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본문
삼상19장8-12; 고후4장7-11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3-03-05

삼상19:8-12; 고후4:7-11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1 Samuel 19:8-12; 2 Corinthians 4:7-11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jars of clay to

 

「하나님의 타이밍」을 저술한 “Os Hillman”이란 경제계의 대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돈이 고갈 될까봐 두려움에 항상 은행에 돈을 비축해 둠으로 평안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십일조와 헌금생활은 했지만 사실 은행에 쌓아둔 돈 때문에 더 평안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모든 쌓아둔 재산을 몽땅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의 만나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어느날 작은 그룹에서 강연을 요청받았습니다. 개다가 사례도 얼마주지않아서 그 강연에 2박3일을 투자해서 가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중에 하나님은 가라고 하셨고, 강연하러 갔습니다. 몇 사람도 없었을 뿐 아니라, 강연 내내 결혼생활에 심각한 위기를 앓고 있는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어버렸습니다. 정말 형편없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판매하려고 들고갔던 저서 책들을 도로 싸들어 오려다가 대부분 그냥 그곳에 둬버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책을 한 권 읽고는 감명을 받았고 전화를 걸어와 큰 경제계 집회에 강연을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강의는 조금전에 했던 것과는 차원달랐습니다. 22개의 섬들에서 찾아온 사업가들이 모여들었고 그 중 한 사업가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며 거금(수표)이든 봉투를 건네 받게 된 것입니다. 그때 오스 힐먼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갔더니 하나님은 축복위에 축복을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훈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의 축복이 항상 임하는 건 아니다. 때로 그 축복은 시간이 지난 후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에 의해 확대되고 증가되어 임한다”

 

오늘 우리가 다루어볼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인도해가시는 사람, 다윗과 바울의 인생속에 환란을 주시지만 인내하게하시고, 인내하게 하시지만 연단하게하시고, 연단하게하시지만 소망을 주셔서 다시 하나님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것을 통하여 ㅡ피하고  도망가는 인생이 되더라도, 우겨 싸임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는 인생이 되더라도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시며 구원으로, 생명의 길로,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함께하는 사람, 부르신 사람,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은 결코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비록 고난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고난을 통하여 더 단단하게도하시고; 부드럽게도하시고; 넓은마음도 주시고; 간절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희생과 손해가 따르더라도 인내하시고 연단되시어 소망을 품게 되기를 축복하며 말씀전하겠습니다.

 

1. 손에 든 창을 내려놓아라!(삼상19:8-12)

 

다윗의 삶 속에는 항상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축하 받아야 할 다윗이 사울 왕에게는 축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불쾌, 분노, 시기, 다윗을 주목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블레셋을 다윗이 승전하고 돌아오는데 백성들은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하며 노래하며 춤추지만 사울은 굉장히 불쾌, 분노, 시기, 주목(죽이려고 기회를 엿보다)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 이튿날, 사울은 다윗을 불렀고 악신이 들어오니깐 들고 있던 창을 다윗에게 집어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창을 피했고 창은 벽에 꽂혔습니다. 사울의 마음속에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다윗편인 것만 같았습니다. 

 

분명히 전쟁에 승리하면 사울, 자신의 큰 딸 ‘메랍’을 다윗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버린 것입니다. 약속을 어긴 것은 앞으로 닥쳐올 시련의 전조에 불과 합니다. 자기 손에 피 안묻히고 다윗을 죽이려고 온갖 술책을 다 쓰던 차에 둘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딸을 이용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블레셋 사람의 포피(남자생식기포피)100개를 베어오면 왕의 사위가 될 것이다”. 다윗은 그 말을 좋게 여겼고 100개뿐아니라 200개의 양피를 잘라왔습니다. 그것을 본 사울은 다윗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더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한평생을 다윗의 대적 노롯하며 평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요나단입니다. 사울의 아들인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라고 해도 아버지 편에 서지 않고 다윗을 친구로서 사랑하며 끝까지 지켜주었습니다. 둘째는 아내 미갈입니다. 다윗과 결혼후 사울이 죽이려고 킬러를 보냈을 때 미갈이 알아차리고 다윗을 창문으로 몰래 도망치게 한 것입니다. 셋째는 사무엘입니다. 친구라기보다는 스승이었습니다. 도망친 다윗이 찾았던 곳은 라마입니다. 라마는 사무엘의 고향인데 그곳에서 사무엘을 만나 자초지정을 다 이야기한 후, 라마 나욧이라는 선지생들을 합숙훈련시키는 숙소에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 -사울이 라마 나욧에 숨어있는 다윗잡으려고 킬러를 1차 2차 3차로 보냈지만 모두가 선지학교 나욧에 가서는 신령한 은혜를 받고 노래하는 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울이 안되겠다 싶어 자신이 직접 잡으러 왔으나 사울 역시 신령한 은혜를 받고 노래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높이다가 궁궐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질문들] ① 내 인생의 사울 같은 캐릭터는 누구입니까? (우리 아버지: 불쾌, 분노, 시기, 주목 & “나”) /② 그리고 나는 과연 다윗 같은 자로 살고 있습니까?(사울과 다윗을 왔다갔다했던 삶)/③ 하나님은 다윗을 어떻게 보호하고 계십니까?(눈동자)/④ 다윗에게 어떤 친구들을 보냈습니까?(요나단,미갈,사무엘)/ ⑤ 그리고 다윗은 어떤  행동을 취해나가고 있습니까? (사울-도망자;블레셋-승리자;친구-사랑받는자)/ ❻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삶, 진짜 좋은 친구들을 얻은 삶 혹시 쫓겨가는 삶은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사람들은 한 시대를 같이 살고 있습니다.  한 시대란 노년도 중년도 청년도 소년도 유아도 같이 살고 있는 시대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우리는 한 시기에 만나서 함께 존재하고 숨쉬며 부대끼며 살고 있습니다:  

 

<<같은 시간속에 서로 다른 모양으로 살고 있지만 그 허용된 시간속에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지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1) 말씀과 함께 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2) 기도하는 삶을 사셔야합니다. 3) 찬송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에게 죄송한 일을 줄여가야 합니다. 끊어야합니다. 변화되어야합니다. 아니면 끝까지 줄여가지도, 끊지도, 변화되지도 않겠다면 사울처럼 평생 살것입니다.>> 그것은 1) 사울이 가졌던 불쾌, 분노, 시기, 주목(남을 죽이려고 사람에게 집요하게 집착)하는 삶입니다. 2) 악령이 지배하는 삶이 되어 손에 든 창을 던지는 삶입니다. 3) 평생을 주목하며 대적자 노릇하는 삶입니다. 이런 삶은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시간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ㅡ 다 이겨먹어야 이기는 것은 아니쟎아요! 지면 어떻습니까?(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영생이 주어졌쟎아요! 우린 하나쟎아요!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기다려주면 어떻습니까?) 내 일도 중요하지만 주안에있는 당신의 존재가 더 중요합니다. “내겐 당신이 더 중요합니다!”

 

2.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라! (고후4: 7-10)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5통의 편지를 보졌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네번째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 1번째 편지는 없고, 2번째 편지는 고린도전서이고, 3번째 편지는 없고, 4번째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고린도후서 1-9장을 4번째로볼수있고, 10-13장을 5번째 편지로 볼수있고, 그외에 또다른 분실된 5번째 편지가 쓰여졌을 수도 있을 견해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하튼 네번째인 고린도후서는 위로의 편지입니다. 고린도후서1장3-7절을 보면 위로라는 말이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고후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린도교회는 참 갈등이 많은 교회였고; 바울이 제일 오래 체류하며 가르쳤던 교회였습니다. 마음 고생 많았고; 제일 많이 눈물 흘렸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3번째 편지에서 눈물로 혹독하게 책망하는 편지를 보냈고, 이 때문에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교회가 시험들지 않을까싶었는데 다행히 그 편지 받고서 그들이 호된 책망에도 회개하고 돌아선 것입니다. “저희가 잘못된 길을 걸었습니다 흑흑흑”  성경에는 없지만 분명 그들은 회개하며 구원의 길, 영생의 길을 걷게 된 것이었습니다. 3번째 편지가 없지만 4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 7장8-13절에서 바울의 근심어린 책망들이 위로와 안심을 얻게되는 장면을 보게 되기때문입니다. 

 

“고후7: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ㅡ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ㅡ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다  13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자녀를 키우다 보면 갈등이 찾아옵니다. 부부끼리 살다보면 갈등이 찾아옵니다. 아이들이 멋모르고 태어나게 되비나 부모와의 갈등, 학교가면 친구간의 갈등이 찾아옵니다. 갈등은 서로 다른 모양으로 만나게 되고, 부딪히고 재질에 따라 쉽게 깍이기도하지만 때로는 불꽃이 튀기며 부딪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도 재질로는 단단한 재질의 사람입니다. 고린도 교회도 재질로 따지자면 단단한 재질의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가 강한 책망에도 회개하고 변화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딱히 무엇이라고 말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쇠덩이 처럼 강해도 사랑이 담겨지지 아니한 강함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변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 마음속에 사랑을 담긴 편지로 얘기 했을 뿐 아니라, 수신자 교회도 그 마음에 신뢰와 사랑을 담은 마음으로 편지를 읽어내려 갔던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단단하고 굳은 마음도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편지는 그들의 마음을 녹이는데 충분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4번째 편지에서 위로하는 편지를 보냈고 그때 그 당시 그 편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내 몸에 담은 편지라고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식탁에 올려지는 식기들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거기에는 서로 다른 식기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은 밥그릇, 어떤 사람은 국그릇, 어떤 사람은 접시, 어떤 사람은 컵, 어떤 사람은 수저, 어떤 사람은 간장담은 그릇, 어떤 사람은 셀러드 담는 그릇, 어떤 사람은 냅킨, 어떤 사람은 투고박스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 대한 나는 어떤 종류이고, 어떤 용도로 쓰임받고, 어떤 재료이고, 어떤 크기인지를 생각해보고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이유는 감히 내가 볼품없는 자요, 죄인이요, 부족함 투성이인 자가 생명의 주인이요, 구원의 주관자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니깐.. 사방이 나를 우껴싸도 싸이지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되지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우리를 보게된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 그릇들입니다. “당신은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가 얻은 생명이 예수안에있어, 예수 때문에 싸이지않고-낙심하지않고-버린바되지않고-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우리도 죽을 육체지만 예수님 때문에 산사람이 되고, 그런 산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예수생명을 전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모양세와 세대간의 편차도 있지만 우리는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속에 후회없는 기독인의 지혜로운 삶이 될지 우리는 깨달아야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손에든 창을 내려놓으시고! 마음속에 담은 보배로 위로받으시고 위로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한 시대속에  신앙의 동지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험악해도 하나님께 주목할 수 있게 하셔서, 손에 들고 있는 창을 내려놓고, 마음에 모신 예수님 안에 참된 위로를 발견하고, 참된 위로를 베풀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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