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여호와께 감사하라(3)
본문
시136편10-16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4-11-17

시136편10-16 여호와께 감사하라 (3)

Psalm 136:10-16 Give Thanks to the Lord (3)


본문에서 등장하는 3가지 사건 출애굽 사건, 홍해사건 그리고 광야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그 첫째가 열번째 재앙 곧 장자를 죽임으로 애굽이 항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게 된 사건입니다. 그때 유월절의 기원이되는 ‘어린양을 잡아 집집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는 의식’으로 장자의 죽음을 면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의식을 믿지 않았던 애굽 모든 백성들은 ‘짐승에서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조리 첫 새끼와 첫 아들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두번째 홍해사건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여 영화로도 알려질 만큼 중요한 사건입니다. 앞에는 바다, 뒤에는 애굽군대가 몰려오는 죽음의 위기에서 바다가 갈라져 벽처럼 쌓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땅처럼 건넌 것입니다. 세번째는 째는 광야를 지나야하는 사건입니다. 인생은 마치 광야같다고 말하지만 실제 광야에 떨어지면 몇이나 통과할 수 있을까요! 식수가 제공되지 않고, 낮밤의 뜨거움과 추위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차로가면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6시간이면 가는데, 무리를 지어 천천히 가면 1개월, 일반인들의 걸음이라면 10이면 가는데 40년을 돌고돌면서 했던 그들의 광야길을 끝내 통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애굽의 압제에서 풀어주신 은혜, 홍해를 마른땅 처럼 건너게 하신 은혜 그리고 광야를 통과시켜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그 인자하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의 압제와 홍해 그리고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며 동행하셔서 우리를 업어서까지 하시면서 통과시켜 영생천국에 이르는 그날까지 인도하실을 확신하며 말씀증거하겠습니다.


1. 출애굽사건(10-12)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속에 400년을 살게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창15:13-14절의 약속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적용) 어쩌면 우리가 겪는 고난, 그것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하는 고난의 상황이 하나님의 약속때문이라면 그 고난을 인내하면 복이 될 것입니다. 살면서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처해진 것들 때문에 방황할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한 계획과 약속을 가지고 계시기때문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일해 나가시고, 압제와 죽음에서 건져내시고, 끝내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과 믿음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게하는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의 익숙한 애굽문화속에 종노릇하는 것이 더 안정된 삶이 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불러내셨습니다. 마치 10달이되면 태중에 있던 아기는 바깥 세상으로 나오기위하여 몸부림 치듯이 애굽에서 나오기위하여 몸부림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팍한 애굽 왕은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이 일하시는데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깐, 9번이나 방해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10번째 기적으로 그들의 장자를 죽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그날밤, 양의 피를 바른 가정은 죽음의 그림자를 면할 수 있었지만, 강팍한 애굽 왕과 애굽 인들은 자신의 집에 키우는 짐승으로부터 자녀들의 첫 것들은 모조리 장례를 치뤄야 했습니다. 그제서야 애굽왕은 하나님께 무릎꿇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유를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치실뿐 아니라, 인도하여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압제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강한 손과 팔로 인도하여 내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면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나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아직 모세가 지팡이를 손에 들어 출발이라고 외치지 않았는데, 아직 구름기둥이 이스라엘 백성 위에 떠오르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출발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욱 큰 고통과 죽음을 자처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훈련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반면에 애굽 왕은 강팍했습니다. 완강했습니다. 전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자기의 소견의 옳은대로만 밀어붙이는 왕이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철학, 주관이 뚜렷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음일뿐입니다. 그의 신하들이 이 기적들이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말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왕만은 마음은 점점더 강팍해져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않으려했고, 더욱 더욱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고 억압하고 학대하려고만했습니다(출8:19).


오늘 내 속에, 내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 속에 애굽 왕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께 돌릴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빼앗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그의 강한 팔과 펴신 팔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날이 이를 것입니다.


2. 홍해사건(13-15)

이스라엘이 겪었던 홍해사건은 정말 끔직한 두려움의 현장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에서는 애굽군대가 밀어닥쳐오고 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널 수도 없습니다. 철병거로 무장한 애굽 군대와 싸울 수도 없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이럴때 어떤 선택을 하시렵니까? 이것은 스릴러 영화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속에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교훈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구원하시기위하여 어떤 일을 하시는 보여주실뿐아니라 그들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도 하나님께 감사-영광-찬양하지 않는다면 그는 영적으로 죽은자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고, 하나님이 행하실 것이니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을 보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가만이 있는 것이 하나님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2) 하나님은 애굽 군대에게는 “흑암으로 꼼짝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백성들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함을 가질 수는 있었지만, 결코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보호조치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돌아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3) 하나님은 홍해에게 “동풍을 불게하사 길을 만들어” 마른 땅처럼 걸어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도하지만, 본문에서는 죽음, 흑암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바다를 보면 사로잡아 먹는 괴물이 바다속에 산다고 믿었습니다. 고대 바벨론, 스칸디나비아, 아시아에서도 바다속에 흑암의 괴물이 산다고 믿어왔습니다. 예화) 일본에는 누래온나 (Nure-Onna)라는 뱀과 인간의 혼합형 괴물이 강이나 바다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다가와 물에 젖은 아기를 건내 줍니다. 그러면 그 아기를 받아든 사람은 몸이 무거워 꼼짝 못하게 되죠! 그때 누래온나는 자신의 꼬리로 그를 감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성경에도보면, 바다의 큰 괴물 곧 “리워야단”의 존재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욥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 (바다괴물)를 끌어낼 수 있겠느냐?; 사27:1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 을 벌하시며;  시74:13-14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리워야단 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깊은 물속을 보면 두려움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속의 홍해는 바로 죽음과 흑암을 상징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홍해를 바라보며 죽음과 흑암으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께서 홍해가 주는 위협을 제압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흉용한 물결로 배를 덮치고, 사람을 죽음으로 위협할지라도 하나님은 홍해를 주관하시며, 길을 내시며, 마른땅처럼 건너가게 하시기때문입니다.


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자에게 바다는 구원의 길이 열렸지만, 하나님을 불신하며 불순종하며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바다가 흉악한 물결이 되어 죽음과 흑암으로 덮쳐버렸습니다. 예화) 저도 멕시코 엔세나다에 선교지 방문을 갔다가 배를 탔을 때 흔들리는 물살 때문에 정신이 혼미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일이가 어릴적에 개울 물에 데려갔다가 빠져 죽을뻔했습니다. 나는 미꾸라지 잡는데 정신 나갔고, 아이는 미끄러져 머리를 물에 밖고 허우져 거릴 때, 동네 아이들이 아저씨 애가 죽습니다. 애가 죽습니다. 그래서 돌아보니 죽어간것입니다. 빨리 건져냈는데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습니다. 밖으로 끄집어냈더니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후 물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얼마후 휴가를 받아 해운대를 갔는데 그날따라 해는 없고 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았습니다. 예일이는 물의 공포 때문에 모래사장에서 놀고있었을때, 튜뷰에 끼워 조금씩 물을 접하게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발목, 다음에는 무릎, 다음에는 허리까지 갔다가 바다를 즐기게 해주었더니 어느새 다시 트아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혼자 물놀이를 하게되었습니다. 


적용) 물은 우리를 위협하지만 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안에서 성도는 물을 가지고 놀아야 합니다. 물은 우리가 가지고 노는것이지, 물의 지배를 받으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요16:33 제자들은 혼자라고 생각에 사로잡혀 두려워할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영적 홍해를 만날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불안하고, 두렵고, 삼켜질것만같아서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자책하고, 원망하고, 미워지지만 그것은 결코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될 것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은 홍해를 통과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광야사건(16)


16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광야로 인도하실때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물도 없을 수 있습니다. 양식도 못 먹을 수 있습니다. 그저 생존하는 것에 급급하며 살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죽이지 않으셨다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기에는, 우리가 미국이라는 부유한 나라에서 살면서 너무 척박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광야를 경험하면서 재정적인 광야, 외로움의 광야, 소통하지못하는 광야 그리고 여러가지 제약된 환경의 광야들을 겪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강준민목사의 리더의 고독이란 책에 “광야와 고독”이란 주제 내용이 나옵니다. “광야는 잊혀지는 곳이다. 잊혀짐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 중의 하나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는 동안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실패보다 잊혀지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잊혀짐을 경험하고 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신감이 떨어지며, 자부심을 상실하고 만다. 나는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잊혀지는 경험을 했다. 아무도 나를 몰라준다는 경험을 했다. 큰 뜻을 품고 유학을 왔지만 나의 첫 경험은 잊혀짐이었다.” 


성경속에 모세뿐아니라, 요셉도, 다윗도, 엘리야도,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광야를 통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광야를 지나더라도 고통은 수반되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오늘 말씀처럼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시켜 내실 것이며, 통과한 자들을 주실 기업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성숙한 열매를 안겨주실 것입니다.


적용) 광야를 통과한다는 것은 참 눈물을 머금고 가야하는 사명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광야 보내실 때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드셨을 것이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그때마다 함께하시며, 그 광야길을 친구처럼 함께 걸어가십니다. 


신32:10-14,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오늘 우리 인생의 황무지와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 하나님은 함께하고 계십니다. 통과하는 과정이 비록 무섭고 두렵지만 통과후에는 반드시 창공을 날게 될 것이며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1) 출애굽사건을 통하여 인생의 압제속에서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을 경험했습니다. 2) 홍해사건을 통하여 인생의 진퇴양난속에서 홍해에 마른땅 같은 길을 열어주시고,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으시는 것을 보게하셨습니다. 3) 광야사건을 통하여 더욱 성숙한 리더들로 성장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한주간 여러분을 하나님의 강한 인도로 이끌어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기도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며, 우리에게 참 자유와 회복 그리고 성장시켜가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세상이 주는 압제와 삼킬 것 같은 홍해의 두려움 그리고 고통을 주는 광야의 척박함 속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압제에서 풀어주실 것을 믿으며, 홍해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실 것을 믿으며, 광야의 척팍함을 통과시켜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힘으로 얻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번 한주간의 삶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하시며 경험하게하사 여러가지 시험을 통과시켜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구주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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