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이야기는 마태복음 12장뿐아니라 , 마가복음3장 그리고 누가복음 8장에도 기록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장 먼저 마음을 사로 잡았던 단어는 “제자들”이란 단어였고, 마가복음에서는 “둘러앉은자”로,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약간의 단어 차이가 있지만 내용면으로보면 같은 의미를 품고 있는 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여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하여 앉아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문의 주제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가르쳐주시고자 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혈육의 가족들을 매몰차게 거부하시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가족공동체를 무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장차 십자가로 이룩하실 영원한 가족 공동체에 대하여 강조하신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이루시고자 하셨던 공동체는 제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제자라고해서 12제자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믿기로 작정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가족 공동체를 말씀하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호세아서 1:9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나 또한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않기로 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Ex) 어릴적 아버지께서 저에게 불같이 화가 나셔서 저를 내 쫓으시며 ‘넌 다시는 내 자식아니라’고 쫓아내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이 기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분노는 사실 이보다 더 무서웠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제 다시는 너희들을 내 백성이라고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는데 이것을 로암미(Lo-Ammi)선언이라고 하는데, ‘너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선언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선민(선택받은 민족)이라해도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고 우상숭배하면 살아갈때는 로암미의 선언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은 이 땅에서의 혈육관계, 선민관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원한 새가족관계를 만드시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육과 정으로 맺어진 관계의 사람들, 형식적으로만 맺어진 관계의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무엇인지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도 본문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겠다는 결단과 삶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 하나님의 자녀는 혈육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46-47)
46-47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에 관하여는 13:55절에 보면 “이는 목수의 아들,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그 누이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무슨 말을 전하여고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본문속에서는 말씀하지 않지만 사건 전후 상황들속에서 살펴볼 때 가족들이 왜 찾아왔느냐하면, 1) 마태 9:34에보면, 바리새인들의 공격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귀신들려서 사역한다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고, 복음사역마다 시비를 걸면서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냥 있을 수 없어 예수님의 사역현장속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2) 막3:21에보면,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한 것을 보니,예수께서 미쳤다는 소문만 듣고 예수가 정신건강이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와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3) 마4:13에보면, 고향땅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옮겨 갔으니, 집 떠나면 고생이라하니 예수가 사역한답시고 타지역에 가서 얼마나 고생할까싶어 염려되고 걱정되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여차하면 사역이고 뭐고 다 접고 고향땅으로 끌려갈 판이었습니다.
*멕시코신학교를 위한 첫째기도 제목/많은 장애물을 이기며 담대히 복음을 전하도록 기도해주세요. 남은 여생 귀고싶을때지만 사역에는 그만이란게 없으니 범죄많아도, 펜데믹이 또 찾아와도, 물가가 상승하고, 질병이 몰려와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때 어떤 한 사람이 예수님께 전하기를 “예수님 보세요,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에게 말하려고 밖에서 기다립니다!” 무슨 말을 전하려 왔는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3가지로 생각해보았는데(공격,정신,고향), 그 모든 것들이 인간적인 염려와 걱정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들어보시면 가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멀어있었으며, 예수님의 사역을 얼마나 깨닫지 못하고 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야,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이 말씀은 아무리 가까운 가족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영원한 가족공동체가 될 수없다는 말씀이었기때문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남편, 아내, 부모, 자녀, 형제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못하면 여전히 구원 밖에서 예수님을 바라볼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역의 방해중 하나는 연민에 빠지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동정, 인간적인 염려,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제가 처음 신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염려하시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걱정되면 기도해주는 동역자가 되어주면 되는데 말입니다.
물론 혈육적인 가족들이 예수님을 핍박한 것도 아니고, 비난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염려해서, 상태를 살펴봐서 온전치 못할 것 같으면 사역을 접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그들이 찾아온 것은 그에게 관하여 염려했던지 아니면 뭔가 알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요지는 –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육체대로 생각할 수 없으며, 성령의 능력을 따라 예수님을 생각해야하고,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배워야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육체(혈육의 정)에만 머물수없고, 매일수 없습니다. 자녀가 크면 떠나보내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육체의 모체에서 태어나고 자랐어도, 언젠가 새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자유해야 합니다.
Ex) 어떤 분은 큰딸을 하나님의 것으로 드렸습니다. 그후 자녀의 장래와 진학 때문에 염려했지만 그의 미래를 위해 하나님께 맡기고 잡은 손을 놔주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언제까지 잡고 있으려고 하면 안되고, 자녀는 언제까지 붙잡혀 있으려해서도 안됩니다. “때가되면“ 성령께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다시태어나게하시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자유케 하실 것이기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께 지목 받은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48-49)
48-49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예수님께서 내 가족이라고 지목하신 자들은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따를 수 있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4:19-22절에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 자기를 부인하지않고서야 예수님을 따를 수 없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는 자신의 귀중한 것을 손해보지 않고서는 따를 수 없습니다. 그물, 배, 부친을 버릴 때 따를 수 있는 길이 제자의 길입니다.
*코로나속에서 임한곤선교사님과 긴 얘기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희망이 낙심이 되신 목소리였습니다. 어떻게 도울까 고민했습니다. 하나님은 까마귀들을 붙여주셨고 입에 먹을 먹을 물고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교회가 까마귀 같은 사역에 힘쓰시는 교회되기를 축복합니다. 김까마귀집사, 박까마귀집사, 노까마귀집사, 김까마귀장로..
일본 기생의 자녀로 태어나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부유층이었지만 이 소년이4살 때 죽으시고, 기생이었던 어머니는 5살 때 죽었습니다. 갈곳없었지만 본부인의 집에 들어갔고, 할머니의 손에 키워졌는데, 본부인의 자녀들이 이 소년을 어릴적부터 기생의 자녀라고 얼마나 조롱하던지 설움과 절망의 나날이었습니다. “니 엄마는 기생이지, 넌 우리와 근본이 달라”. 12살 때 담장밑에 햇볕을 쪼이고 있는데 큰 북을 치며 전도하는 자들외 외치는 소리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믿으면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쫓아가 “정말 예수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되는 겁니까?” “그렇단다!” 그때부터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누가 기생의 자녀라고 놀리면 “내 이름은 가가와 도요히코, 나는 하나님의 자녀랍니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얼마후 폐결핵에 걸렸고 점점 더 아파왔고 피를 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사랑으로 돌봐주던 어떤 목사님의 은혜에 고마워, 나도 저분처럼 남은 인생을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결심하고, 거지들과 병자들이 사는 고베의 다리밑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남을 위해 살아가 죽겠다며 그들을 섬기고, 목욕시켜주고, 밥을 먹여주고, 치료해주었는데 죽을 줄 알았던 자신이 70년을 넘게 살게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일본인들의 가슴속에는 참그리스도인으로 남아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교훈1 / 기생의 자녀로 살았던 자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폐결핵으로 죽을 병에 걸렸어도 예수님처럼 살겠노라했더니 생명까지 보장받아 더 많은 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훈2 / 사43:1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 구속하시고, 지명하시고, 부르시고, 너는 내것이라 하시듯이,예수님의 손이 제자들을 향하여 지목하시며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하실 때 그들은 이제 예수님의 지목받은 제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의 손이 지목받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49-50)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인도의 기독교 박해는 2021년 작년 한 해만해도 486건이 발생했습니다. 인도에서 어느 한 순교자의 실화 이야기에보면 한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된 가족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 처형을 당하는데 마을 추장이 말했습니다. “만약 예수믿음을 포기하면 네 자녀들을 살려주겠다” . 순교자는 뭐라 해야할지 몰랐을 때, 예수 처음믿을 때 배웠던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그리고 그 자녀들은 끔찍하게 순교당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데리고 오더니 아내를 죽일 테니 예수믿음 포기하라고 협박했습니다. 순교자는 계속 노래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그리고 아내는 순교당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예수믿음 포기하라했고, 순교자는 계속 노래했습니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결국 그도 순교당하고 말았습니다. 그후 얼마지나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협박했던 마을 추장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흔들어 믿음의 씨앗을 심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을 버리고 그 마을에는 예수님을 믿기로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한 가정의 희생이 있었지만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음은 하나님이 그들을 통하여 마을을 살려 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의 마지막 말씀을 보면서 “아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누구든지”라는 말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라는 포괄적(개방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넓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라는 제한적(배타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깊고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는 포괄성과 제한성을 함께 가지고 계셔서 포괄적이시지만 또한 제한적이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이루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며, 베드로 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고백할 수 있습니다.
*멕시코 신학교는 예수님이 지목하신 제자들이 세워지는 학교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세워가는 자들이 세워져 더 편만한 복음의 진보가 있어야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이 지목하신 제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선교사로, 혹은 목사로, 혹은 교사로, 혹은 찬양가로, 혹은 후원자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세워가는 자들이 되어야합니다.
내 뜻이 가장 많았던 베드로, 내 주장이 가장 강했던 바울, 난 못하겠다고 버티던 모세 그리고 내 살 고자 아내를 너무 쉽게 넘겨버린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롬8:30)께서 그런 자들을 변화시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세상살다가 내뜻대로 안되었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이 지목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가운데로 인도하셔서 반드시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결론
저의 카톡에는 Here I am, I have come to do your will이라고 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0:9절 말씀입니다. 제가 미국올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뜻하신 것을, 예수님처럼 저에게 뜻을 이루라고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지우지 않고있었는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자신을 성찰했습니다. 어리석게도 내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고집하고, 하나님의 뜻을 내뜻보다 외면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유한한 오늘을 살지만 영원한 내일을 에비하는 교회와 까미노 신학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혈육에만 머무르지 않기, 거듭나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되기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통하여 교회도 살고, 신학교도 살리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육으로 살아 육으로 끝나버릴 인생 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생명없는 인생을 하나님의 손으로 건져주시고, 영생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주시고, 믿음의 눈열어주시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직까지 내속에 인간적인 생각과 혈육의 정과 고정관념으로 그리스도 예수님과 성령의 역사를 받아 들이지 못하는 마음을 부숴주셔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깨닫고 성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개인, 가정, 교회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을 전부드려 구속하시고 영생주신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