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this scripture is fulfilled in your hearing/ Luke 4:16-30.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그릇된 관념에 대한 고집이 새로운 방식에 대하여 전혀 받아 들이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선입견은 편견을 만들어 내고 편견은 진리를 왜곡하고 대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그릇된 선입견은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요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경이 영생 얻는 책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그리스도는 보지 못하고, 보지 않습니다. -성경책은 가지고 다니지만 읽지를 않습니다! -성경책을 읽지만 교양서적이상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성경책에서 영생얻는 줄알지만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그리스도 만나기를 싫어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땅 나사렛에가서 설교하는 내용입니다.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설교하는 것을 기뻐했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낸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릴적부터 너를 안다는 선입견이었습니다. 그렇게 은혜스럽게 말씀을 전하고, 그렇게 기이할 정도로 변화되었어도 “쟤, 요셉의 아들 아냐!”라는 선입견은 예수님을 육신의 모습으로만 판단했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보내서 일하신다는 것은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첫째로 그릇된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1. 어릴적 저희 가정은 제사지내던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장남이셨기 때문에 제사집도는 저희 가정이 담당해야했고, 제사때마다 삼촌들과 이모들이 저희집에 오셨고, 어머니는 제사준비하시느라고 분주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런 가문에 1)할머니가 교회나가시고, 2)국자고모가 목사님과 결혼하시고, 사촌누나가 여전도사님이 되시고, 저희 집 큰 누나가 교회나가시고, 제가 신학교를 가게 되고, 어머니께서도 믿음을 가지시게되고, 형이 예수믿는 형수와 결혼하면서 집안에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중에 가장 큰 변화는 제사지내던 집안이 기독교식으로 추도예배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예수믿고 돌아가시고, 형님이 장손이니깐 제사를 집도해야했지만 그럴만한 신앙이 아니어서 신학생이였던 제가 제사를 집도하게 되었습니다. 어릴적부터 저를 지켜봤던 삼촌들과 고모들과 사촌형제들은 사실 성경말씀보다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예수그리스도보다는 인간적인 저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가 마친후 “목사되면 힘들텐데; 목사는 얼마버나”, 그저 인간적으로 안타까워하는 이야기로 쏠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가족이니깐 이정도에서 그쳤지 오늘 예수님께서 고향땅에서 겪으신 일은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방문 설교가 정겹고, 은혜스럽고, 신기했지만-“22,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는 선입견이 자리잡게 되고-”24,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자 갑자기 분위기가 돌변하더니 분노로 바뀌더니 예수님을 동네밖으로 끌거나가 벼랑끝에서 밀쳐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선입견이 주는 살벌한 분위기를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2. 프란시스 베이컨은 4가지 선입견(편견)을 말한바있습니다.
1) 종족에서 오는 선입견―모든 시선을 인간중심적으로만 바라보다가 만들어지는 선입견입니다.
2) 동굴―깊은 동굴이나 우물안에서 살면서 만들어진 선입견입니다.
3) 시장―시장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소문에 의하여 만들어진 선입견입니다.
4) 극장―극장의 스크린에서 전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며 만들어진 선입견입니다.
이런 선입견들을 “우상”이라했고 올바른 지식은 우상을 마음에서 제거할 때 확립된다했습니다.
오늘 본문속에 그릇된 선입견을 가진 고향사람들의 우상은 어느 한가지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인간적이면서도, 우물안에서, 소문에의해서, & 보여지는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어진데 기인한 것들의 복합적인 요소들을 고루 갖춘 선입견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선입견은 진리를왜곡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게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3. 어떤 교인이 목사님과 목욕탕에 같이 갔는데 그 다음주일날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자꾸만 목욕탕에서 목사님의 육체가 생각나더랍니다. 그러기를 삼주간을 그러더니 목사님의 설교에는 집중할 수 없어 그날 밤에 집에 돌아와서 하나님앞에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제발 예배중에 목사님의 육체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 다음주일에는 예배를 정상적으로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속에 베드로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나는 결코 부정한 짐승은 먹지 않는다는 선입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자기 같은 그릇에 부정한 짐승을 가득 담아 내려보내주시고는 그것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여지껏 그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내가 깨끗하게한 것을 왜 네가 부정하다하느냐”하시며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꿈을 깬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내가 부정하게만 여겼던 선입견을 내려놓고 이방인들을 수용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적용>오늘날 내가 이미 알고 있고, 경험해 알고 있고, 그런 것은 이미 내가 해봤던 일일지라도, 그래서 내가 절대로 하겠다거나, 절대로 못하겠다는 선입견이 만든 편견, 고집이 진리앞에서(예수그리스도앞에서,하나님앞에서) 무너지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내가 보기에 영 아닐지라도 하나님이 더러운거 깨끗케하셔서 보내실 때 <그릇되고 부족한 나의 선입견>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다면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둘째는 선입견의 공격을 받을 때 예수님께 집중해야합니다.
1. 예수님은 고향사람들의 선입견으로 커져버린 편견과 적대감과 위협속에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28-30,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29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30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피해가셨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부딪혀 싸웠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30,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가시니라: 어떻게 그 군중들속으로 유유히 지나가셨을까?”
2. 존 번연의 천로역정가운데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그가 걷고 있는 좁은 길의 앞쪽을 주의깊게 살펴보니 두 마리의 사자가 길을 막고 누워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불신’과 ‘겁쟁이’가 깜짝 놀라 되돌아선, 위험이 바로 저기에 있구나” 하고 생각하자, 크리스챤은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자기 앞에는 이제 죽음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불신’과 ‘겁쟁이’처럼 되돌아갈까 하고 궁리해 보았다.
그러나 크리스챤이 멈추어 선 곳에서 다시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된 문지기가(그의 이름은 “경계”(Watchful)였다) 크리스챤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그렇게도 용기가 없으십니까(막4:40)? 사자들은 사슬에 매여 있으니 무서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믿는 자들의 신앙을 시험해 보고 믿지 않는 자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사자들을 거기에 매어둔 것입니다. 길의 한 가운데로 오시면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안전하게 지나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아주 조심스럽게 길 한가운데로 걸어가면서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러나 사자들은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다.―
예수님은 이런 난관속에서도 의연하셨습니다. 자신의 가야할 길을 분명히 아셨고, 그 길에서 조금의 요동도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고, 이루시고자하시는 일을 위하여 가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을 이루는 길이요,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신 뜻을 성취하는 일 이셨기때문입니다.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 길 이 길은 승리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결론 적용
오늘날에도 선입견들이 주는 공격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 같은 것이 뭘 할 수 있겠어!! 내가 너를 알아!! 넌 머리가 안돼!! 넌 할 수없어!! 너가 뭘해도 난 인정못해!!”
혹은 내 속에서 상처와 억압으로 인하여 받았던 선입견 때문에 “가야할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신 부르심의 사명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모습을 보시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성취하셨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를 따라가기만 하면 반드시 난관을 극복할 것이고 목적한 곳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가지 난관속에서 의연하게 걸어가신 예수님을 신뢰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선입견으로 오해를 불러오고 심지어 살해의 위협을 받게도 하지만 예수님이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 평안함으로 우리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우상들의 소리들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하셔 주의 은혜의 해를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신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