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예수 Jesus
본문
마1장21; 요14장6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2-04-03

 

몇일전 뉴욕에서 한인 60대 아줌마가 장보가 집에 가는데

건장한 3명의 젊은이들이 다가와 칼로 찔러 소리쳤더니

근처 피자집을 운영하던 아들과 아버지가 뛰쳐나와 그들을 저지하다가

여러 번 칼에 찔려가면서도 끝까지 그들을 막아냈습니다.

60대 아줌마가 자기를 살려준 아버지와 아들이 너무 고마워

평생 사는 동안 그 은혜 잊지 않으며 살겠다고했고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그들 부자의 선행에 감동하여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를 생각하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음의 형장으로 내몰아야하셨던 아버지 하나님의 심정과

아버지의 뜻을 따라 가장 저주스러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하셨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중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생각과 느낌과 결단을 하게 할까요?

이 사건은 평생잊지않고 살아야할 은혜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무감각한 은혜의 사건으로 취부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는 한평생 예수님을 전하며 죽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그는 법정에서 그를 심문하는 벨릭스총독, 베스도총독 그리고 아그립바왕에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증거하니(행26:23)

행26:24ㅡ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하니, 바울이 가로되 ㅡ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ㅡ했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의 눈에는 바울이 예수에게 미쳐버렸다고 했지만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했다고 한것입니다.

은혜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전하는 것이 미쳤다고 생각한다면 어찌 예수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고 그 은혜를 갚으며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인생의 참된 본분아니겠습니까!

 

오늘 4월달의 주제 “예수”라고 정하고 첫주일에는 “주제 그대로 [예수]라는 제목으로 말씀전해드리며 예수는 구원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내용으로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 

이 한달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참예함으로

더욱 풍성한 생명과 은혜를 묵상하는 한 달이 되어지기를 축복드리며 말씀전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구원자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팽귄 블룸ㅡ이라는 영화/ 해변가에 살아가는 라스트 네임이 ‘불룸’인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빠 엄마 큰아들 둘째아들 셋째아들이었습니다. 어느날 가족들이 높은 언덕에 갔다가 엄마가그만 사고로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되버렸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없다는 생각때문에 점점 낙심하다가 화를 내다가 스스로 어둠의 그늘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때 까치새끼 한마리가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다쳐 날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펭귄”이라 이름하여 키우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우울감에 빠져 그것마져도 귀챦아하다가 그만 조금씩 정이 들었고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까치(펭귄)가 회복되고 공중을 날아다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는 자신감도 생기고 희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밖깥세상으로 나와서 카약을 배우게 되고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ㅡ그러데 큰 아들녀석이 자꾸만 엄마나 관계가 서먹 서먹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큰 아들이 엄마가 다친 것이 자기때문이라는 자책감에 빠져 스스로의 분노에 반항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때 그 언덕에 가자고 하지 말았었더라면… 엄마가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텐데… 내가 엄마 대신 다쳤더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아들의 그것을 알게되면서 자신이 다친 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함께 나누고 있었는지 그제서야 알고는 아들을 불러 “네 책임이 아니라”고 설명해주었고 어둠에서 다시 일어나 세상 밖으로 나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영화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속에서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세상속에서도 얼마든지 구원을 베풀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을 못쓰게 되었지만 죽음의 그림자에 묻혀살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은 야생의 조류 한마리를 통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시며 함께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나야 겠다는 마음을 일으키게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멸망당하여 죽으라고 세상을 만들지 않으셨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ㅡ죽어 보이던 잔디도 생명으로 살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속에 구원의 놀라운 비밀을 자연계시속에서도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ㅡ

 

두번째는 양심conscience을 통하여 구원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한 양심이 있습니다. 좀 도가 지나쳤다고 깨닫는 마음 말입니다. 죽어도 못 깨닫는 화인 맞은 양심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선한 양심을 주셔서 죄로부터 구원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자연만물과 양심이 구원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하고 하나님께 더 나아가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게하는 것입니다.

양심으로 죄의 길에서 벗어나 구원으로 다가갔던 인물 한 사람이 있다면 다윗입니다. 다윗은 정욕에 눈이 멀어 그만 자기 부하장수의 아내를 간음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의 선봉으로 내밀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른다고 생각했을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지만 하나님은 모를리다 없으시며 나단 선지자를 보내 그의 양심에 비수 같은 말씀을 던졌습니다. 간접적으로 말하니깐 못알아들으니깐 직접적으로 말하니깐 그제서야 양심의 가책을 받고 울고불고 자신을 성찰하였습니다. /자신의 지은 죄가 얼마나 남을 죽였을뿐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고통가운데로 밀어넣는지 깨닫고는 매일 울고, 매일 굶어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없었습니다. /시편51편에 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지않게해달라고; 성령이 떠나지 않게해달라고; 구원의 기쁨을 다시 회복시켜달라고; 구원의 하나님을 부르며 나를 건져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시51:11-14).

 

하나님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양심의 문을 노크하시며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는 일들이 얼마나 남에게 고통을 주는지; 내가 했던 말들이 얼마나 짓눌리는 고통을 줬는지; 알지못하고 주님을 십자가에 죽였던 유대 권력자들의 언행들이 결국 아무 죄없으셨던 예수님을 죽이셨던 것처럼… 양심이 있다면, 아직까지 화인맞지않은 양심이라면 양심을 노크하시는 하나님앞에 구원의 길로, 생명의 길로, 진리의 길로 방향을 전환해야합니다.

 

옛날 아랍나라에 왕자가 아버지의 항아리 속에 있는 사탕을 몰래 먹으려고 손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속에서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모든 박사들이 항아리의 제질과 여백을 계산을 해봐도 손을 뺄 수 있는 방법이 없어보였습니다. 힘센 장수가 와서 당겨봐도 왕자 손만 아플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항아리를 깰수없었던 것은 깰수없는 약속의 항아리였습니다. 그때 어떤 지혜자가 오더니 “왕자님 손에 사탕을 놓으십시오!” 그 말 한마디에 손을 뺄 수있었다고 했습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죄를 움켜 잡고 구원함을 얻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죄사함을 얻지 못하고서는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양심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원받으려거든 죄의 문제를 너는 해결받으라고 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양심을 노크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세번째는 역사를 통하여 구원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히스토리는 고대 그리스어 히스토리아(Historia)에서 유래한 말로 “연구라고 조사해봐서 얻은 지식; 현명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연구하고 조사해서 현명한 역사의 기준을 B.C. (Before Christ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구원받게하셨고)와 A.D.(라틴어 Anno Domini : Anno/해, Domini/주님의 = 주님의 해 :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셨다)로 구분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역사의 중심에 그리스도만이 구원자라는 것을 계시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자연과 양심 그리고 역사를 통하여 구원을 계시하실뿐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계시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셔야 합니다.

성경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구원자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그리스도께서구원자라는것이 선포되어야합니다. 또 그리스인들을 통하여 구원자 그리스도가 증거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성경책은 구원의 책이며; 교회는 구원의 방주이고;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백성으로 세상에 증거되어야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구원으로 기뻐하고. 그리스도인의 기업은 구원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구원을 노래하는 곳이 될 때 구원하시는 행복이 가득 넘치게 될 것입니다.

 

롬10:9-13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둘째. 길과 진리와 생명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지난주간에는 헌금송을 뭘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4월달 주제가 “예수”이니 만큼 예수에 맞는 주제를 찾다가 몇곡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1)“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2)“예수 열방의 소망, 예수 우리의 위로자, 주는 온 땅에 영원한 소망”; 3)“슬픈마음있는자 몸과 영혼 병든자 누구든지 부르시오 예수 이름부르시오 그 이름을 믿는자 그 이름을 부르는자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구원얻으리”; 4)십자가를 참으신 어린양 예수 내죄 씻어주시고 구속하셨네 어둠을 물리치신 세상의 빛 예수 영광의 빛 비추사 자유케하시네”

아내와 같이 찬양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2번째 곡은 밀려나고; 아내가 좋아하는 4번째 찬양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곡을 하던지 배워서 함께 찬양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찬양할때 길이없어도 길이생기는것같고; 진리에 혼란이올 때 진리로 이끌어주고; 죽어가던분위기가 생생기 얻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Ex.지난주에 송조안나의 명곡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로다’를 들어보고는 너무 감동받아서 영상을 통해서 한번씩 보며 구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 곡조붙은 기도를 할 때 목사도 힘을 얻는 것을 느끼게 했니다.

 

앉은뱅이가 돈이나 주지안을까 싶어 성전미문에 앉아있었을 때 베드로는 그를 보면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하며 그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니 그가 일어나 찬양하며 뛰어 성전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ㅡ예수가 무엇이기에 그의 이름만 불러도 사람을 일으킬수 있을까?

 

빛과 소금/ 19살때부터 약을 먹지 않으면 너무 고통스러운 만성질환자가 있었습니다. 하루의 시작이 약을 먹는 것이고, 하루의 마감도 진통제 약을 먹는 것입니다. 약을 안먹으면 그날은 너무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약을 먹어도 약효가 얼마가지 않아 또 고통스러울때가 찾아오면 항상 사도신경을 외웁니다. 그것을 외우면서 뒷 부분에 나오는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에서 항상 고통없는 천국을 생각하며 위로받는다고 합니다. 그는 현실에서 순명으로 받아들여야하는 것과 투쟁으로 싸워가야하는 사이에서 마지막날에 일어날 하나님의 위로를 생각하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날에는 죽은 것이 다시 살고; 병들었던 것이 다시 회복되고; 슬픔도- 눈물도- 아픔도- 고통도- 잃어버렸던 모든것들을 회복시켜주시는것을 생각한답니다. 그리고 오느날 아침에 일어나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그의 눈이 머무는 곳은 나의 슬픔과 고통 고갤 들어 그의 눈을 볼때에 난 알았네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그의 손길이 닿는 곳은 나의 상처와 아픔 영원히 흐를 것 같았던 눈물 다 멎었네, 어떤 어려움도 깊은 절망 수많은 괴로움과 슬픔 주로 인하여 모두 지워지리라 예수 나의 치료자, 나 노래하리라 천한 나를 돌아보신 구세주를 찬양해 하늘 닿는 곳까지 내 손 들리라 예수 나의 치료자!ㅡ예수님께 치료받은 자들도 많았지만 치료받지 못한 자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을 기억하면서 내가 이 땅에 치료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예수님을 좋은 치료자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죽음, 가장 큰 선물” 책에 보면/ 엄마 뱃속에 살던 쌍둥이가 서로 이야기 나누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태중에서 여동생이 말했습니다. “오빠 나는 태어난 후에 삶이 있다고 믿어!” 오빠가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난 안 믿어, 여기가 전부라고만 믿어! 비록 여기는 어둡고 앞을 볼 수 없지만 이곳은 따뜻하고 안전해! 탯줄만 잘 붙잡고 살면 다른 일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 다시 여동생이 말했습니다. “오빠 나는 엄마가 있다고 생각해!” 오빠는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가 뭐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거야! 난 엄마를 알지도 못하고, 한번도 본적없어! 너도 본적없쟎아! 어떤 놈이 자꾸 그런 생각을 심는거야? 여기가 전부야! 여기가 전부라고! 왜 자꾸 여기를 너머 생각하는거야? 여기도 알고보면 나쁘지 않쟎아! 필요한 건 다 있어! 그러니깐 여기에만 만족하도록 해!” 다시 동생이 말했습니다. “여기는 점점 답답해지는 것같아! 여기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곳, 엄마 얼굴을 보게 될 곳으로 갈 준비를 하라는 싸인인것같아! 오빠는 흥분되지 않아?”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길을 잃어버릴때가 있습니다. 천국가는 길; 영생얻는 길; 진리의 길을 잃어버지 않았습니까? 

1)어릴적 엄마 손을 붙잡고 장보러 갔다가 장터 구경한다고 엄마손을 놓치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울음소리를 듣고 언제 어머니가 다가와 내 손을 다시 잡아주셨는지 하시는 말씀이 한눈팔지말라고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몇해전에 한국 고향에 갔다가 그 장터를 가보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찾아간 그 장터는 너무나 작은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 작은 땅에 살면서 길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2)논문을 하나 읽어봤습니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과 그 한인 자녀들의 고민이었습니다. 다 읽고 마음을 찡하게 하는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심리적 고아들Psychological orphans”이라는 말이었습니다. 1965년 미국 이민법이 개정되면서 한국인들도 많이 미국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미국주류사회속에서 버릴수없는 한국인의 모습; 생각; 정신; 습성들이 이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고있는 미국땅에 어떻게 정착하느냐는 것입니다. 가정에오면 한국식으로 말하는 부모님과 학교가면 미국식으로 교육하는 자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조합하려고 무단히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잘 위로해줘야할 대상입니다. 무엇이 위로입니까? 예수, 예수를 심어주는 것만이 소망이고 생명이고 잘정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습성을 따라살아갈 때 이들이 어디를 살아가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예수는 이 아이들을; 또는 여러분을 잘 정착하게 하실 것입니다!

 

 

결론

 

잘 알던 길도 헷갈릴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네비게이션을 빨리 켭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길에서 길이 필요하고; 진리를 알고싶고; 숨쉴곳이 필요하신다면

예수를 켜시기 바랍니다.

 

행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기도

예수님 우리의 생각에 들어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가슴과 삶속에 들어오셔서 저희들에게 생명의길; 진리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4월 첫 주간, 4월달을 살아가면서 예수를 바라보고 생각함으로 

생명과 진리의 참길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영생주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주제선택:
  • 제목[예수] 예수 Jesus
  • 본문마1장21; 요14장6
  • 히트463
  • 설교자김성훈목사
  • 설교일202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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