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절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4절 내용은, 솔로몬왕이 술람미여인을 침궁으로 이끌어가는 내용입니다.
얼마나 가슴이 두근 두근 거리겠습니까!
술람미 여인은 그 이끌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만의 밀실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여 둘만의 비밀장소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그 설레임은 주님만나는 성도만의 사랑의 감정입니다.
본문에서 침궁은 아주 은밀한 장소로서 3가지 중요한 교훈을 던져줍니다.
1)침궁은 어둠에 속한 나를 기도의 장소로 이끌어 들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밀한 교제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침궁은 세상에 속한 나를 교회로 이끌어 들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를 거룩한 자로 구별하여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3)침궁은 재림때 나를 하늘나라로 이끌어 들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의 입성하실 때 나를 데려가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침궁으로 술람미여인을 이끌어가듯이, 오늘 예수님께서 나를 기도의 장소로, 주님의 교회로,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들이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수 있어야합니다.
제가 어릴때 믿음이 약하여 그저 내가 내 힘으로 교회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기도할때에, “주님 오늘 저희들의 발길을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면 저는 “말도안돼!! 내 발로 나왔지 어찌 예수님이 인도하셨는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분이 계속기도하기를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가 예배드리게되어 감사합니다”하면 말도안돼 내가 예배드리는데 누가 나를 인도하여 예배드린단 말인가? 의심했습니다. 내가 내발로 직접 걸어 나왔고, 내가 내입으로 찬양하는것이지 어찌 보이지도 않는 예수님이 나를 인도하셨을까?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조금씩 자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기 앉아있는 것이 예수님의 은혜요,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창45:5-8절, 요셉은 자기가 형들에게 미움을 사고, 미디안인들에게 팔리고, 보디발장군의 노예로 들어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아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환난, 고난가운데서도 요셉의 마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니깐 감옥생활도 무난히 이겨낼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전혀 내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형제들을 만났을때 요셉은 말하기를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라”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감옥같다고 원망하지 말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 예수님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들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인도하심에는 결코 망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교제하고, 교회로 나오고, 천국가는 것이 나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에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던 게임? “겔러그” 머릿속에서 ‘뽕뽕뽕’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같아요.
한참 놀다가 해가 지면 누나가 찾아와 성훈아 엄마 부른다 빨리 집이와라!
그러다가 게임이 빠져 안가고 있으면, 엄마가 찾아와 “야 이놈 성훈아! 빨리 집으로 와라 저녁밥 차려 놓았다. 질질끌로 갑니다. ‘엄마 한판만, 한판만...’ ”
우리의 인생에는 “한판만 더”가 없습니다. 황혼이 찾아올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해가 뉘엇 뉘엇 질때가 올때, 주님이 나를 부르실 때 우리는 가야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360장을 불러봅시다. “예수나를 오라하네, 예수나를 오라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같이 같이 가려네. 주의 인도하심따라, 주의 인도하심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호세아11장4 “내가 사랑의 줄로 너희를 이끌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 주여! 나를 주님의 손에 맡기겠나이다!
오늘 말씀은 한번만 나를 인도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를 인도하시고 다스려 달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왕이시여, 나를 이끄소서! 나는 주님께 푹빠졌습니다. 끝까지 나를 책임져 주옵소서!”
침궁으로 이끌려 들어간 술람미 여인을 다 된것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나를 인도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하여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다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듬어져 갑니다.
하늘백성답게. 예수님의 기뻐하는 성도답게. 예수님 눈에 맞게 다듬어져 가는 것입니다.
Wim malgo라는 신학자는 “한 죄인의 거듭남의 과정은 그 자신에게서 나온것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이끄심이다”라고 했습니다.
제아무리 강한 강철이라고 대장장이의 손에 갔을때에는 그의 내리치는 망치의 압력에는 저항할수 없습니다.
많은 연단, 힘든 연단, 불속의 연단 속에서 내리치는 그의 망치에서 각자의 모양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붙잡으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인도하소서! 주님께서 나를 다듬어 주소서!
주님이시여, 나를 이끄소서! 주님의 기뻐하시는 성도로 다듬어 주소서! 우리가 지체치 않고 주님을 뜻을 따르겠습니다.
“나를 다듬어 주소서!”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오늘 읽으신 본문에는 “왜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단 한가지로 일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를 인하여” 즉, 술람미 여인은 내가 당신안에 있기 때문에, 내가 기뻐할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어떻게 저사람하고 이사람하고 만나서 결혼했냐고?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말투도 다른데...
둘이 정말 안어울리는 것같은데! 생각지도 못했던 두 사람이 만나 살고 있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그것은 다 자기눈에 안경이기때문입니다. 자기 눈에 맞으니깐 만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저사람이 교회에 다 단니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예수를 믿네?
그것은 그 성도가 아무리 형편없어 보여도 주님이 보실때에는 자기의 목숨을 바쳐 구원할만큼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서로 좋으면 보기만해도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침궁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쁨은 포도주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우리의 기쁨은 “주님을 인하여”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성경에는 “그대 있기에 우리는 기쁘고 즐거워”
쉬운성경에는 “우리는 당신을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본문에는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극한 기쁨이 되는 것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세상의 주는 쾌락과 즐거움과 차원이 다릅니다.
그 사랑은 가슴에 사무치고- 새겨지고-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원자폭탄입니다.
맘속으로 따라 하십시오 “주님이 있기에 나는 기쁘고, 주님이 있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이토록 나를 사랑하시는데 주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여러분들이여! 이세상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성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