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어떤 청년이 “목사님, 예일이를 보면은 목사님하고 꼭 닮았어요!”, “예일이가 웃을때는 정말 목사님과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어떤 분은 목사님의 걷는 뒷 모습을 보면 예일이와 꼭 닮았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혹은 “말투나 생김새와 행동거지들을 보면 목사님과 정말 닮았다”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빠의 유전자를 받았고, 한 집에 어릴시절을 살다보니 닮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좋은 것만 배우면 좋겠는데 나쁜 것도 닮아가는 것을 보면 사람인 아버지와 사람인 아들과의 만남 속에서는 완전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것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경우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녀들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공유적인 속성이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함께 닮아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자비하심, 의로우심, 진실하심, 선하심, 사랑하심, 은혜로우심, 긍휼하심, 희생하심, 오래참으심, 성실하심, 변함이없으심을 하나님의 자녀들은 닮아갑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하나님안에서 태어나지못한 육신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할 수 없어 닮아가지 못할뿐아니라 닮아갈수가 없어 여전히 육신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10월달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제로 두번째 말씀을 들을 텐데요, 왜 우리가 이런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하는지에 대해서 1) 년간 계획을 기도하면서 주제를 정했기때문이고, 2) 기독교인들이 선호하는 주제중에 하나였기때문이고, 3) 정체성이 흐려지지않기를 바라는 목회자의 심정때문이고, 4) 정체성을 회복하기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육신의 사람으로 사는 것은 세상의 자녀들로 살다가 죽는 것 뿐이지만, 성령의 사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어서 영원한 것을 상속받게 된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이 여러분 자신과 교회와 가정 그리고 현장에서 잘 적용되어지기를 축복하며 말씀전하겠습니다.
1.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신대로 살것이 아니라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12-14)
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 형제된 지체들은 가장 먼저 빚진자라고했습니다. 누구에게 빚졌습니까? 돈빌렸다가 돈 안갚아서 빚진자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죠! 내가 에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구원받게되었으니 예수그리스도께 빚진자이고, 또 그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아버지에게 빚진자이고, 이 사실을 믿도록 나를 변화시키신 성령하나님께 빚진자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빚진 것을 갚는 길은 나도 세상속에서 받은 은혜, 사랑, 자비, 섬김, 희생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 생명주신이 주님이시라 능력주신이 주님이시라 말씀전하여 복음전하여 주님의 빛을 갚으리
그런 빚진자라는 사실을 알게되어도 제일 먼저 부딪혀오는 어려움은 우리가 “육신”에 얽매였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육신이란, 본문앞에 7장18절에서 바울이 자기속에 곧 육신에 선하지 않는 것이 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원치않는 악을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육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악한 것들에 매여 끌려다니는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했고, 영으로써 몸의 행실 곧 “악에 끌려다니며 행하는 자신의 육체”를 죽여 끊을 때 살리라 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5-9)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것입니다. 무릇(원문,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들 곧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기 때문에 육신대로 살아 죽음으로 살지않고,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 생명으로 나아간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속에서도 이스마엘을 육신의 아들이라고했고, 이삭을 기업을 물려받을 약속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았어도 에서 같은 육신의 아들이 있는가하면 약속을 이어받을 야곱 같은 약속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가정을 이루어 12아들을 가졌으나 하나님은 12명중 유다를 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녀는 육신으로 살지않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자이며 그에게 구원의 감격과 영생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자녀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고 했습니다.(15)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를 무섭고 두렵게 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창12)아브라함은 애굽사람들이 죽일까봐 무서워 아내를 누이라하며 그들에게 넘겨줘버렸습니다. 창20)그랄에 갔을때에도 그랄 사람들의 행위를 보니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으니깐 아내를 빼앗아가려고 자기를 죽일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했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나 아브라함의 모습이나 다를 바가 뭐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세상은 핵이라, 아마겟돈이라는 말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결코 하나님보다 두려워해야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잣집 아들이 놀다가 아버지의 아끼는 도자기를 깼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그 집 종이 그 광경을 보고 “아버지 오면 일러주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의 아들이 아버지께 벌받을 것이 두려워 “아버지에게만 일러주지 않으면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아들은 종의 노리개가되어 아버지가 없을 때마다 종의 말을 들으며 집안 청소와 심부름을 다해야 했습니다. 날마다 아들이 피폐해지는 모습에 “무슨일있냐”고 물어도 아무말도없었는데 어느날 아버지께서 아들을 몰래 불러놓고 물었습니다. “무슨일이니? 나는 너의 아버지야! 말해봐! 아들은 그제서야 용기를 내서 아버지께 다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힘들었던 아들을 생각하며 아들을 맞이했고 아들은 힘들었던 그동안의 시간들의 고생을 아버지의 품안에 안겨 “아빠”하며 안겨 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은 차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연약해서 무지해서 지은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벌 받을까봐 죄를 고백하지 않고 덮어 놓는다해서 죄가 해결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감출수록 마음은 더욱 무거워지고 하나님과 멀어지 따름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던 모습이 무섭고 두려워하며 멀리하게된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설 때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과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쁨이 찾아오며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하나님앞으로 나아가게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시려고 지금도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용기를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더 이상 무섭고 두려원하지 말라고 말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녀들은 움추러들게하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영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들에게 선한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창조해주셔서 에덴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주셔서 바른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악한 본성대로 자신을 절제하지못해 선지자를 죽이고 끝까지 불신하며 불평하다가 죽었습니다. 마지막엔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지만 그 아들마져도 영접지 안히나였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1:12)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무섭고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앞으로나아가야할 시간이며, 하나님과의 영적교제가 이루어져야할 시간이며, 하나님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를만큼 다가가야할 시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갱신되기를 축복합니다.
3.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며 삽니다.(16-17)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나님의 영, 양자의 영, 성령이 친히 우리 영 곧 우리 속사람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삶 속에서 증거해나가기 시작하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흥분과 나의 열정과 나의 느낌 & 나의 소망을 이루려는 것을 뛰어넘어 온전히 이 세상이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며 또 역사해 나가시는 [전적 성령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고난받을 때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을 때 그들은 그들의 영 곧 속 사람속에서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성령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않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더불어 역사하시면 가능한 일이 었기때문이었습니다. 세상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시는 것은 나의 의로는 전혀 이룰 수 없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음이었습니다.
성령이 함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증거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후사가 됩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이 받게 될 영광을 우리도 받게 될 것이고,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되심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고, 천국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는 현재 지금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눈물의 길, 가시밭 길을 영광으로 알고 고난도 함께 받기를 주저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며 살아야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만큼 가까워져야 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속사람 속에서 일하기 시작하셨기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해야합니다.
적용 : 나는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여전히 육신대로 살고 있는 모습과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을 말해보세요?
양자의 영을 받았다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만큼 가깝지 못한 이유를 말해보세요?
성령께서 내 속사람과 더불어 일하시니 세상 속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되고 계십니까?
기도
나의 하나님 아빠께 감사드립니다. 죄로 죽었던 우리 영혼을 십자가로 살려주시고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의 영광과 천국의 소망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의지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만큼 친근하게 하시고,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