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은 ‘풍성한 삶을 누리라’고 말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그런 풍성한 현실을 살아가기에는 아직 멀어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살아가는 생활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주부는 주부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모두가 그 신분과 직업과 상황에 따라ㅡ 겪는 도전과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현재 이 불안정한 시대속에 더욱 가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목처럼 ‘풍성한 삶을 누리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보는 것이 아름답고 안락해 보여도 정말 그것이 얼마나 풍성함을 제공할수있을까요? 하나님은 정말 예수그리스도 안에선 주시는 평강이 내가 보는 평강일까요? 풍성한 기준이 내게 있으면 내가 바라보는 기준이 되지만 내가 바라보는 시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시각으로 풍성함을 바라보게 된다면 지금은 비록 내가 원치않는 길이지만 장차 내게 약속하신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요한복음 10:7–10에 기록된 말씀이며 이 말씀은 예수님의 깊은 초청의 말씀입니다. 인생의 문을 잃어버리고 다른 문고리를 잡고 열어보려고 애쓰는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초대의 말씀입니다. “나를 붙잡으로, 나를 통과하라, 나를 통하지 않고는 결코 이 관문을 열어 갈 수 없다”고 성령안에서 해석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작아도 다양한 직업과 배경과 세대를 갖춘분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마치 옛날에 대가족들이 가진 속성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로부터,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손자 손녀들이 옹기종기 살아가는 가족적 공동체말입니다. 서로 각자의 포지션에서 주어진 역할이 달라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며, 찌지고 뽁고 살아도 사랑안에 뭉쳐져 살아가는 가족공동체 말입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교회의 모습입니다.] 찬송가에 보면, “사철에 봄바람”이란 찬양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가사가 있죠! “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라/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 하니 한칸의 초가도 천국이라/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그리고 후렴에는 이렇게 노래하죠!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기쁨과 설움도 같이한다, 한칸의 초가도 천국이라; 한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임마누엘 곧 우리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고맙고 행복하니 “고마와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 하루”... 저는 이 찬양이 지난주간에 불려졌던 찬양기도였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자리에서 여러 모양과 환경 그리고 여러 가지 걱정과 염려와 불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문과 진리의 분별 그리고 풍성한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말씀에 힘입어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희망을 가지게 되기를 축복하며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1.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문이십니다. (7)
요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윌리엄 헨드릭슨은 나는 양의 문이라‘의 “나는”의 말은 “나만이란 뜻이다”라고 했고, 존 칼빈은 나는 양의 문이라’는 “이 말씀이 없었다면 단순한 비유로 끝날 말씀이었을 것이지만, 이 말씀이 있음으로 영혼의 영양을 공급하시는 모든 영적 가르침의 핵심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명확하게 해명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나는 양의 문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분명+정확+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쳐주신 말씀처럼 “예수님은 나의 문입니다”라고 말해야하고, 또 그렇게 믿어야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 스스로를 위한 문이 아니라, “예수님은 양의 문이고, 양을 위한 문이고, 양에 대한 모든 상황에 대하여 열려있는 문이기에, 양에 관한한 모든 문제에 대하여 해결 받을 수 있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적용) #내 인생의 문! 내가 어려울 때 해결 받았던 문! [피부병, 죽을뻔한 사건들, 죄악중에 건져내신 사건; 곤란할 때 피할 길을 열어주셨던 사건들], 내가 그 문을 두드리며 찾고 찾으며 잡아 열려고 했던 문! 그 문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였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쩔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지 못하고 다른 문을 붙잡고 열려고 했으니, 이 얼마나 내가 사람의지하고, 세상물질의지하고, 세상명예를 붙잡고 살려고 했는지 회개하는 순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를 상기하면, “내가 무슨 일을 하려할 때 마치 돈이면 다 해결되고, 인맥을 붙잡으면 다 될줄 알았고, 명예를 얻으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철없던 인간적인 생각이ㅡ 이제는 인생의 참된 문앞에 다다라 갈수록 그것들이 금이가고 쪼개지고 무너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부터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후 가치관이 바뀌고, 방향이 바뀌고, 우선순위가 바뀌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드러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가 전파되기만한다면 나의 생명, 재산, 지혜 모든 것을 그분위하여 다 드리기로하였고 그렇게 쓰임받다가 죽어도 영광이 되었고, 그렇게 살다가 전제(자신은 전부 제물)로 드려 다 없어진다해도 그렇게 죽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의 문, 곧 예수 그리스도를 열었더니 그의 인생은 영광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과연 바울처럼 살아 갈 수 있을까? 여러분은 과연 바울처럼 살아 갈 수 있을까요? 성령께서 도우신다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목사-선교사-장로-권사여서 바울처럼 살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어떤 환경속에서도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려고 생각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작은실천들을 이루어갈 때, 그것이 뭐~위대하거나, 대단하거나, 유명세를 타지 않더라도 작은 바울로 살아갈수있다면, 그것이 하나님 편에서는 바울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로 여겨지주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양은 문을 통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인생의 구원의 문이시며,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인생의 문을 열어가라고 하신 초대입니다. 여러분이 잡은 문고리는 무엇입니까? 만약 그 문고리가 예수님이 아니라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여러분이 잡아아할 유일한 문고리이며 열어야할 문입니다! 그 문은 여러분을 구원으로 인도하여 가실 것입니다.
2. 진리와 거짓을 분별해야 합니다. (8)
요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세상에는 유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마치 거짓이 진리로 행세하고,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할때가 많습니다. 그저 믿어버리니깐요!!
#솔로몬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겸손한 모습으로 지혜를 구했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우뚝솟은 탑처럼 세워주셨음에도 세월이 갈수록, 그는 그의 지혜가 마치 자신에게서 주어진 것으로 착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방의 여인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잊어버린채 이방여인들의 치마폭에 바보 멍청이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안에는 우상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거룩한 성 예루살렘 주변으로 우상을 세웠습니다. 왕상11:7-8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같이 하였으며, 그가 그의 이방 아내들을 위하여 다 그와같이 하여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게 하였더라“하였으니 하나님께 다른 신을 좇지 않겠다고 했던 그 맹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점점 영적으로 쇠퇴하며 가다가 결국 나라가 두쪽으로 갈라지게 되어버렸습니다.ㅡ
적용) 그렇게 지혜로웠던 솔로몬 마저 무너지는 이야기를 보면, 그 지혜를 빼앗기기 전에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그 지혜가 어디서부터 온것인지 깨닫고, 그 지혜를 지키기 위하여,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 항상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안그러면 나도 자칫 솔로몬의 행적을 뒤따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척도가 되어야합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경홀히 여기고 있고, 기도하는 특권, 찬양하는 본분, 말씀과 동떨어져 살고 있다면 우리는 깨어 경성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는 곳으로 나아가야할때라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나보다 먼저 온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라고 했는데, 예수님 보다 먼저 온 자는 누구기에 다 절도요 강도라고 했을까요? 1차적인 의미로는 유대인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어떤 유대인들을 말합니까? 산헤드린 공회원들,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 사두개인들같은 예수님이 오시기전부터 있던 적대자들이었습니다. 2차적 의미로는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구원을 갈취하는 자들입니다. ⊙자기도 구원받지 못하고 남도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권력을 쟁취하고 그 권력으로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려는 세력,무리들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영적 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없는 자들입니다. ⊙율법의 형식적인 규칙에만 관심있지 성령의 인도와 조화와 질서에는 전혀 관심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듣지 말아야하고 따르지 말아야하고 흉내도 내지 말아야합니다.
3. 예수님은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9-10)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9절에, “구원을 얻고”, “꼴을 얻으리라” 또 10절에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단순한 이 땅의 약속이 아니라, 영적이고 영원한 ‘구원’과 ‘꼴’과 ‘생명’을 주시려는데 ‘더 풍성히 얻게하려는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약속을 얻을 수 있습니까? 9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습니다. 단서를 붙일때에는 굉장히 중요한 매개체가 있어서 그 매개체를 반드시 거쳐야만 뒤에 나오는 약속된 것을 얻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단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과 꼴과 생명을 주신다는 단서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ㅡ요한복음의 저자 사도요한은 니고데모라는 산헤드린 공회원을 만나 거듭남의 비밀을 가르치면서 이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설명한바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세요? 요3:12-16 말씀입니다. “요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ㅡ 요한은 요한복음서를 기록하게된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우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요한복음서 20:31에서 기록목적을 밝힌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구원얻고, 꼴을얻고, 생명을 얻으려면“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는 ‘구원과 꼴과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적용) 정말 구원받고 싶고, 정말 꼴을 먹고 싶고, 정말 생명을 얻고 싶다면, 우리는 이 약속하신 구원자 예수님을 바라봐야합니다. 그는 구원의 문이시고, 그는 꼴을 얻는 문이시고,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오늘 생명없는 자들에게 생명의 문으로 나오라고 초청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앞에 기도했습니다. 그 초청에 저희 교인들을 불러주십시오! 저희를 불러주십시오! 저희 가족을 불러주십시오! 마음이 상한자를 불러주십시오! 진리를 잃어버린 자를 불러주십시오! 간절히 구원받기 원하는 자들을 불러주십시오! 저희는 지금 주님의 구원과 꼴과 생명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기도하는데 일전에 큐티하면서 마음에 주셨던 말씀을 다시 상기시켜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는 요7:37-39말씀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안에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충만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고, 또 성령께서 우리를 풍성한 삶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위하여 예수님은 문이되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문을 찾고 계시다면 예수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을 초청하고 계시며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구원얻고싶고, 꼴을 얻고 싶고, 생명을 얻고 싶다면 주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안에 주시는 성령은 우리로 충만케하시며 반드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의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문을 찾게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세상속에서 유혹되었던 모든 거짓된 것들로부터 구원과 진리와 생명을 얻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성령충만한 삶을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를 구원과 진리와 생명으로 풍성하게 살게하시려고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