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2-09 18:21
+24 사랑하는 자의 방문(아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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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
조회 : 1,352  


한국있을때에는 좋은 손님이 오시는 날에는 어김없이 까치가 날아와 마당에서 까-까 하며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날에는 어김없이 반가운 손님이 오시었습니다.
손님이 아니오시면 반가운 편지라도 한통씩 오곤했었습니다.
우리에게 누군가 좋은 사람이 온다는 것은 매우 가슴 설레이고 마음을 준비하게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좋은 분을 소개할까요? 
그분은 나를 가장많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옆사람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예수님이 너의 인생속에는 계십니까?”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요한계시록3:20절에보면 다음과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무엇보다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려야 할 분은 내 마음문밖에서 노크하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기다리는 예수님의 신부의 기다림만큼 가슴 벅차고 기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용혜원목사님의 시에보면 ‘기다림’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삶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기다림이 있네.
우리네 삶은 시작부터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위로 받고  기다려 달라는 부탁하며 살아가네.
봄을 기다림이  꽂으로 피어나고  가을을 기다림이  탐스런 열매로 익어가듯 
삶의 계절은  기다림은 고통, 멋, 그리움이지 않은가?  기다림은 생명, 희망이지.
우리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인데  어느 날인가? 기다릴 이유가 없을 때  떠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네 가슴은 일생을 두고  기다림에 설레이는 것
기다릴 이유가 있다는 것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행복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어느분이 아가사를 읽다가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당신도 꼭 읽어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분이 집에가서 아가서를 몇 번이나 읽어도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더랍니다. 
글의 구성도 어렵고, 현실적으로 잘 이해되지도 않고, 그래서 또 다시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답니다.
 아가서에관한 해설책 2권을 구입하여 읽어가면서까지 열심을 다하고 또 아가서를 읽어보았으나 역시나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 포기하려는 순간, 내 속에서 성령께서 한 번만 더 읽어보라고 원하시는 것 같았답니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읽고 난후에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하나님! 아무리 들바더봐도 모르겠는데, 왜 자꾸 읽어보라 하십니까? 지금 저에게 깨닫게 하고저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엎드려 조용히 묵상하며 기다렸습니다.
 잠시후 마음속에 뭔가 깨달아 지더래요! 

“사랑하면 늘함께 있고 싶고, 나아가 같이 살고 싶고, 모든 걸 다 주고 싶고, 그것도 제일 좋은 것으로 주고싶고 ....”
 그런 마음이 들면서 내가 술람미여인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나의 사랑하는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도 마음은 송두리째 가서 늘 함께 하고싶고, 혹 떠날까봐 안절부절하면서 찾아다니고, 잠시라도 보지 않으면 병이나고, 그래서 내가 그에게 속하고, 그는 나에게 속하였고, 보고싶고... 아가서의 말씀이 줄줄이 사탕처럼 꿰어지더래요!

 그러면서 그 전체의 말씀들이 4가지 단어들로 정리되더래요!1)늘 항상이라는 시간과 
2)최고 최선이라는 질과 
3)최대한 모두라고하는 양과 
4)함께, 서로, 더불어라고하는 상대(대상).
 이 네 가지가 떠오르면서
 그분을 깊이느끼고, 만지고, 가지고, 나누고 싶어진 것입니다.

주님꼐서 우리와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1)늘 항상, 2)최고 최선, 3)최대한 모두, 4)함께 서로 더불어 사랑하되
오직 나를 사랑하시기를 이같이 사랑하기를 원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러자 이제부터 이 말씀을 보는 순간
그것이 더 이상 글짜가 아니고, 남의 말도아니라,
나에게주시는 사랑핫는 주님의 말씀이 사랑으로 다가오기 시작하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아가서 나타난 사랑은 연애소설도 아니고, 한번 피웠다 지는 폭죽불꽃놀이도 아닌 것입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마음 뿐일세!’
주님을 사랑하는 귀한 순간 순간이,
주님과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되기를 축복합니다.

8-9절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 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틈으로 엿보는 구나! 

주님의 사랑은 지켜보는사랑, 보호하는 사랑, 당신이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달여와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즉,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결혼 첫 날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자 신부는 저녁밥을 차려놓고 기다리다가, 
남편을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여보, 저녁 드세요.” 그러나 남편은 저녁상은 쳐다보지도 않고 신부를 보며 
“아냐, 난 당신이면 충분해”라고 말하고는 신부를 안고 침실로 향해 사랑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며칠 동안 계속 되다 하루는 남편이 집에 돌아오니 신부가 밥은 안채려놓고,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왈, “아니, 당신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그러자 신부가 말하기를 “저녁밥을 데우고 있어요.”라고했다고 합니다.
정말 막결혼한 신혼부부의 달콤하면서도 웃기면서 청소년 금지의 사랑이야기일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아가서는 30세 이전 유대 남자들은 읽을 수 없는 책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술람미여인은 솔로몬의 품에 안겨 그 사랑을 노래하다가 잠시 또 헤어져 있게 됩니다. 
그러나 또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수 없는가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혹여나 바람소리에도 놀라 깨어 그분이 오셨나싶어 문열어보고, 문열어보고하는 것이, 깨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밖에서 그분의 음성이 들리는 순간 술람미의 마음은 날아갈듯이 기뻤답니다. 
술람미여인은 솔로몬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보니 저 멀리 산을 넘어 달리고 달리며 자기에게 달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사랑 꽃분아!..., 내 사랑 내 어여쁜자야!..” 

꼭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게 합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마치 술람미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솔로몬의 모습은, 
이 세상 마지막때에  주님께서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밤에 오실지, 새벽에 오실지,...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맞이하시러 오실 때, 주님!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 목소리에 기뻐 맞이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찬송가에서 이런 찬송가들이 있습니다.
-나팔불때 나의 이름, 나팔불때 나의 이름, 나팔불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없도다! 날 사랑하신주 늘 계시옵소서!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말고..
-주 예수님 언제 오실는지 한밤이나 낮이나  늘깨어서 주님 맞는 성도 주의 영광 보겠네, 주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아라!(163)

고 김희보박사님은 말하기를 “앞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의 호령소리는 천군천사의 나팔소리같고, 그의 참된 신부들은 그 소리를 어김없이 다 듣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오시는 주님은 꼭 노루와 어린 사슴같이 그 때를 엿보고 있으며, 언제, 어느때에, 어느방향에서 뛰어 나올지 모를 정도로 빨리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37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사무엘은 어릴적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앞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어린 사무엘에게 자기를 부르는 음성을 듣고 자다가도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가 ‘부르셨나요?’, 아니다!
또다시 자기를 부르는 음성이 들려서 자다가 일어나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가 ‘절 부르셨나요?’ 아니다!
 3 번째 부르는 음성에 엘리 제사장에게 가 ‘날 부르셨나요?’ 
그때서야 엘리제사장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깨닫고 
 “사무엘아! 그가 너를 부르실 때 두려워말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4 번째 부르는 음성에 사무엘은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비밀한 일을 그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사야도, 엘리야도, 모세도, 바울도, 어거스틴도... 많은 선지자들은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떨때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찬양과 경배를 통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열고 황소를드림보다 진정한 노래로 즐겁게 찬양할 때...
기도와 회개를 통하여, “우리가 정말 하나님앞에 고요히 나아가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 죄를 자복할 때...
말씀과 교훈을 통하여, “그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말씀앞에 깨달음과 결단이 따를 때...
헌신과 축도를 통하여, “주님앞에 나를 드리고, 시간, 정성을 드리고, 하나님의 복받기를 간절히 소망할 때...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목소리에 주파수를 맞추고 삽니다. 
그분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는가? 귀를 열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듣고, 저것도 듣고, 분간이 안가면 잡음만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 곳에만 맞춰 들어야됩니다
주님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열어놓고 살아나갈 때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때가 되면 나에게 달려오실 것입니다.

마치 주님의 사랑은 노루와 어린 사슴같은 사랑입니다. 
마치 이 사랑은 나를 주목하며 보호하는 사랑, 내가 원하기만하면 빨리 달여와 주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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