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Samuel 15:17-27; Colossians 1:19-20 by making peace through his blood, shed on the cross.
스패포드(H.G.Spafford)라는 변호사는 무디교회의 회계집사로 봉사하며 복음전도자들과 어울리며 하나님을 섬기던 자였습니다. 가족여행을 떠나려는시점에 집에 화재가 났고, 아내와 네 딸을 배에 태워 여행지로 먼저 보냈고, 자신은 화재를 진압하고 정리한 후에 바로 떠나려고 했습니다. 얼마후 배가 충돌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 중에 네 명의 딸들이 죽었다는 전보가 날아 온 것입니다. 죽은 해역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그때 스패포드가 이런 고난중에 눈물로 써내려간 신앙고백이 있었습니다. “불안이 입을 벌려 나를 삼키려하고, 고통이 파도처럼 나를 덮칠때가 있다. 산 죽음을 사는 인생이 될때가 있다. 그럴때도 나는 여전히 피난처되신 주님을 바랄 수 있을까?” 이 시를 바탕으로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같던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사람이 살면서 불안하고 두려운 경험을 할때가 있습니다. 돈이 많다고 피할 수없고, 왕이 되었다고 해서 피할 수 없습니다. 성경속에 수많은 인물들이 다 경험한 것들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하는 것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펴보는 두 인물 사울과 바울도 이런 경험을 겪으며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두려움과 함께 탐욕이 우리의 신앙에 적일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ㅡ라고 했으니 탐욕이 가지는 특징은 사망 곧 죽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아내가 꿈을 꿨는데 두마리 돼지가 서로 등진채 자기 밥그릇을 밥을 먹으려고하는데 먹을 수가 없더랍니다. 자세히 보니 뒷다리에 서로 줄이 묶여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무슨 꿈인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저는 탐욕이 생각났습니다. 탐욕이란 결국 두 마리다 죽음으로 몰고가는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소유하려는 욕심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무소유라고 말해도 통장에는 아무도 모르는 돈들이 차곡차곡 쌓아 놓은 사람도 있기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그 방향을 육체의 소욕에서 성령의 소욕으로 바꾸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ㅡ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게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육신적인 두려움과 욕심을 끊으시고 성령 안에서 주시는 참된 자유와 화평을 얻고 구원함을 이루어가는(성화) 백성되기를 축복합니다.
1.사울
사울은 두려움과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왕이 되었지만 초창기때에 하나님을 섬기던 마음과는 다르게 변해갔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약탈하려고 공격하지요, 인간인지라 화도나고 주체할 수없어 늘 불안해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왕이 된후 블레셋과 전쟁하게 되었을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가장 먼저 제사장을 모셔놓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낸 후에 전쟁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사무엘제사장이 오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서 자신이 제사를 집도해 버린 것입니다. 두려움은 기다려주지 못하는 마음을 가져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려해야하고, 성령의 음성들으려해야하고, 말씀에는 무엇이라고 하는지 생각해야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여봐라, 제물을 가져와라, 제사장은 오지도 않고, 백성들은 두려워 흩어지고 있으니 내가 제사를 집도하리라” . 그래서 사울은 블레셋을 두려워하며 제사를 집도해 버린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처럼 인간적으로 예수님을 붙잡고 늘어질 때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2-23)ㅡ라고 했던 것을 보면 아무리 제자라도 인간적인 생각의 위험성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뒤늦게 도착했고 왕이 하지 말았어야 할 일에 대하여 책망했습니다. 사울은 부득이하여 어쩔수 없어서 그렇게 했다고하지만, 사무엘은 “망령된 일이라, 하나님이 왕에게 주신 명령을 지키지 않은 일이고, 왕권의 종말이 임할 일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른 왕을 찾게했던 일”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이 무엇인지 잘 깨닫고 그 일에 전심전력하는 자가 되어야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이 될 수 없고, 사무엘이 사울일 수없듯이 하나님은 각자에게 주신 역할과 소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십자가의 사명을 위하여 앞을 보며 가셨던 것입니다.
=사울의 두번째 탈선은 아말렉과의 전쟁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만큼은 모든 대적들과 소유물을 모조리 불태워 없에 버려라고 했건만, 사울왕은 백성들과 함께 보기에 좋은 것을 취득하고, 아말렉왕 아각을 살려놓게 됩니다.
사람이 욕심에 끌린다는 것은 신이 아닌 이상 악한 본성을 항상 마음속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옵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유다는 예수공동체의 재정을 보면서 도둑질했다고 성경이 말했으니 우리는 그 누구도 욕심에 있어서 자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에게 떡과 명예와 천하만국을 가질 수 있는 유혹을 제안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고, 하나님외에는 결코 절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탐욕을 보았습니다. 양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게 무슨 소리냐?” 했더니 “하나님께 제사지내려고 남겨둔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젯 밤에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던 것들을 일러 주었습니다.
삼상15:17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탐욕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것만 듣고, 보고, 탈취하도록 만듭니다. 사울왕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못했고 탐욕에 사로잡힌 행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말씀에 청종하셨고, 사도바울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습니다.(갈5:24)
-사무엘의 책망에 사울왕은 발끈하게 달려들었습니다.
삼상15: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그러자 사무엘이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보지 못한 사울왕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의 상태가 무엇인지 말해주었습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제사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왕은 하나님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백성들을 방패막이 삼으며, 자신의 옳음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순종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순종을 위하여 ㅡ오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다시 오실 것ㅡ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범죄했다고 시인합니다. 그 모든 잘못은 백성을 두려워해서 그런 것이다 보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하나님께 경배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버렸다고 말하고는 돌아섰습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사무엘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매달리자 사무엘은 옷이 찢어져도 자신의 갈길을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무엘보다 위대하신 일을 하셨습니다. 아니 비교할 수 조차없는 구원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누명을 덮어씌웠어도 불쌍하게여기셨고, 끝까지 사랑하시며, 구원받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탐욕으로 스스로 망해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은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위하여 이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모든 죄에서 구원받게 해주셨습니다.
2.바울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된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멋진 사역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역속에 성령이 원하시는 사역을 하지않고, 원하지 않는 육체의 소욕으로 할 때가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상태를 일컬어 “곤고한 상태 즉 사망의 몸이된 상태”라고 표현했습니다. 로마서7:24절입니다.
자유하고 싶어도 자유할 수 없고, 구원받고 싶어도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 말입니다. 마치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하다가 용기를 잃고 포기하고 있었을때의 모습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죄가 생각나서 모든 것과 모든 상황을 이겨나갈 수없었을때의 모습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이 땅에 살아가면서 이겨나가야 육체의 소욕이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상태에서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다시 일어서게 된 계시가 무엇입니까?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자신을 보니 얼마나 곤고하며 죽을 지경이었을까요! 그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비다. 그런데 바울이 이런 곤고함속에 구원하실 누군가를 요청하고 있었고, 그 순간 곧 지금 그 순간에 그는 그리스도 구원자 예수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는 결코 정죄할 수 없는 ㅡ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고, 자유함ㅡ이 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께서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중 그리스도 하신일-에 말하기를, “성경 중심 주제는 예수님이 죄를 위하여 제물로 죽으신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으로 죄사함을 주셨고(아멘),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게 해주셨고(아멘), 곤고함에서 자유함을 주셨고(아멘),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세워가게 하셨다(아멘)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성경 전테가 말씀하는 내용이지만 몇 구절만을 읽어보면서 그리스도의 하신일을 생각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골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기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죄인된 저희를 위하여 아낌없이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심으로 구원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언제라도 움크렸다가 튀어나올 수 있는 두려움과 탐욕으로부터 자유와 구원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망령된 행실과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을 모르는 우둔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고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따를뿐아니라 이제는 우리안에 모셔드리게 하여주옵소서! 성령의 음성에 교회를 더욱 화목하게 하시며 화평을 이루는 교회되게 하옵소서! 우리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