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5: 13-16 The Glory of Salt and Light: Living as Disciples Who Bring Glory to the Father through Good Deeds
소금과 빛은 우리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시급하니깐, 불안한 한국사람들은 마트마다 소금을 구입하려 달려드니깐, 소금값이 금값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1년전만해도 20kg이 1만원하던 것이 2만원, 3만원, 5만원, 인터넷에는 7만원, 천일염은 10만원을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소금이 인간의 식단에 중요한 조미료와 영양소를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몸속에는 체중의 0.1-0.2%에 정도의 나트륨이 있습니다. 몸에 나트륨이 너무 적으면, 몸전체에 퍼져 있는 신경과 근육과 혈압에 영향력을 미쳐 몸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반대로 몸에 나트륨이 너무 많으면, 고혈압, 뇌졸증, 신장 그리고 심장에 문제를 가져와 이 또한 몸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금이 매우 유용하지만 알맞게 섭취할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소금은 200-400mg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세상에 빛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빛은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라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두 힘 곧, 전기장과 자기장이 파장을 일으킬 때,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visible light)을 빛(light)이라고 말합니다. 그 파장의 세기는 개미가 1초에 1억번 발을 움직이여야하는 움직임(약 400 ~700 nm나로 미터)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빛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빛에 너무 적게 노출되면 생명을 유지시키는데 문제가 생기고, 너무 많이 노출되어도 피부와 눈과 몸 전체에 균형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빛의 노출도 적절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소금이란 말이 28회, 빛이라는 말이 한글번역으로) 137회가 등장합니다. 성경속에서 소금과 빛은 상징적 의미가 강합니다. 소금은 인내, 순결, 언약, 희생, 보존, 죄의 부패를 방지하고 지연하는 의미를 전하고 있고, 빛은 진리, 지식, 말씀, 예수님, 하나님의 임재, 계시, 죄악된 세상속에서 희망과 구원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역할을 통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그 분안에서 이미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통하여 “소금과 빛의 영광: 착한 행실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제자의 삶”이란 내용으로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1.소금의 영광: 순수함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지중해 지역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은 주변 바닷물이나 사해바다의 염수를 햇빛과 바람에 말려가며 소금을 얻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소금을 추출하는 기술은 이미 예수님 당시에도 적용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그만큼의 기술이 아직 이스라엘에는 없었다보니 사해주변의 소금산으로부터 캐내어 소금을 얻었 냈을 것이라고 보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산에서 소금을 구한다더지, 바닷물을 이용해서 소금을 얻어낸다든지 할때, 소금속에는 불순물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소금의 농도를 맞추고, 불순물을 제거할 때 비로소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금자체를 식용으로 사용하기위하여 소금덩어리를 물속에 담그면 불순물은 그대로 남고 소금은 완전히 물과 함께 녹아버립니다. 녹아버린 물을 먹을 수 있는 소금으로 만들고, 녹지 않는 석회석과 불순물은 버리면 됩니다.
그렇게 버려진 석회석과 불순물은 길에 뿌리거나, 그 당시 평평한 집 지붕위에 뿌려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합니다. 그 당시 집 지붕은 평평하여 집회장소나 활동공간으로 사용되었다보니, 그 불순물을 뿌리면 사람들이 밟고 다니면서 땅은 더 단단하고 굳은 땅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먹을 수 있는 소금이 되기까지는 공정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돈으로 사야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에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품값대신에 소금을 받아가게 되었습니다. Salary 라는 말은 그 당시 소금, “salt”을 나눠주는 풍습에서 나온 말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소금을 통하여 무엇을 교훈하시고자 하셨습니까? 그것은 소금이 어떤 존재속으로 들어가서 녹아져야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소금이니”. 우리가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안에 있는 자들은 소금입니다. 소금은 자기가 들어가 있는 곳에서 녹아질 때 맛을 내게 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내가 녹아져야하는데 내가 녹아지지않고는 소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도도 그렇지만, 교회도 녹아지지않으면 세상속에서 이름만 소금이지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소금입니다. 그 분안에 있으면 우리도 소금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녹지 않고, 가정을 살면서 녹지 않고, 교회생활하면서 녹지 않는다면 소금 덩어리같아 보여도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석회석과 불순물로 혼합된 소금은 정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순수한 소금으로 세상속에서 영향력을 미치기위해 매일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걸러져야 합니다(길가, 돌짝, 가시밭, 옥토밭). 너희는 세상의 ‘덩어리’가 아니라, ‘혼합소금’이 아니라, ‘맛을 내는 순수한 복음의 제자’로 살아 나갈 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빛의 영광: 전도함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안으로 성장하면서 밖으로 증인의 삶을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안에만 머무리지 않게하시며 밖으로 밖으로 나아가서 영향력을 끼치게 하는 것입니다. 앞서 소금도 ‘세상의 소금’이듯이, 빛도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어릴적 초등학교 다닐 때 교실마다 난로가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난로 하나면 교실 전체가 후끈 달아오릅니다. 그런데 난로 가까이 있는 학생들은 멀리 앉아 있는 학생들보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왜냐하면 복사열 때문입니다. 열은 스스로만 열기를 가지지 않고 사방으로 퍼집니다. 마찬가지로 빛은 스스로만 빛을 품고 있지 않고 사방으로 퍼뜨려 주변을 따듯하게 합니다. 그래서 본문말씀은 3가지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1)산 위의 동네
본문에서 말씀하는 “산 위의 동네”는 속에 우뚝 서있는 교회를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이 땅에서 소극적으로는 내 어두운 마음에, 내 가정에, 내 교회에서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 다른 이웃과 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선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산 위의 동네가 숨기지 못하듯이 산 위의 동네 곧 예수 그리스안에서 그 은혜로 구속받은 교회는 숨기는 기능이 아니라, 드러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2)등경위에 등불
본문은 좀더 이 말씀을 강조하시기위하여 “말”과 “등경”이란 물건을 등장시켜 빛에 관하여 더욱 이해시켜주고 있습니다. (1) “말”은 곡식의 양을 재기위하여 만든 통인데 8.25리터의 용량을 재기위해 만들어놓은 말통입니다. 이 말통은 등불을 끄거나 서서히 소멸시키는 데도 적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2) 이와는 반대로 “등경”은 불을 좀더 넓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등경은 길죽하게 세워 온 방안을 환히 비추는 받침대입니다. 여기서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주의와 세상주의에 빠진 자들이 “말통”처럼 복음을 서서히 소멸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곧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는 “등경”처럼 예수그리스도를 편만하게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3)너희의 착한 행실
본문은 빛을 “사람들에게 비취는 ‘착한 행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착한 행실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의로운 행동을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 기준에서 의롭다기보다 하나님이 보내시고, 부르시고,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거듭난 자들의 행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행실은 나의 영화로움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행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 행실이 착한 행실이란 것은, 자신을 희생하고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한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착한 행실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교회에게 주는 3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1)율법과 세상의 미움과 핍박속에서도, 제자는 두려워말고, 끝까지 견디며, 피하며, 복음을 전하라는 교훈입니다.
(2)그리스도 때문에 욕을 얻어먹고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제자는 세상속에서 이미 소금이고, 이미 빛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할 때 자기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고 혹은 회복될 수있다는 교훈입니다.
(3)소금처럼, 빛처럼, 예수님처럼 자신을 녹여야합니다. 녹여야 맛이나고, 태워야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런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만든어진 자들이 제자들이라는 교훈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 우리 자신, 우리 영혼이 세상을 향하여,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여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를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화롭게 하는 소금과 빛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은 저희들을 소금과 빛으로 영광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물안에서의 삶으로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아가라는 예수님의 사명에 순종하는 개인, 가정, 교회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원하사 영생천국주신 기쁨을 세상밖으로 나눠주기를 원하시는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