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5:13-16 The Glory Unveiled at Cana in Galilee
갈릴리 가나는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골짜기를 따라 갈대들이 많이 자라나서 사람들이 이 마을을 ‘갈대마을’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나는 갈대라는 의미입니다. 가나에는 겨우 20-30가구가 살았다고 전해질 만큼 작은 마을이었지만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왕의 신하가 고침받고, 나다나엘(바돌로매)이라는 제자를 이곳 가나에서 배출할 만큼 건강하고 선한 동네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오클라호마의 인구는 400만명 정도이고, 아시아인 8만명 정도, 한인은 6천명 정도, 시티에만 2천~2천5백명정도가 살고 있는 인구밀도가 낮은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경험한 교회들이 많이 있어서 바이블 벨트(Bible Belt)지역이라 꼽히고 있습니다.
동네가 작다고해서 무엇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아도 예수님이 머무는 곳, 복음이 전해지는 곳, 예수님의 표적을 경험하는 곳,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고, 예수님의 구원과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이라면, 동네가 작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는 건강한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클라호마가 더욱 복음으로 살아내는 동네, 교회, 크리스챤 가정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좀더 세밀하게 보면, 혼인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마을에서 혼인잔치가 열렸다면, 집안 잔치가 아니라, 동네잔치가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다른 지방에서 활동하셨던 예수님과 제자들까지 초청받은 것을 보면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었거나 마당발이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미 이 혼인잔치 집에 참석하셔서 대소사의 일을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은 혼인집과 친근한 관계였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보면 “사흘 되던 날”로 시작하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1장 후반부에서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하는 사건이 있은 후로 사흘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공식적인 사역인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이런 시점에 가장 먼저 표적을 행하신 사건이 바로 오늘 나타나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변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이런 핵심적인 요소를 가장 처음 행한곳은 갈릴리 가나였다는 것은, 첫째ㅡ그 마을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복된 곳이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참석한 자들이 표적으로 인하여 은혜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셋째ㅡ 11절에서 밝히는 바처럼 제자로 발탁 받은 자들이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작아도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내용으로 몇가지 도전을 받고자 합니다.
1.포도주가 모자란 지라(3-5)
3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부족함을 현실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부족하면 부족함이 해결될 때까지 마음 졸이게 되고, 긴장하게 되고, 신경 쓰게 되고, 부족한 것에 자꾸 주목하게 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면 되는데 인간은 그렇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아침 일찍 예인이가 샤워하려고 수건을 찾고 있었는데 빨아 놓은 새 수건이 없었습니다. 쓸만한 수건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수건 어딨냐고 내게 묻고 함께 찾아보았지만, 예인이가 쓸만한 수건이 없었습니다. 자신은 샤워를 해야 하는데 사용할 수건이 없으니깐 신경을 곤두세워 나를 쪼면서 왔다갔다하며 찾고 다녔습니다. 아빠가 쓰던 것을 쓰라고했더니 안하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새 수건을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그날은 아내가 교회 여성MT도 가서 없었습니다. 이제 내가 돌봐줘야하는데 나몰라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새 수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한 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탁기를 열어보니깐, 빨래만 해놓은 축축한 수건들이 있었습니다. 냄새를 맡아보니 괜챦았습니다. 드라이어에 넣고 돌렸습니다. 그리고 예인이에게 말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렸다가 다 마르면 갖다가 쓰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딸은 안심하고 자기방으로 들어가 자기일을 하며 수건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샤워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없으면 하루 정도 목욕 좀 안하면 어떻습니까? 그냥 아빠가 쓰던 수건 사용하면 좀 어떻습니까?” 그건 내 생각이었습니다. 진짜 아빠는 딸아이의 부족함과 없는 것 때문에 신경쓰는 문제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것이 따뜻한 아빠의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여러분에게 도움의 근원이시되, 따뜻한 아빠처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3-5절을 보십시오. 마리아와 예수님 그리고 하인들 간의 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부족한 현실의 문제를 말했습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했습니다. 말해야 합니다. 현실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현실의 문제입니다. 정확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요청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무엇을 어떻게 하실지 모르십니다. 이것이 인간이 예수님께 해야 할 당연한 자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시는데, 어머니는 이해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Irony)합니다.
남편이 아내 말을 이해를 못하고, 아내가 남편말을 잘 이해를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깊이 감추어진 속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언어를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시는데 어머니는 그 말씀을 잘 깨닫고 대처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요청을 단순히 인간적인 답변으로만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속마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과연 어머니의 요청을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어떻게 해결해 줄 것인가의 마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어머니의 요청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여자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요청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속의 관점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성취되어 표현되어질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모든 표적에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시고자하시는 뜻이 있기때문이었고, 지금 이 표적은 가장 첫번째 표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포도주가 없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비록 어머니셨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구원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에 대한 질문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문의 사건속에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표적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부족한 문제를 그의 구속사건안에서 해결하시고자 하셨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던 인생의 본질적인 답변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니고데마 같은 지식과 경험과 지위를 가진 사람도 사람이 거듭나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경우도 있지만,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을 개 같은 존재로 여겨 음식 나눠주기를 거절했었음에도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아듣고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거절 같은 말씀이 지금 어머니에게 믿으라고 촉구하고 계셨고, 순종하라고 재촉하는 하고 계셨던 것이었다는 것은 어머니도 인간일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부족함을 많이 겼었던 사람입니다. 궁핍한 형편의 부족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궁핍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빌4:12-13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했습니다.
우리는 부족함을 경험하며 살아 갑니다. 형편의 부족함, 경제적인 부족함, 지혜의 부족함, 만족하지 못하는 부족함, 은혜 받지 못하는 영혼의 공허함과 목마름의 부족함들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부족함의 문제를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믿음과 순종을 촉구하시며 문을 두드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들려야 합니다. 깨달아야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구원자를 믿었고 들었고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이 과연 포도주의 부족함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마리아는 믿었습니다. 믿음은 순종하게 하며, 순종은 행동하게 하고, 그 행동은 일을 추진시켜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했습니다.
2.항아리에 물을 채우라(6-11)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예수님께서 포도주의 부족함을 채우시기 위하여 사용하신 도구는 돌 항아리와 물이 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정결예식을 위하여 사용되어졌던 정결예식용 돌항아리와 물이였습니다.
이 돌항아리와 물은 우리와 같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며 각자의 모습으로 신앙을 지켜오지만 어느새인가 신앙의 내용과 새로움과 생명은 없어지면서, 형식적인 예배생활과 의례적인 종교생활과 내가 이렇게 하면 구원얻겠다는 막연한 도덕율법을 가지고 살아가는 돌항아리와 물처럼 살아오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돌 항아리와 물이 필요없다고 버리시지 않으시고 사용하셔서 변화시키시고 영광을 받으시기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돌항아리 아구까지 물을 채우라고 하셨고, 하인들은 조금전에 마리아에게 지시받은 대로 순종하여 돌 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채우고, 또 순종하여 연회장에게 갖다주었습니다.
9-11절을 함께 봉독 합시다. “9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저는 말씀을 통하여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들어오는 자들에게 돌 항아리와 물처럼 예배를 집도하는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늘 하던 대로 주일에 강단에 섰고,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사람들에게 정결예식을 행하는 돌항아리처럼 물을 공급하며 손씻으라하는 저의 모습을 말씀을 통하여 보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소진되어 있었던 빈항아리 같은 저를 보게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 돌 항아리 같은 저에게 오늘 말씀은 저에게 충격적인 메세지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돌항아리 같은 저를 다시 사용하셨고, 물을 채우시듯 말씀을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이 물과 항아리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저에게 주신 말씀이 복음이 되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복음이 될 때 이전과는 다른 맛을 내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족함이 채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릴 뻔한 기쁨을 가지게 한 것이었습니다.
결론
오늘 갈릴리 가나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베풀어주신 표적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이 인생의 부족을 채워주시며, 잃어버릴뻔한 풍성한 기쁨을 다시 회복시켜주시고, 형식적인 신앙으로 고착화된 인생을 통하여 세상속에 복음을 전하는자로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오클라호마 한인중앙장로교회가 복음으로 살아내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돌항아리와 물로만 살았던 우리 인생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하신 사건을 믿음으로 변화되어 복음으로 살아내는 영광스러운 교회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