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22편의 경우처럼 표제가 1절이 되고, 우리가 보는 1절이 2절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22편은 표제 포함해서 총32절로 되어있습니다.
그만큼 본문을 대할 때 우리가 괄호안의 표제도 그냥 넘어갈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표제를보면ㅡ 누가썼는지, 어떤악기로 연주했는지, 어떤 분위기와 상황에서썼는지 알수있습니다.
예)1, 2장은 표제가 없고, 3장은 표제가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시”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22편의 표제는 “다윗의 시, 영장으로 아얠렛샤할에 맞춘 노래”입니다.
표제를 보면 1)다윗의 시입니다. 2)영장으로 곧 지휘자의 지휘가 있었던 시입니다. 3)아얠렛샤할에 맞춘 노래입니다. 아얠렛샤할이란 4가지로 해석 가능합니다. (1)새벽 별 (2)아침의 힘 (3)아침의 도움 & (4)아침의 암사슴 ㅡ 그 중에서 제일 학자들이 선호하는 것은 4번째 거론된 “아침의 암사슴”이라는 해석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충분히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는 예언이 되기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라마/어찌하여, 사박다니/버리시나이까
하나님이 철처하게 버리셔야만했던 장면입니다.
다윗은 전생애 가운데 가장 처절하게, 비참하게, 낮아져야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죽음으로 끝이나고 나는 이렇게 죽겠구나라고 생각한적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정확한 말씀은 없지만 사울왕이 자신을 죽이려던 순간이었지 않을까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들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때 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멀어진 자신을 보면서 한탄했을 수도 있지만 죄와 연관되어있다는 것보다는 누군가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아 지칠때로 지쳐 죽음이 눈앞에 닥쳤을 때였다고 보는 것이 본문 내용상 더 확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하나님이 모르실리가 없는데도ㅡ 하나님은 전혀 무관심하신 것입니다. 무심해도 이렇게 무심할 수없을 정도로 고개를 돌려버리시며 나 몰라라 할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2절로 보면ㅡ 밤낮을 기도하며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뭘 말을하면 반응이 있어야하는데
죽은 송장도 아니고 임꾹다물고 있으면 사람 미칠것 같은 것입니다.
아얘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심사로 전혀 대꾸도 하지 않은채 고개를 돌려버렸다면
이제 더 이상 꼴도 보기싫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 때 영적인 사람은 자기성찰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안에서 깨닫고 돌아서서 회개하고 다시 회복하여 재개합니다)
다윗은 죽을 지경인데ㅡ 하나님은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어가고 있는데ㅡ 아버지하나님은 고개를 돌려버리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무심한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라고했고
예수님은 고개돌려버린 아버지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관계때문입니다 : 관계 때문에 아프고; 관계 때문에 위로받고싶고; 관계 때문에 부르는것입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두가지 관점에서 보면 신적관계와 인적관계에서 해석되어야합니다.
1) 신적관계라함은 하나님을 엘로힘의 하나님 즉 전능하신 하나님 다시말해 무슨 일이든지 못 이루실 것 없으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관계 때문에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2) 인적관계라함은 하나님을 인간과 분리시키지 않고 인간처럼 친밀함을 가지고 다가가 기쁠때나 슬플때나 아플때나 즐거울때나 honeymoon을 즐기는 정상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때문에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신적관계와 인적관계속에서 하나님과 진정성있게 관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ㅡ 무심해도; 응답하지않아도; 버리는것같아도; 끝까지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신적관계와 인적관계속에서 관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하나님이ㅡ 공의의하나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하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셔야만하셨기에; 예수님 자신의 고통과 아픔과 눈물과 괴로움과 외로운 싸움을 하는데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때문에; 토라지거나 삐지거나 섭섭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죄를 떼어내시기위한 하나님의 공의때문이지 아들을 사랑하지않아서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 아들을 번제로 드려야했던 아브라함의 심정은 3일길이 눈물이었고
Ex. 십자가에 독생자를 드려야했던 하나님의 심정은 3일이아니라 3천년 3만년의 고통아니겠습니까!!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ㅡ을 쓰셨던 정성욱교수님은
위암진단을 받고 위 80%를 절제하고, 키모없이, 방사능없이, 수술만으로 고침받았습니다.
그후 회복기간 5년동안 힘든 고난의 과정을 통해 만져주시고 성화시켜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다음 5가지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1. 고난이 우리를 잠에서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라는 C. S. 루이스의 통찰에 동의하게 되었고
2. 고난은 더 큰 선 (the greater good) 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되었고
3. 고난의 침상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주님과의 밀월을 누렸으며
4. 다른 사람의 고난과 고통에 대한 더 깊은 감수성을 가지게 되었고
5.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고난주간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합니다.
나를 버린다고 생각만하지 마시고 나를 버리셔야만하셨던 하나님의 심정도 알아가시기바랍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기본으로 살아가신다면
나를 버렸다는 현상이 회복의 길을 열어주실줄 믿습니다!!
둘째. 벌레 같은 취급을 받으신 예수님(3-21)
본문이 길다해도 우리는 세가지로 요약해서 본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 둘째 인간의 존재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존재(3-5)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5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믿었던 하나님의 존재는ㅡ
찬송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 의지할때 구원하신 하나님;
부를 때 구원하시고 의뢰할 때 수치를 면케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저에게는 “응답이 없어도 더욱(사랑,감사,찬양) 할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찬양을 했습니다.
주님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말하지 않아도 표현다 못해도 주님 사랑해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시편으로 소리질러 노래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한 분이시기때문입니다.
[2] 인간 곧 자신의 존재(6-18)
다윗이 생각하는 자신의 존재ㅡ 본문 그대로를 다시 읽어보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마27:39; 막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