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5:8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
Romans 5:8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이 어떠하신지 분명하게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처지와 환경과 신분에 상관없이 사랑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을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증명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속에는 엄청난 복음의 핵심이 들어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말씀은 지금도 그때의 그 사랑 곧,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보내사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랑을 지금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안에서 드러내고 계신다는 사랑의 연속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향년(Symposium)”이란 책에는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그리고 지혜로운 여인 디오티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가 사랑에 대한 주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여인 디오티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의 열망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다움, 지혜, 선함과 같은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강한 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묻기를 “그럼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고, 선한 것이겠지요?”했더니, 디오티마가 웃으며 대답하기를 “아니예요, 사랑은 그 자체로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중간에 있는 존재입니다. 천사처럼, 사랑은 인간과 신 사이에서 우리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주는 다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나은 것을 향해 계속 나아가려는 욕구인 것입니다”.
철학이 말하는 사랑은 “완전한 아름다움과 지혜와 선함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을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된 사랑이 우리에게 덧입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인간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 위로부터 부은 바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 곧,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합니다. 결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많이 소유하고, 많이 높아진들, 하나님의 사랑(Agape)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도덕적으로 의롭게 살아가더라도 완벽한 평안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랑을 하려는 사람은 항상 내가 무엇을 얻었다고 할 때 또 다시 사랑의 목마름을 겪게 될 것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때를 경험하면 내가 얼마나 유한하고, 불완전하고, 불안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완전한척, 불안하지 않은 척, 평안한 척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며 소리지른다 할지라도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고통은 오직 예수님께서 해결하실 때에 만이 인간의 근본적인 죄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여러가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병을 드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한시간을 들고 있는다고 생각하면 힘듦어 질것입니다. 하루를 들고 있게 한다면 물병의 무게는 변함이 없어도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무게감을 느끼게 됩니다. 죄인이 당하는 고통은 그 죄가 작아 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에게 주는 고통의 무게는 영혼을 점점 짓 누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알건 모르건 인간은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죽음으로 끝을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Amazing Grace"의 찬송가를 지었던 사람은 존 뉴턴이었습니다. 그가 노예무역 장사를 하면서 얼마나 인간의 생존과 생명을 파괴했습니까! 그러나 그가 죄에 머무를 때에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항해중에 폭풍을 만났을 때 이제 죽었다고 느꼈을 때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앞에 엎드려 까마귀소리처럼 하나님을 구했습니다. 그나마 어릴적 어머니의 신앙의 기도로 키워졌기에 하나님을 부르던 그 순간, 하나님은 폭풍을 멈춰주셨고 생명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명을 얻어 더 이상 노예무역 장사를 때려치우고 생명을 구원하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애 남긴 명곡의 찬송을 지었던 것입니다.
“1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4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아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지난주간에 아내가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26년을 살면서 당신이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은 처음이야!” 그리고는 “사랑에 빠졌다”고 나중에 말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하면, 자기가 실수로 기름 한통을 바닥에 쏟았는데 내가 와서 다 치워줬다 것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무조건, 조용히, 걱정않게 치워줬기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옛날부터 아내의일에 치우는 은사가 있었나봅니다. 돈까스만들때, 약밥만들때, 떡만들때, 케익만들때…) 이런 일이 많았지만 이번에 남편이 걱정않게 치워줬다는 사건 때문에 [자기가 해야할 뒷처리를 내가 조용히 해결해준 인간적인 도움]때문에 사랑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후 아내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기에게 얼마나 큰지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는 복음의 핵심 메세지입니다. 이 말씀이 (나)를 위하여 죽음심으로, 이 말씀이 (김성훈)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라는 다각도의 적용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이, 당신이, 우리가, 이 민족, 모든 열방이 복음안에서 복음안에서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말이며,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선행과 그 어떤 마음의 치유로도 우리를 죄악과 고통의 나날로부터 구원시켜주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심으로 성경에 약속하신 구원과 생명과 천국과 자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은 사건을 ‘대속사건’이라고 말합니다. 대신 우리의 죄를 속량하여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 대속사건은 우리의 죄악의 상태에서 건져주는 사건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때, 한 사람이 탈출을 시도하다 잡혔습니다. 그 형벌로 10명을 무작위로 잡아죽이려고 사람들을 축축했습니다. 죽게 될 한 사람이 “제발 살려달라”고, “제겐 아직 가족들이 있습니다”고 절규해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을 숨겨줬던 죄수번호 16670번 “맥스밀리안 콜베(Maximilian Kolbe)라는 연로한 사제가 “내가 대신하여 죽겠으니 이들을 살려달라”고 해서 대신 죽이고 사람들을 살려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후 콜베는 붙잡혀 15일 넘도록 악한 고문을 당하다가 결국 독극물 주사를 주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나 한 사람의 죽음으로 누군가를 살려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증거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육신의 생명만을 살려주고 죽어야 했던 멋진 성인이지만, 그리스도의 대속은 죽음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여 모든 산자와 죽은 자 모든 인류의 죽음에서 믿는자들을 불러 일으키는 대속이었습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살았던 부처도, 공자도, 마호메트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종교를 따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그를 묵념하지만 우리는 빈무덤이었기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인류는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인생의 모든 고통의 근원이었던 죄악의 쓴뿌리로부터 영원한 지옥형벌의 고통까지 십자가에 대속하여 담당하셨기에 누구든지 십자가 밑으로 나아가 그분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죽음이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예수안에서 죽음과 고통의 문제가 해결될 것을 믿습니다! “당신의 고통은 예수안에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함없으신 사랑을 전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기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만 하면 그 사랑 때문에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어제 아침 새벽기도를 마치고 하는 말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에 배신하고 떠난 직원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모를 해도 세상속에는 여러 모양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닌 삶을 살아갈 ㅅ 수 있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말이 주어졌기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은 앞서 제시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의 말씀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셨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어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대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여주셨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가 상태가 어떠하든지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죄악에 머물러 살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죄악에 머물러 살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우리의 죄값을 십자가에 속량해주시고 우리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회개하여 돌아서서 하나님의 사랑안에 덧입혀 살아가게 된다면 세상의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입니다.
기도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죄의 쓴뿌리와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주셨사오니 우리에게 진실한 믿음을 주셔서 자유와 생명과 천국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아갈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은 싸움과 전쟁과 미움으로 서로 고통을 주고받고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사오니 세상을 향하여 사랑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사 영생주신 우리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