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13-14,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Genesis 22:13-14, “The God of Jehovah Jireh”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그런 찬양을 부를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 내길 예비하시니 여호와 이레, 주님 내게 평화주시니 여호와 샬롬, 주님내게 승리주시니 여호와 닛시, 주님나를 치료하시니 여호와 라파… 하나님의 여러 속성속에서 우리를 순종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기때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기도의 응답”에 대한 주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데 비해 응답을 많이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기도의 응답은 성경에서 예수님이 제일 많이 언급하신 약속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약속하신 것이면 그만큼 응답을 받을 확률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마땅히 응답을 받아야 할 일이고, 정상적인 기도를 하였는데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에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력해서가 아니라, 기도하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응답이란 우리가 요구하는 그것을 얻는 것도 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주시는 경우도 포함된다. 가끔 우리는 하나님이 원해서 주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기도의 주체는 인간에게 있지만, 응답의 주체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어쩔때는 내가 원하는 응답은 주시지 않고 자꾸만 기다리게 하시고, 아예 거절하시는 응답을 주실때도 있습니다. 만약 어떤 아들이 배고파서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돌을 먹으라고 한다면 아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생선 좀 달라고 했더니 징그러운 뱀을 던져주었다면 어떨까요? 뱀고기 좋아하는 사람이야 좋겠지만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7: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 아버지는 좋은 것으로 주시는데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있습니다.
오늘 저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아들을 번제로 드려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아무 말없이 순종함으로 갔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예비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란 말씀을 증거할 것입니다.
1. 눈을 들어 살펴보라 (13上)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이라는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뭔가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조카 롯과 함께 높은 언덕에 올라 너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너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할 때 조카 롯은 오직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소돔과 고모라 땅이 마치 애굽땅 같고, 여호와의 동산같아 그 한곳만을 주시하며 갔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동서남북을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더 큰 비전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가 바라보는 것을 네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하셨습니다(창13:14-15). 그와같이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이 있을 것을 분명하게 믿었기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등장하는 창22장 서두7절에서 아들이 질문하기를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딨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흔들렸을까요? 그런데 성경속에는 아버지의 심경은 밝히지 않고 오직 믿음의 선포만을 하게 하셨습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하셨습니다. 저는 이부분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은 결국 지난 모든 살아온 시간들속에서 얼마나 훈련되었는던지 아들앞에서 믿음의 선포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봤다는 것은 바로 가장 위기의 순간까지 하나님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나약한 믿음에서 바라볼때에는 이 말씀이 이해되지 않겠지만, 아브라함과같이 여러 환란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쌓여 있는 성도라면 이 말씀이 백번 이해되리라 생각듭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들고 있던 칼로 아들 이삭을 제단에서 죽이려 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고 말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옥한흠목사님의 4번째 질문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이 정도의 다짐을 받고도 번번히 하나님을 의심하는 버릇이 있다. 당신의 경우 한번 털어놓아 보지 않겠는가?”의 질문은 나를 이제 그만 의심하며 살아라고 선을 긋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의심은 두 마음이기때문이었습니다.
적용) 그리고 이 말씀을 의지하고 나의 눈을 들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주시며 앞으로 전진하게 해주셨습니다! 찬송433 눈을 들어…
2. 아들을 대신하여 (13下)
지난 주간에 큐티를 하면서 삶을 의심할때가 하루 있었습니다. 삶을 의심한다는 것은 삶속에 닥쳐오는 크고 작은 고통이 나를 억누를 때 내가 살아가는 현실속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란 뜻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굳건한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놓임을 받게될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없이 기쁜 것이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신학교 교수님은 기쁨이 찾아오면 고통은 잊혀진다고 했던 가르침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출산했더라고 생명이 태어나면서 응애~하는 순간 생명탄생앞에 고통은 다 흘러지난 과거가 되어버린 것처럼…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본즉 숫양 한마리가 수풀에 뿔이 걸려 아둥바둥거리며 나잡아 잡슈하는 것을 본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기쁨이 가슴까지 벅차올랐을까요!!! 그 양은 하나님이 내 아들 독자 이삭을 대신하여 드릴 번제 제사 제물이었다는 것이 머리를 스쳐 지날 때 아브라함은 더 이상 이 고통에서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즉시 바로 가서 그 숫양을 잡아와서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던 것입니다.
무엇을 더 지체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아들을 대신해서 아들을 살릴 수 있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만번이고 죽을 수 있을것이지만, 그 방법으로는 아들을 살릴 수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로만 대신하여 살릴 수 있는 제단 제사로만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을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원사건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었고, 하나님이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만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 근거되고 있기때문이었습니다.
적용) 오늘 우리가 드리는 제사를 보면, 구약성경의 때와는 다른 예배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번제로 수양을 잡을 수는 없지만, 내가 만난 예수님, 내가 의지하는 예수님,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없으신 예수님을 통하여 경배하며, 찬양하며, 헌신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진리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일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신다면 더 잘 믿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것은 내가 직분을 감당하고, 꿈을 펼치고, 세상속으로 나아가 선한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우선순위가 빠졌다면 그것은 내가 무엇이 되기전에 믿는 일에 참여하시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14)
아브라함 한 사람의 사건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전수되었습니다. 내가 믿고 순종한 자리가 있다면 그곳은 그 한사람을 통한 하나님이 계시되는 현장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앉은 자리가 영적 모리아산이 된다면 다음 세대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지나갈때마다 우리 교회의 신앙이 전수될 것입니다. 세상속에서 우리교회는 오늘 영적 모리아산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위해서는 아브라함의 믿음, 순종,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 없이 모리아 산이 후대에까지 하나님의 산으로 증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모리아산은 솔로몬이 왕이되었을 때 이 산은 성전이 세워지는 장소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대하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그 모리아산 곧,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있던 곳에서 다윗왕이 회개기도하며 번제를 드림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멈추게 한 곳이었습니다.
그 모리아산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지않고 인구조사를 하였다가 그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잘못으로 3가지중 1가지 징벌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첫째 징벌은 7년기근, 둘째 징벌은 3달간 도망자 신세, 셋째 징벌은 3일간 불치병을 받는 것 중에 한가지를 택해야 했었습니다. 다윗은 7년 기근ㅡ3달 도망자보다 ㅡ3일 불치병 받고 말겠다고 하는 순간, 단번에 하나님의 징벌은 시작되고 수백명, 수천명, 수만명이 단숨에 불치병이 걸리기 시작하는데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더니 3일안에 모조리 다 죽을 판이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회개하며 “나와 내 가족만 죽여달라”며 처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선지자 ‘갓’이 하나님께 부름받아 와서 오르난의 타작마당 곧 모리아산에서 제단을 쌓으라하여 순종하여 제단을 쌓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의 불이 내려 응답하셨고 죽이는 천사의 칼은 칼집에 꽂이고, 재앙은 그 자리에서 멈추어서게되었습니다.(삼하23장; 대하21장)
결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가장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했을 때, 하나님은 가장 완전한 방법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선한 길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뜻을 신뢰하며, 순종함으로 나아갑시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믿음으로 이 한주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우리의 길을 예비하시며, 가장 선한 것으로 응답하심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