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예수님의 사명 MP3
본문
마20장28절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4-09-22

 마20:28 예수님의 사명 

Matthew 20:28, The Mission of Jesus

“예수님은 누구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까?” (1)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시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8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17:21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17:25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사명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오직

(1) 예수님의 사명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주어진 사명이었습니다. (2) 그 사명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사명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이 땅에서의 사명이었습니다. (3) 오직 온 인생들과 온 우주 만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여 내시는 사명이었습니다. (4) 다른 이로서는 구원할 수 없고,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오직 한 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누구라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신 방법뿐인 사명이었습니다. (5) 예수님은 높은 산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도 다 이루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길을 가시때나, 누군가를 만나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고 또 엎드려 기도하면서도 ‘다 이루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십자가 상 곧, 인류의 저주를 담당하셔서 십자가에 매달려 피흘려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명은 다른 어떤 성인들과 견줄 수 없는 사명완수를 이루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사명만이 우리의 작은 사명들의 본질이 되고, 근거가 되고, 뿌리가 되고, 모범이 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예수님의 거대한 사명에 작은 사명자로 역할 감당하기를 바라며 말씀증거하겠습니다.


1. 인자 사명: 인자(人子)로 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보다 더 따뜻하고, 완전하고, 안전하고, 용기를 주는 말씀이 어딨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적용1) 나를 가장 따뜻하게 하고, 평온하게 하는 곳은 어디일까? 한가한 바닷가 계곡 밑에서 여유롭게 낚시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얼마지나지 않아 그곳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이 따뜻한 해변가였고 거기에 펼쳐진 따뜻한 모래사장을 밟으며 자연의 바람을 느낄 때 정말 모든 걱정 근심 염려가 다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지나지 않아 나의 발걸음을 어디로 옮겼습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품속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모성적 복음을 경험하였고, 그 경험에서 느꼈던 평온함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따뜻한 환경이 주는 포근한 길을 걸어간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는 평안함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는 것보다는 참 평강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적용2)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은 아유슈비츠 수용소의 참혹한 고통이었지만, 아버지 ‘귀도’는 아들 ‘조슈에’에게 이 현장을 게임공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게임에서 1000점을 따면 탱크를 상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100%믿어버리니깐, 이제 그곳은 이 아이에게 인생을 즐기는 아름다운 곳, 재미 있는 곳이 되어 흐뭇한 감동을 전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인자’라는 말은 구약에서는 크게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에스겔서에 나타나는 “인자”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에게 직접 적용시키는 표현으로서 ‘인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선지자였던 에스겔에게 “인자여! 너의 발로 일어나라”라고 표현하듯이, 인자라는 말을 직접 에스겔이라는 사람에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서에 나타나는 인자라는 표현은 인간의 아들이라는 것에 강조점을 두었던 것입니다. 그와 반면에 둘째로 다니엘서에 나타나는 “인자”라는 표현은 메시야, 구원자, 회복자 앞으로 우리의 참혹한 현실에서 구원할 그리스도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복음서에서 82회 사용되었고, 그 “인자”라는 말은 다니엘서에서 강조하는 약속대로 오실 메시야, 구원자, 회복자에 대한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구원자를 기다렸던 것처럼,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속국에서 구원자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둘 다(다니엘서와 복음서) 어쨌던지,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렸다는 결론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자의 개념을 다시 정리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예수님은 정치적 인자로 오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자 그러면 본문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마19: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뭐하려고 온 것입니까? 28절, 계속 보시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하신 것입니다. 이로보면, 예수님은 정치적으로 군림하거나, 통치하거나, 강제적인 무력으로 구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면, 어떤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복음음을 들고 오셨던 거입니다. 오늘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의 존재 목적이 바로 평화의 복음을 들고 세상을 향하여 다가 가는 것입니다. 


2. 섬김 사명: 섬기러 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버리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삼위일체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자체만으로, 모든 영광스런 권위에서 내려오신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섬김의 일입니다. 

적용1)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섬김의 본을 보이신 실천적인 가르침은 요한복음13장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일 것입니다. 스승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일은 그 당시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었던 예수님이 스스로 섬기는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적용2) 한국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수련회, 여름성경학교를 하면서 학생들과 청년들과 주일학교 교사들의 발을 씻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아이들은 웃기도했고, 웃음을 참기도했고, 절대로 발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진중한 모습으로 임하며 세족식을 마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중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며 다른 사람의 섬김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딱 한분을 보았습니다. 연세드신 장로님의 부인이셨던 권사님이셨는데, 그분은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오랜 시간 별별 아이들을 다 가르쳐 봤던 베데랑 주일학교 교사셨습니다. 그분의 발을 씻어드릴 때 제 손으로 흘러떨어지는 눈물을 느꼈습니다. ㅡ지금 생각하면, 저분 밑에서 배운 어린 학생들은 참 복되도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이 본문을 대하면서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때 당시 칠곡 시골 교회는 일꾼이 부족하다보니, 몇몇 분들이 교회 살림을 거의 도맡아 하시듯 감당하셨고, 주일학교 교사의 사명까지 감당하시면서 진심으로 전심으로 성심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이런 분들은 무엇을 시켜도 없는 열정이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ㅡ그렇게 시골지역이라도 아이들이 80-100명이 나왔습니다. 그 권사님의 반이 참 부흥했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으로 가르쳤는데도 철없는 아이들은 반을 바꿔달라하고, 듣기싫어 교회를 안나와버리고, 선생님이 늙었다고 대놔놓고 이야기하는 버릇없는 아이도 개중에 있었습니다. 섬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거 다 생각하면 섬길 수 없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이 아이들이 자라서 섬김의 자리에 서게될 때 섬김의 교훈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이나 어른이나 섬김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섬김받으려고하고, 높아지려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발을 씻어주며 섬기는 자의 본을 보여주시며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베드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말하니, 예수님이 “나의 하는 것을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높아지려는 사람은 섬김의 의미를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린 다는 말씀입니다. 섬김이 얼마나 많은 자를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는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다시 말하기를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하였습니다. 굉장한 겸손과 낮아짐의 모습같아 보이지만, 베드로는 아직까지 섬김이란 오직 천하고 낮은 신분을 가진 자가 높은 자에게 베풀어주는 유대적 개념으로 섬김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에서 섬김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상관없다는 말에 베드로는 “주여, 그러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얼마나 “인간적 상관관계”를 가지기를 원했던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때문에 그는 남들이 다 떠나도 나만은 안 떠나고, 남들은 다 도망하더라고 자신만큼은 목숨바쳐서라도 주님을 지켜드리겠다고 했던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단순히 윤리적인 겸손의 의미로서 발을 씻어 섬기라는 정도의 교훈이 아니었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고, 빗나가는 삶을 살면서 허물과 죄로 죽어 갈때, 예수님은 인간이 저지른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기위한 섬김이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허물과 죄는 인간이 저지르고 그 모든 죄악을 씻어 해결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려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섬김은 사회적인 실천적 사명이기 이전에 우리의 영적인 문제로부터 다시 죄사함을 받고 거룩한 백성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중생의 경험으로 남은 여생을 예수님의 섬김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명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럼, 이미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중새한 자는 어떻합니까? 그런 사람은 더욱 성령받기를 기다려야하며, 성령받았다면 더욱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며,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롬8장1-8).


3. 대속 사명: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본문 마20:28절의 말씀을 보면, 점진적인 섬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1 단계가 인자로 이 땅에 오신 것이었고, 2단계가 섬기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었고, 3단계가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세번째 단계는 사명의 완성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28절을 다시 보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1단계)/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2단계)/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3단계)”의 구성에서 보듯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명이 얼마나 고귀한 죽음이었고, 온 인류와 우주만상의 희망이요, 고대요, 세상의 마지막 구원의 기회요, 복음(기쁜 소식)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너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데!!”

지난 주간에는 오클라호마 교회협의회 주최로 LA에서 이창민목사님이 오셔서 증거한 말씀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 한가지만 뽑아서 다시 증거하라하면 “Why Me!”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셨냐고 불평하지만, 왜 나에게 이런 축복을 주셨냐고 감사하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십자가 사명이셨습니다. 왜 내게 이런 사명을 주셨냐고 인간으로서 속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시며 “이 잔이 내게서 떠나기를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명은 그렇게 기도를 마쳐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이 사명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기도할 때 사명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의 사명은 “인자의 사명이셨습니다. 하늘영광버리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오셨던 사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인자의 사명을 가질수 있다면 나와 다른 사람에게 다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섬김사명입니다. 마음을 높은데 두고 살면 섬김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섬김의 본을 통하여 섬김의 자리로 내려가 예수의 이름으로 지친 영혼 위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는 대속사명입니다. 우리가 대속할수 없습니다. 그저 (지금도 역사하는) 예수님의 대속사명에 작은 자로 참예하며 전도하고 선교하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며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섬김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십자가의 대속으로 우리 영혼 살려 천국시민 삼아주셨사오니, 이제 죄씻음받고 중생한자로 거룩한 성도의 사명을 세상가운데 드러내는 증인의 삶 살게 하여주옵소서! 왜 이런 고난이 찾아오는지 모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더욱 풍성하게 채우사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갑절의 축복을 믿고 사명의 승리자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로 구원하시고, 부활하사 영생주신 우리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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