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창37:18-24 요셉의 고난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고난
어느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물었습니다.
"아무도 없습니까? 손들어보세요?" 그때, 저 뒤에서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목사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할아버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씀해주세요."(힘없이) "응, 있었는데… 다… 죽었어요!"
오늘 여러분에게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스코틀랜드의 워털 스코트라는 작가이 이야기입니다.
어릴적 암기력이 총명하고 학교에서 늘 2등을 했습니다.
아무리해도 1등 학우를 따라잡을 수 없어 시기심이 생겼습니다.
어느날1등학생이 암송을 할 때 앞단추를 만지작 거리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에 암송대회전 그학생 단추를 몰래 잘라버렸어요.
정말 더듬거리더니.암송을 못하고 꼴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은 마음의 살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움과 시기입니다.
창37:4‘그를 미워하여, 5.더욱미워하였더라. 8절.더욱미워하였더라.
창37:11‘그 형들은 시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문에 시기란 마음속의 분노를 인하여 얼굴이 붉어질 때 쓰는 의미입니다.
가인이 아우 아벨을 시기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시기했습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시기했습니다.
격언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미움에 이르는 길은 많은데 그중에 가장 짧은 지름길은 시기이다”,
“당신이 한없이 비참해지려거든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라!”
오늘 본문18절을 보시면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요셉을 죽이려고 꾀하던 자들은 먼나라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요셉의 혈육 형제들이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죽음은 아주 가까운 자들의해 죽으신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그는 예수님을 죽이는데 선봉자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기도할 때 잠에 취하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혀가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매달릴 때, 다 도망가고 자기 직업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말했던 자들은 바로 예수님의 이웃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돈에 매수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였던 사람들은 절대 먼나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은 이웃이었고, 제자들이었고, 오늘날 바로 여러분 당신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속에 요셉을 죽이려고 음모한자들은 그 누구도 아닌 형제들이였습니다.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미움과 시기를 받았고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건이야기 하나 할까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목졸라죽인 엽기사건이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임신9개월된 며느리를 목졸라죽였습니다.
왜냐하면 무시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병원 진료상 시어머니에게는 우울증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속에 근본적인 미움과 시기심을 없애는 고난주간을 보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문19-20절을 보십시오.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결국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짐승한테 잡혀 먹혔다고 거짓말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요셉에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었습니다.
그 꿈이 실현되지도 못한채 구덩에서 꿈과 사라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꿈은 절대로 그 누구도 어떤 위협과 권세도 땅에 묻히게 할 수 없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계획하실 하나님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십자가를 이루고자하는 대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품은 자는 반드시 그 꿈이 성취되기까지 꿈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두시고, 하나님께서 꿈꾸는 자를 통해 과업을 이루시고야 마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살려두신 하나님의 대망이 무엇입니까?
밥잘먹고, 돈많이벌고, 내 이익과 욕망대로 살아가는 것이 대망일까요?
미국 대통령의 리무진은 방탄기능이 된다고 합니다.
차 문의 두께는 8인치요, 펑크나고 폭탄터져도 끄떡없습니다.
차안에는 위성통신, 적외선카메라, 어둠속에서도 쥐위 환경포착하며, 기관총이 장착되었고,
소방장치도 있고, 헌혈까지 가능한 차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철옹벽같은 차라할지라도 기름이 없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속에 예수그리스도를 담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품을 때 그것이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꿈이고 살아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이룩하여야할 십자가의 대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고 자신이 이룩해야할 하나님나라의 대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면 그의 대망이 십자가와 함께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십자가는 오히려 인류가 바라바야할 구원의 대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 속에 요셉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주신꿈이었습니다.
꿈 때문에 결국 형들에게 미움,시기받고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땅속에 묻는다 할지라도 거져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완성하실 수 있도록 도우시는 전능자로 서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절대로 묻힐 수 없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내게 주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사명이 무엇이며 비젼이 무엇이며 꿈이 무엇인지 발견되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21-22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말라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
르우벤은 그래도 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을 계속해서 살려주자고 했습니다.
맏형다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르우벤의 그런 노력에도 요셉은 구덩이에 묻히고 장사꾼들에게 팔려가고 말았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일 것이 예언되어있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예수를 죽인 살인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방법과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백성들을 구원하려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토해버리실 진심도 없는 형식만 남아 진실한 선지자들은 죽여 말씀을 받지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히든카드를 꺼내셨습니다.
마지막 선지자되신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신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서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려 오셨습니다.
로마총독 빌라도도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디만 사람들의 언성에 못이겨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데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본문속에 르우벤은 마치 총독 본디오빌라도처럼 요셉을 살려보려고 애를썼지만 자기뜻대로 하지못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과 함께 범죄에 동참했고 맏형의 자격으로도 절대로 막을 수 없었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오늘 우리는 또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한 주간 경건한 생활을 해나가십시오!
절제하는 생활, 기도와 말씀과 선한일에 힘써가십시오.
그리고 주님은 어떻게 하실까 생각하며 주님과 동행하며 매일 말씀앞에서 살아가십시오.
내가 생각하지 못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본문 23-24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요셉은 아버지께서 특별하게 지어주신 채색옷을 형들의 손에서 벗겼습니다. 아버지의 사랑받은 요셉, 자기 동생을 그렇게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옷에다 짐승의 피를 묻혔습니다. 그리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이 사건이야 말로 예수님께서 자기 민족들의 손에 팔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만 하셨던 고난의 모형적인 모습 아니겠습니까!!
넷째. 예수님은 모든 수치를 다 드러내신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요19:23-25을 보십시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로마군병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취하였습니다.
죄인의 옷을 가지면 복이 들어 온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벗겼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믿는 복과는 상관없이 벌거벗겨 수치를 당하셔야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병사들이 놀랐습니다. 겉옷을 취하고 속을 보는 순간, 속옷은 보통 옷이 아니었습니다.
원문에는 <키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키토라는 말은 직조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 통으로 짠옷, 이음새 없이 한조각으로 짠 속옷이란 뜻입니다. 대개 이런 옷은 보통사람이 입을 수 없습니다. 제사장들만 특별히 입는 옷이었기때문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제비뽑아 그것을 가로챈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인류의 대제사장이셨습니다.
병사들은 이 속옷을 찢지말고 제비뽑아 가지자고했고 그들은 가졌고 예수님은 그 속옷마져 벗겨져버리셨던것이었습니다.
중세교회가 유명한 화가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림을 그려달라했더니
화가가 십자가에서 못박힌 예수님이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그려왔답니다.
“왜 이렇게 적나라하게 그렸느냐?”했더니 그 화가가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이 그림은 성경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벗겨진채 십자가에 매달렸던것이었습니다.
숨길 것도 없었고 감출 것도 없이 모든 수치를 당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가까운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한 대망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수치를 다 드러내신채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주간을 보낼수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나같은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내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고난주간을 보낼수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날 위해 수치와 모욕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