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3편 1-3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How good and pleasant it is when brothers live together in unity!
1. 다윗은 시를 짓고 노래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감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시편의 절반은 다윗이 지었고, 성전 관련한 시도 5개 있었는데 그 중에 1편인 133편은 널리 알려져 있는 시입니다.
2. 표제에 보면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A
song of ascents. of David.)”라고 되어 있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온 나라가 거룩하게 하나된 것과 주님의 백성들이 계속 그러한 일치를 지속할 것이 열렬히 권면되고 있는 감사의 시”라고 했습니다. 칼빈이 말한대로 “온 나라가 거룩하게 하나되고 주의 백성들이 일치를 보인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1) 다윗이 골리앗을 무찔러 목을 쳤을 때 일까요?
(2) 다윗이 블레셋을 무찌르고 돌아왔을 때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했을때일까요?
(3) 다윗이 사울의 창날을 피하고 드디어 왕위에 올랐을 때의 감격이였을까요? 아니면
(4) 잃어버린 법궤를 70년만에 다시 찾아와 다윗 성에 안치할 때일까요?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분석보다는 본문 내용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면 “모든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될 때 아름답고 선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1절) 형제가 하나될 때 선하고 아름답다,
2절) 그 모습이 마치 보배로운 기름이 머리에서 옷깃까지 적시는 것같다,
3절) 헐몬의 이슬이 시온에 내림같이 영생을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우리가 성전에 오를 때 이런 전율을 가지고 성전에 오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전쟁 같은 삶의 전선에서 피곤하고 곤하여 쉬고 싶지만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재하시겠다고 상징적으로 주신 이 땅의 성전 향하여 오를 때 기쁨과 감사한 마음이 생기고 있습니까?
4. 그 당시 성전은
1)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에게 존재의 기쁨을 깨닫게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2) 성전은 죄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세상 살다가 나도 모르게 먼지 묻듯이 죄를 지었어도 성전에 나와서 어린양되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용서를 구할 때 죄사함의 은총을 얻게 됩니다.
3) 성전은 회복되는 곳입니다. 참 희안하게도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회복시켜주십니다. 상한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그 크신 은혜와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나를 이불 덮듯 덮어주십니다. 깊은 한숨을 자고 일어나면 새힘,새희망,새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4) 성전은 아무리 먼곳에 출타해 있어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들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고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전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5. 오늘 우리가 자연속에 모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우리의 모임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모두가 아멘으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을때, 우리의 모임이 오늘날의 진정한 성전이 되는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성전을 오르는 자들은 화목하고 하나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첫째.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1)
1. 성전으로 나아가는 자는 형제, 연합, 동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전으로 나아가는 자가 싸우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면 마음이 정말 무겁습니다.
(1) 예전에 아내와 말다툼을 하다가 주일날 강단에 오를때면 정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나님앞에 부끄럽고 죄책감 때문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할 수 만 있으면 갈등과 스트레스를 안받고 강단에 오르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하더래도 아내가 은혜가 떨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갈등은 피하려고 합니다. 서로간에 은혜 떨어지니깐, 주일이 가까울수록 얽히고 섥혔던 것들을 풀어가고,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그래서 어느덧 목회자로 살면서 체질이 생겼습니다. 수요일 저역이되면 마음에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주일을 준비해야하고 강단에 오르기위하여 집중하게 됩니다.
2. 저뿐만이아니라 하나님안에서 하나된 자녀들은 주일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성경에도보면 ―마5:22-23형제에 대하여 분노하는 자마다 심판 받게 되고, 라가(골빈놈)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3. 교회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희안하게도 성령안에서 하나되게 하심에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저는 어릴적 처음 교회나갔을 때 얌전한척 교회를 다니는데 차츰 차츰 적응하니깐 까불거리다가, 점점익숙해지니깐 본색이 드러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무리 단련해도 미숙한 인간 실체라 거듭나지는 않고 죄된 성질을 버릴 수 없으니 하나님앞에 더욱 메달리며 기도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이젠 하다 하다 안되니깐 하나님께서 목사라는 코뚜레로 나를 인도하셨나봅니다. 가만 놔둬서는 안되겠으니 내가 너를 꿰노라..하시며 나를 코뚜레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4. 오늘 본문 1절에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했습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기위해서는 1)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2)연합하는것입니다. 3)동거하는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형제자매입니다.” 육신의 형제자매로 살 때는 엄청 싸웠습니다. 지금은 각자 멀리 떨어져 살지만 육신의 형제자매도 싸우는데, 교회 형제자매는 안싸우는가? 싸웁니다. 웬수가 되기도합니다. 절대 안볼 사람처럼 매섭기도 합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야하는데 그렇게 지지고 뽁고 싸우는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이유를 들어보면 “다 내탓아니고 다 니탓이라는 것때문”입니다.
Ex)어떤 집에 7형제가 사는 집안은 평안했고, 3형제가 사는 집은 매일 전쟁터였습니다.
3형제의 아버지가 신기해서 그 집 아버지를 찾아가 어떻게 우리집엔 3명인데 전쟁터고, 당신네는 7명인데 화목합니까?-했더니 “그 집 아버지의 말이 “만약 우리집에서 컵이 깨졌다고하면 저마다 자기 탓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른 형제가 내가 그곳에 놓지 않았어야했는데.. 다른 형제가 내가 깨지는 컵을 사서 그래.. 다른 형제가 내가 컵을 사자고해서 그래.. 서로서로가 자신의 탓으로 돌기기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3형제 아버지가 자신의 집을 생각해보니 “왜 조심성이 없느냐, 왜 그런곳에 두었느냐, 왜 나만 야단치느냐, 모두가 니탓이지 내탓아니야 억울해 억울해 죽겠어! 그래 다 내탓이야! 그래 니탓이야 ”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며 니탓만 하니 화목할 날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가서 화목을 위해 힘썼다는 이야기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이런 개인, 우리교회, 여러분 가정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1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2-3)
1. 보배로운 기름처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나 선하고 아름다웠던지 ―2절) 마치 보배로운 기름을 머리에 부으면 그 기름이 수염을 타고 옷깃까지 내리는데, 마치 아론의 수염에서 흘러서 옷깃까지 내리는 것처럼 선하고 아름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화목해야하는 것은 도덕적 규율이 아니라 직책이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복받기 위하여 화목하려는 행동 이전에 성전을 화목케하라고 나를 이곳에 보내사 세움받은 직책입니다. 아론이 하나님과 모든 백성들을 화목하게하는 대제사장의 직책을 수여받았듯이 오늘 성전을 이루는 우리 교회 공동체들은 화목을 이루기위하여 이곳에 보냄받아 기름부어 세운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몸이란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리에서 보배로운 기름처럼 쓰임받기를 축복합니다.
2. 헐몬의 이슬처럼
또 하나의 표현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나 아름다웠으면 ―3절)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헐몬산은 헤르몬산으로 2815m, 백두산 2744m, 한라산 1947m그러니깐 헐몬산은 백두산보다 높은 곳입니다. Ex)저는 한라산만 올라가본적 있었는데 중턱에 오르니깐 이슬이 내려 주변 모든 곳을 촉촉하게 뒤덮어 있었고 신비한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물며 그 높은 곳에서 내리는 이슬이 “예루살렘 성전 옆에 있는768m의 시온산”을 촉촉하게 적신다고 했으니; 하나님께서는 “형제,연합,동거”하는 헐몬의 이슬처럼 내리시는 선하심과 아름다움을 베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헐몬의 이슬로 영생하는 복을 누리는 교회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야외예배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성전의 예식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되고, 주의 말씀이 선포되고, 교제가 이루어지고, 성전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화목하는 교회, 하나되는교회, 선하고 아름다운교회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부름받았으니 보배로운 기름처럼, 헐몬의 이슬처럼 쓰임받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이 자연속에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느끼며 성전을 세워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교제가 이루어지는 이곳에 화목케하시고 하나되게하셔서, 아론의 보배로운 직책, 헐몬의 이슬 같은 영생을 전하는 교회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