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예수님의 고난과 우리의 회복
본문
사53장4-6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5-04-06

사53:4-6 예수님의 고난과 우리의 회복

Isaiah 53:4–6 “Jesus’ Suffering and Our Healing”


서론

먼저,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우리의 회복에 대한 2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하나의 관점은 예수님의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관점이고, 또 하나는 아담이후 모든 인류가 죽음을 맞게 된 인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셔야하셨고, 우리는 회복되어야할 이유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왜 고난받으셔야만 했습니까?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하나님의 말을 듣지않았다고 예수님이 대신 고난받으셨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의 죄에 대한 벌을 대신 짊어져 주기위한 하나님의 구원 방법 정도로만 이해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비록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이만큼 큰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왜 회복이 필요했어야만 했습니까? 이 또한, 단순히 우리가 자책감을 없애는 수단이나, 연약함을 감추고 자존감을 세우려는 단순 사회· 윤리· 심리적 목적만으로 회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회복은 힐링 프로그램에 달린 것이 아니라, 만물을 주관하시고, 만물 가운데 살아계셔서, 언제- 어디서- 그 어떤 방법과 그 방법들 모두를 초월해서라도 (깨어진)우리를 고치시기를 간절하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치유능력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복은 내편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편에서 이해되어야하기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고난과 우리의 회복이라는 말씀으로 4월 첫주간을 희망과 용기와 힘이 되는 말씀이되어 우리의 회복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음을 발견하는 시간되기를 바라며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대신 지셨습니다. (4절)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본문의 “그는”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님을 상징하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700여년전의 예언이었지만 그분이 이루실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이 이 땅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날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무려 700여년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정확하게 증거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즉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사건의 크라이막스는 바로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렇게까지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야만 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존재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노력으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근본적인 죄의 원천은 700여년전의 일이 아니라,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며 인간을 이 땅에 두셨을 때 사단의 꿰임을 받아 하나님을 배신했던 그 오랜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사건이기에, 우리는 본문속에서만 무슨 잘못을 찾으려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저 인간은 태어나면서 하나님 앞에 의인이 없었습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씀은 바울때의 모든 사람, 이사야때의 모든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출생된 모든 인류는 모두가 태어나면서 자신의 의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칼빈은 법정으로 끌려가는 사람을 비유로 이 본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의식으로 느끼며, 수치감으로 인하여 쩔쩔매며 당황하게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만약, 세상에 반쪽짜리 의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서 박탈당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바울 자신의 논증은 세상에 그런 반쪽짜리 의는 없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그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수 없다”했습니다.  그러면,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려면 온전히 의롭다함을 얻어야하는데 어떻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까? 롬3:24절에 거기에 대한 해답을 주신 것입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본문을 보시면 인간의 상태를 어떤 상태로 표현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질고(=우리의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 우리의 슬픔(מַכְאֹב =고통, 상처, 아픔, 고난, 상실, 외로움, 배신감)”이란 표현으로 알 수 있듯이, 우리 모든 인생이 바로 ‘죄 아래 출생한 모든 인생’이기에 이 인생들이 얼마나 신체적-심리적-정신적으로 질고와 슬픔이라는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질고를 지셨다고 하셨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큰 사랑 그리스도 예수님의 고난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 감정, 상황을 아셨고 그 상황을 초월하셔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이십니다ㅡ 예수님은 아파보신 분이십니다. 고통을 겪어보신 분이십니다. 배신과 외로움과 멸시와 비웃음과 조롱을 경험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진정한 공감과 회복을 제공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본문 4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4절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질고를 지셨고, 슬픔을 대신 담당해주셨는데도, 정작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로 죽을 우리가 죽어야할 것을 그가 대신 담당해주셨음에도 그 은혜를 고마워 하기는 커녕 고난의 이유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징벌을 받고 매를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범죄자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해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징벌받아야 할 마땅한 자로 취부해 버린 것입니다. 정말 우리와 상관없습니까! 정말 나와 상관없이 그리스도께서 징벌을 받고, 하나님께 매맞는 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셨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그리스도의 질고를 지심과 슬픔을 당하심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욥기서를 읽을때에나, 다윗이 도망을 다녀야 했을때나,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야했을 때 우리는 그 잘잘못을 그 사람에게서나 상대방에게서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징벌을 받고, 고난을 겪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징벌을 받을 짓을 했기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하여 거룩하게 만들어가시고, 그를 광활한 곳으로 이끄시고, 그 사람과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하셨습니다. (5절)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은 찔림, 상함, 징계, 채찍을 맞으신 것입니다. 그 모든 고난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상실했고, 치유되지 못한채 죽어가야할 인생이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찔림과 상함과 징계와 채찍을 대신 다 담당하심으로 우리는 회복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적용1) 다시 본문을 읽어보았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하신 일이 나의 허물을 덮어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묵상은 내 영혼을 살리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찔린고통’, ‘그리스도의 받은 상처’, ‘그리스도의 징계당하심’, ‘그리스도의 채찍맞으심’이 없었다면 나는 나의 허물때문에 당할 끔찍한 지옥을 생각하니… “내 인생, 이렇게 지옥의 고통에서 영원히 괴로워해야 하겠구나!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고통”이 연속되고, 아무리 소리질러도 그때는 구원받지 못할 지옥인생에서 벗어날 없다고 생각하니 오직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기회를 주셨고, 그리스도께서 내 영혼에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지옥 고통을 대신 담당하시며 나의 괴로워하는 영혼을 터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손길안에서 회복되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53:5절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읊조리기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그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며 읊조렸습니다. “그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도다”. … 다시 눈을 감고 읆조리는데 내 마음에, 우리 교회에, 우리 가정에 평화가 임하고, 치유받는것을 경험하면서 우리 모두를 광활한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을 확실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내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안에서 주시는 확신이었습니다!


적용2) 지난 주간 큐티를 하면서, 하나님의 두번째 기회를 주시는 내용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 정한 기일 곧, 1월14일에 모든 백성들이 지켜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자들이 있어서 참석할 수 없었고, 시체를 보거나 만졌을때 부정하였다고 참석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2월14일에 유월절을 지킬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주신 “인생의 두번째 기회”라는 말씀으로 묵상하는 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첫번째 기회를 많이 놓치며 살았습니다. 호적도 두번째 해에 했고, 자연히 학교도 1년 늦게 들어갔고, 신학교도 재수해서 들어갔고, 강도사도 두번째 붙었고, 결혼도 두번째 여자랑 했고, 시민권도 재수해서 붙었습니다. 아내가 재수해야 했을 때, 제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재수없는 사람이다”. 어찌들으면 운수대통 없는 없는 사람이다. 하는 일마다 운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들리지만 아내의 뜻은 첫번째의 인생이되라고 응원해준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왔던 저에게 지난주 목요일에 주신 말씀은 제게 큰 영적 의미를 부여해주는 날이었습니다. 두번째 주시는 은혜가 첫번째 얻은 약속보다 내게 유익이었음을 깨달았기때문이었습니다. 

1) 나를 한계단 낮추게 하시고,

2) 나를 더 간절하게 하시고, 

3) 오직 내 힘이 아닌, 내 실력이 아닌 오직 은혜임을 알게하시고, 오직 하나님께 더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았기때문이었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셔서 2월14일에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철저하게 그날을 준비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려고 성령이 간절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눈을 뜨면 다시 살려주신 두번째 은혜를 기억하고 이젠 다시는 재수없는 인생을 살기로 다짐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서 아담안에서 실패한 내인생을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성공한 내인생으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되었습니다. 율법안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은 여전히 절망적인 모습이지만 그리스도안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은 새로운 희망으로 태어나는 모습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달, 이번 주간 내게 주시는 가장 핵심적인 말씀이 있다면 바로 오늘 읽은 사53:5절말이 될 것입니다. 평화를 누리길 원하십니까? 나음을 입으시길 원하십니까?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살아가시어 여러분의 생가과 감정과 상황을 이겨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3. 우리는 방황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6절)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양은 착하고 말하는대로 따라간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양의 부정적인 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양은 부정적인 특징 3가지는 1) 자기 앞만 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걸음 앞에 있는 함정이나, 유혹을 분별하지 못하며 현재 뜯어먹는 풀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만 구덩이에 빠지는 경우도 생기고, 절벽인줄도 모르고 가다가 위험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2) 그런탓에 자신의 주관이 없이 무리들에 휩쓸려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무리들이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채 따라가다가 때죽음을 당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나는 것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함께 중요합니다. 3)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구덩이에서 건져줘야하고, 누군가가 찾아 어깨에 메고 와야한다는 것입니다. 


눅15:4-5절,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예수님은 잃은 한 영혼을 위해 끝까지 찾으시고, 찾으신 후에는 정죄하거나 야단치지 않으시고, 기쁨으로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모습을 연상했습니다. 그리고 온 동네 방네 사람들을 불러모아 향연을 열어주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 말씀속에는 정죄나 감금이나 통제나 챙피하다고 여기며 야단치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찾고 찾아 찾은 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와 공동체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었어도,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반드시 찾고 찾아 어깨에 메고와서 하나님나라의 향연에 참석시키실 것이며,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기쁨을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결론

“그의 고난은 나의 평화, 그의 상처는 나의 치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대신 지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상처입은 치유자이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시며 함께 걸어가시는 분입니다.

둘째, 그분의 상함은 우리의 죄를 덮기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셨기에,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었고,

그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 우리는 양처럼 그릇 행하였으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찾아내셨고, 기쁨으로 어깨에 메고 돌아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품 안에서 회복되고, 다시 살아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오클라호마한인중앙장로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영혼과 가정과 공동체 위에,

평화와 회복의 능력으로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아버지, 오늘도 우리의 죄를 대신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사랑 앞에 섭니다.

그가 찔리심으로 내가 회복되었고,

그가 징계를 받으심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내 죄와 상처에 눌리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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