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념을 지켜냈습니다. 한번 절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이상 끝까지 권력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승리했고 모르드개는 마지막장 마지막절에 명성과 사랑을 받게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용기와 신념은 이미 얻은 구원안에서 우리의 담대함과 믿음입니다.
담대함과 믿음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영광과 존귀를 얻게할것입니다.
둘째, 주요인물은 4명입니다: 아하수에로왕, 모르드개, 에스더 그리고 하만입니다.(자기희생)
이들은 구원과 관련하여 제 각각 쓰임을 받았습니다.
1)아하수에로는 법의 주관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2)모르드개는 지혜의 주관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3)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하며 왕께 나아가 직접적으로 구원과 관련된 일들을 하며 쓰임받구요;
4)하만은 자기영예를 위하여 구원과는 정반대의 일을 하는 악역을 맡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각자가 [하나님의 구원의 공동체로 살면서ㅡ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까요?
(1)법을 집행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2)지혜와 신념을 지켜가고 있으십니까? 아니면 (3)구원하심에 자신을 희생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4)하만처럼 자기영예를 위하여 구원받을 자들을 미워하고 넘어지게 하고 있습니까?
탈무드에보면 마법의 사과이야기가 나옵니다. 먼 나라 임금님의 딸이 죽을 병이 걸려서, 동네 마을마다 포고문을 붙였습니다. “누구라도 병을 낫게 하는 자에게 공주와 결혼과 왕위계승을 하겠다고 붙여진 것입니다. 그때 먼 나라에 살던 3형제 중 첫째가 신비한 망원경으로 그것을 보았습니다. 둘째가 신비한 양탄자를 가지고와서 형제들을 태우고 거기까지 갔습니다. 셋째가 신비한 사과가 있었는데 그걸 먹여 살렸습니다ㅡ 임금님은 누가 공주를 살리는데 큰 공헌을 했을까 고민했습니다. 첫째가 말하기를 저의 망원경이 없었다면 못고쳤을 것입니다. 둘째가 말했습니다. 저의 양탄자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어 못고쳤을 겁니다. 셋째가 말했습니다. 저의 사과가 없었다면 고칠 수 없었습니다. 임금님은 사과를 주었던 셋째를 선택했습니다.
나이가 더 젊고; 인물이 더 좋고; 낫게 하는 사과를 주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것을 주고 빈손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다 활용하고도, 다 자기 손에
반드시 하나님은 그 이상의 것을 준비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à주여,믿음을더하여주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는 희생하는 자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우리위해 내어주시고 구원하여 주신것입니다!
에스더서가 왜 모르드개서가 되지않고 에스더서가 된 것인가 생각해보니깐;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드린 그리스도의 모습이 가장 역력하게 드러났기때문입니다.
오늘 교회는 세상속에서 구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이런 공동체는 어떤 증상들이 나타납니까?
본문 22절을 읽어보십시오!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à오늘 교회는 구원의 공동체가 되라는 사명입니다. 교회는 축제가 되고ㅡ 슬픔과 애통이 변하여 기쁘고 길한 날이 되고ㅡ 즐길 줄 알게되고ㅡ나눠주기를 기뻐하고, 가난한 자를 구제합니다. à오늘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구원의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에스더서의 성경 속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없습니다.(여전히 계시는 하나님)
아쉽게도ㅡ 앞에 있는 성경 느헤미야서 끝장끝절에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고있고,
에스더서 뒤에 있는 욥기 첫장 첫절에 하나님이란 말은 나오는데도,
그 둘 사이에 끼어있는 에스더서는 그 어디ㅡ어느 구절을 찾아봐도 하나님, 여호와, 주라는 말이 한번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기도”라는 말도 없습니다.
1) 코로나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하여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셨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을 당하는데 왜 방관하실까?
다윗이 들었던 그 부정적인 말들 “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할 때 그렇게 주야로 울었던것처럼;
이 시대는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이 어디있느냐는 시대입니다..
이런 코로나 속에서도 구원의 성도는ㅡ
교회를 향하여, 믿음의 눈을 들어, 말씀보고, 기도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내 곁에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이 안보인다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1)정말 힘들고 어려워 하나님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성도님들이 계신가요?
(2)정말 지쳐 죽을 만큼 괴로운데 기도가 안나오는 성도님들이 계신가요?
(3)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백성을 사랑하시고 도우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3) 다시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는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은 잊을 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5)했습니다.
사람은 비록 잊을 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자기 멋대로 왔다 갔다해도 하나님은 늘 항상 그 자리에 계셨기때문입니다.
결론
바비 킴의 [사랑 그놈]이란 노래에 보면
늘 혼자 사랑하고, 혼자 이별하고/늘 혼자 추억하고, 혼자 무너지고
사랑이란 놈 그 놈 앞에선/언제나 나는 빈털털일뿐
..
(뒤에보면)사랑해 널 사랑해 목이 메어 불러도
너는 듣지 못할 그 한마디 고갤 떨구며 사랑앞에 난 또 서있다.
사랑해 널 사랑해 제멋대로 왔다가 자기 마음대로 떠나가도
왔을 때처럼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가도
모른척해도, 날 잊는데도, 사랑은 다시 또 온다
…
우리는 연약하여 쉽게 하나님을 떠나고, 모른척하고, 잊어버리는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결코 버리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찌 자식을 버리겠습니까
혹시 부모는 자식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그 놈의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는 에스더서를 보면서
낮추시지만 다시 높이시는 하나님
자기 희생을 감수하는 자에게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보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구원받은 공동체로서 *즐길줄알며 *나눠줄줄알고 *구제할줄아는 기쁨이 이 한주간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잔치에 참여하게되었는지.. 다 하나님의 은혜요 인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죄된 본성이 자꾸만 세상것을 구하고 현혹되어 하나님을 멀리떠날 때 저희를 용서하시며, 긍휼을 베푸시며, 끝까지 붙잡아주옵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우리는 비록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 더 높은 구원의 날을 소망하며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날의 구원의 감격은 아니어도 그날의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용기를 주옵소서!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