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을 구속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고통에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은 이미 종살이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드디어 때가 되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창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속에 있었다지만 인간역사의 악한 본성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죄에 대한 고통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신 본래의 마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뜻은 우리가 구원받고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 심판받고, 고통받고, 불안해하며, 불행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은 관계입니다. 예를 들자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것은 일부러 죄짓도록 만들어 두신 것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통하여 신뢰관계를 이루시고 온전한 사랑을 이뤄가기를 원하셨고 불신안에서는 잣대가 될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본뜻은 우리가 에덴에서 사귐, 교제, 친밀감 같은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세상, 육체, 인간적관계아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격적 교제의 기본이 되는 신뢰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진실, 본질, 영원한관계). 사단은 자기를 믿게 하려고 유혹했고,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꾀임에 빠져 선악과를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신뢰가 무너지면서 하나님 앞에 서기가 두려워 나무사이에 숨어다니며 하나님을 회피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영원하신 지혜와 계획으로 짐승을 죽이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부러 애굽의 종살이 400년을 살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점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애굽의 문물에 휩쓸려, 세상과 짝하다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멀어져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의 본성은 유혹에 약하고, 죄짓기에 빠르고, 세상 것가지고 참 자신을 감추기에 급급해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성도들에게 세상 물정 모르고, 세상이 얼마나 급급하게 변하는지 모른다고 해도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진리가 똑똑해도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앞뒤가 가로막힌 인생속에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켜 영광 받으시는지 살펴보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1.가만히 있을 지니라! (13-14)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쉽게 두려워하는 마음과 가만있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쉽게 분노하고 쉽게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모세를 설득했고, 모세는 애굽왕에게 찾아가 10번이나 이적을 보이면서 보내달라고 설득했습니다. 애굽왕은 9번이나 안보내주더니 10번째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칠 때에 드디어 완고함이 꺾어지면서 보내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애굽땅에서 빠져나왔지만 큰 난관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인도한 길은 바닷길이었습니다. 설상가상, 그렇게 쉽게 보내주었던 애굽 왕이 마병과 군대를 이끌고 쫓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약점이었던 두려움과 성급함은 분노와 원망으로 소리질렀습니다. 성경에는 “심히 두려웠다”,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말했다”는 표현은 그들의 분노와 원망으로 똘똘뭉친 악한 본성, 성령의 인도받지못하는 악한본성이었습니다. 11, 12절에 정확하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11 애굽에 매장지가 없음으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하지 아니하더뇨.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과 광야”라는 갈등속에 놓여있습니다. 애굽에서 살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죽지 않았을 텐데, 지금 광야로 나왔다가 비참하게 죽을 지경이 되었다고, 악한 본성대로 분노하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이런 반응은 선한 공동체의 반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였더라면 어려움을 대처하는 반응은 분노와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3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3,14).
어제 장례식 예배가 있었습니다. 발인예배를 마치고 식당으로 가려고 차를 타고 도로에 진입하려고 차선을 바꾸려는데 어떤 차가 자기가 먼저 가려고 하기로, 나는 그 사람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왼쪽 차선에 섰습니다. 한참후에 K권사님이 “목사님, 만약 그렇게 손짓했다가 사고나면 목사님이 교통정리를 했기 때문에 목사님이 다 보상해줘야 합니다”. 그럼 내가 뭔가 지시해서 빨리 교통정리하고 싶은데 하지 말까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 머리속에 “기다려야한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이 저의 속에도 있는 이스라엘백성의 약점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서 가만이 있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두려워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는 것을 가만이 보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기때문입니다.
2.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15-17)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가만히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행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해야하기때문입니다. 그때가 언제 입니까?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 때, 바다는 갈라지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건너야 할 바다 가운데 생겨난 육로가 열릴 때, 그때가 건너야 할때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왕의 마음을 다시 강팍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들은 강팍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오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다 건넌후에, 애굽군대가 백성들을 뒤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을 때, 하나님은 바다를 들어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인지 보여주실 것이고,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하여 영광 받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찬양)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님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라. 나의 가고 서는 것 주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 가는 사람!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길을 열어놓을 때 가는 사람! 하나님은 오늘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고, 우리는 그를 영접하고 믿고 따를 때 구원의 길로 인도받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때를 돌이켜보며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사43:15-18).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나님은 홍해기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적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친히 길이 없는 곳에 길이 되어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이 길은 가나안의 길과도 차원이 다른 영생과 천국의 길을 놓아주신 것입니다.
나사로가 중병이 들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중한 병이든 것을 알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11:4)했습니다. 예수님이 도착했지만 이미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나 되어 시체 냄새가 났습니다. 예수님은 슬픔을 당한 자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시며 믿음을 촉구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말씀하시고, 무덤 앞으로 나아가 무덤 덮개 돌을 치우게 하시더니,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고, 큰소리로 무덤을 향하여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죽었던 나사로가 수족을 감은 채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죽었던 시체가 살아나오는 영광을 보듯
출애굽의 영광은 영원히 죽었던 이스라엘 백성전체를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날에, 죽었던 우리 영혼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영광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3.흑암과 광명이 있어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19-20)
이스라엘 백성들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은 죽일 듯이 달려들던 애굽 군대를 단숨에 제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백성에게 멋모르고 달려들던 애굽 군대에게 하나님은 흑암으로 덮어 버리셨고, 전혀 앞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낮 같은 광명을 주셨고, 누구라도 범접할 수 없는 보호속에 지켜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철저하게 구원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1) 사무엘은 블레셋이 쳐들어올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사를 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더니 하나님은 하늘의 큰 우뢰를 발하여 블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2) 엘리야는 아람군대에게 둘러싸였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아람군대의 눈을 멀게하셔서 전혀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성도는 기도할 때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3) 시편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재난의 날에 나를 불러라. 내가 너를 구하여 줄것이요, 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내가 기도를 하기 때문에 영광을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자 곧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기도는 영광을 이루는 기도를 하게 만드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하나님께 귀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품속에 쏙 들어가 안기는 것입니다. “저는 감당 할 수 없사오니 주여 감당하여 주시고, 저는 싸울 수 없을 만큼 지쳤으니 주여 대신하여 싸워주시고, 주여 저는 해결할 지혜가 없사오니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들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공작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사자와, 하늘구름과 어둠으로 상대를 제압하시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십니까? 장차 일어날 환난속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켜주심을 믿으십니까? 인생의 홍해를 건너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고 기도하며 준비해야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불신하고, 모세를 거역하였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과거지사 두려움과 성급함으로 분노와 원망의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녀를 철저하게 보호하시고 지키심을 신뢰함으로 홍해를 건널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영광을 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죄악의 종살이에서 자유케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지혜를 주셔서 가만히 있어야 할 때와 행동해야 할 때를 깨닫게 하시고, 성령안에서 무시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억만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사 영생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