봤습니다. “예일아, 너 정말 하나님을 믿니?“ 믿는데요’ 그러더니 잠시후에 눈물을 흘리면서 “’사실 나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면서 계속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말하기를 “예일아! 계속 성경을 보고,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해간다면, 반드시 하나님이 네 속에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단다” 하면서 마음속에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철처하게 쉐마교육, 쉐마전통, 쉐마신앙을 전수했었어도 그 말씀이 손목과 미간과 옷술에만 있었지, 마음에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과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믿어 행하지 않았다보니 그들의 첫 믿음/쉐마신앙이 이렇게 형식적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에게 따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마23:5부터보면 (새번역)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외식하는 자라, 소경된 인도자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회칠한 무덤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 하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자신을 깨우치게 하려고 갔던 “선지자들과 지혜자들과 율법학자들을 죽이고 채찍질하고 구박하고 내쫓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참 이스라엘 된 교회는 하나님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들어야합니다. “그는 우리하나님이요, 그는 여호와요, 그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이십니다”. 옷술에만 달고 다니지 말고, 성령과 예수안에서 들어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한 두 번만 듣고 성질내지 말고,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5)
5절 말씀은 앞서 4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4절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오직 하나인 여호와”는 이기적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랑을 나눠주어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알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속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결코 이기적일 수 없습니다. 계산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모, 아내, 자식,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호세아를 통하여 방탕하고 음란한 여자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와 다른 민족일지라도 그들의 아픔을 돌아보고 싸매주고 도와주고 구원받기를 바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을 다라하고 하셨습니다(눅10:33).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나 같이 음란하고 방탕하고, 나같이 차별하고 거절하고 정죄 잘하고, 나같이 물러터지고 부족하고 바보같이 살던 인생에게 어느날 찾아오셔서 “사랑한다”고 “너는 내것이라”고 하셔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종교적 형식만으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친구처럼 사랑하고, 부부처럼 사랑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듯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친구와 부부와 부모자식 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지장이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과 이해소통이 안 되고, 공감대가 일어나지 않고, 뜻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런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말씀속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람해야 합니다.
1)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중심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중심을 다하여 사랑할 때 대충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진실함과 간절히 구함으로 사랑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거짓으로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끝은 비참하게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는 것은 중심을 다하는 사랑입니다.
2)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혼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일에 너무 매여 있다 보면 혼이 빠진다는 말을 합니다! 중학교때 자전거 타고 밭에 가다가 초등학교때 짝꿍이었던 여자친구를 보았습니다. 밭에 도착한 나는 정신이 멍하고 그 여자친구가 온통 내 머리에 가득해서 멍 때리면서 어머니 앞에 서 있는데, 어머니가 내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하고 정신 차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혼이 빠질 때 정신도 빠지고 생각도 빠져나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고쳐 주시기 위하여 혼 빠진 사람들에게 성품을 다하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3) 힘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한계성이 있습니다. 각자의 한계성이 있는데 그 한계성에 끝으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한계성을 계속 도전하며 사랑하다보면 사랑은 점점 완성으로 다가가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닮아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나이별로 한계성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따라 한계성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내게 있는 한계성을 발견하고 도전하려는 정신은 우리를 한층 더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과하지도 마시고, 너무 성급하지도 마시고, 게으르지도 마시고, 나와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마시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의 경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회생활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3가지 훌륭한 인격자세를 볼 수있습니다. 첫째는 진심이었고, 둘째는 전심이었고, 셋째는 성심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진심이니까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친구의 죽음에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니까 사울 왕을 대할 때에도 말씀을 벗어나지 않으니깐 사울에게 끝까지 예우 다 했고 적대감을 품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성심을 다하니깐 하나님이 끝까지 그와 함께해 주시며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했더라면 그들은 가나안 생활이 축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세대가 불순종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거울 삼아, 이제 2세대들은 더 나은 삶으로 변화될 줄 알았는데, 그들 또한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우상과 짝하며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인사)“사랑하며 삽시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 2세대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에게 바라시는 소망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내가 지키지도 못하는 율법으로 옭아매고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아니라 자녀들을 위하여 여러분이 말입니다.
관계가 회복되면 율법은 사랑이 되고, 축복이 되고, 순종이 되고, 여러분이 잘되는 것입니다. 관계가 회복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부부가 사랑하게 되고, 친구를 사랑하게 되고, 자식을 사랑하게 되고, 부모님 사랑하게 되고, 성도들 사랑하게 되고, 목사님 사랑하게 되고, 더 나아가 세상과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사랑하는 방식으로 옆사람을 사랑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과 진리가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가 우리 가운데 들어와 우리를 하나님과 갈라놓게 한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 예수님을 믿음으로 변화 받고 관계가 회복되고, 무너진 하나님의 형상이 거듭나 새사람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사람을 입고 이 땅의 가나안을 살아갈 때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시는 저주받는 길을 가지 않도록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옆사람과 이웃과 사회를 사랑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 결론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2세대들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새로운 땅에 들어가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쉐마 곧,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후대들에게 축복과 저주의 삶으로 갈라지게 할 중요한 말씀이 되었기에 그들은 말씀을 미간과 손목과 옷술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후대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들어야 할 쉐마교육입니다.
하나님을 듣게 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격적, 사회적, 우리의”. 2)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자존적, 구속적”. 3) 오직 하나인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유일신, 삼위일체 신비의”. 우리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을 듣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부모님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듯 부부가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들 가운데 풍성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십시오, 성품을 다하십시오 & 힘을 다하십시오. 우리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열방 속에 드러내며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
어린이 주일을 기억하여 지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니다. 미국이라는 세계속에 거대한 나라에 저희들을 불러 주시고, 한국인 부모 밑에서 살면서 정체성의 혼란에서 불안과 고독하지 않도록 아이들의 중심과 영혼과 힘을 지켜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게 하시고, 사랑안에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부모되어, 아이들이 이 땅에서 복음적으로 잘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이들을 사랑하시며 축복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