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주일] 바울의 선한 싸움[MP3]
본문
딤후4장7,8절
설교자
김성훈목사
분류
날짜
2024-12-29

딤후4:7-8 바울의 선한 싸움

2 Timothy 4:7-8 - The Good Fight of Paul


성경 속 가장 최초의 전쟁은 가나안의 남북전쟁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가나안의 남쪽 왕들이 북쪽 왕들에게 조공을 바치다가 반란을 일으켜 조공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북쪽 왕들이 동맹을 맺고 싯딤 골짜기에 모여 남쪽을 공격했고, 남쪽 왕들도 맞서 싸웠지만 군사 경험이 부족해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약탈당하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신이 훈련시킨 318명의 병사들과 함께 적을 추격해, 롯의 가족뿐만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에서 끌려간 모든 사람과 재물을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전쟁 후, 살렘 왕 멜기세덱이 나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네 대적을 네 손에 붙이셨다'며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도우신 것이었습니다.


성경 속 최후 전쟁은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전쟁입니다. (1) 계시록16장과 19장에보면 아마겟돈 전쟁이 나옵니다. 세상왕들과 악한 세력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는 아마겟돈에 모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모든 적을 물리치시고 그들을 산채로 유황 불못에 집어 던져버렸습니다. 남은 추종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검에 베어 죽고, 새 떼들이 날아와 그들의 시체들을 뜯어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 계시록 20장에 보면 곡과 마곡전쟁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통치와 평화가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이 끝난 뒤, 사탄이 잠시 풀려나 세상 동서남북의 민족들을 미혹하여 곡과 마곡,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을 만들어 하나님의 백성을 포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멸망시키고, 사탄은 영원히 타는 불못 곧, 20:14, “둘째 사망 곧 불못”에 던져져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등장하는 “바울의 선한 싸움"이 나옵니다. 바울의 선한 싸움은 세상적인 성공을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사명의 싸움입니다 ㅡ 믿음의 싸움입니다 ㅡ 그리고 우리 미래의 소망의 싸움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의 선한 싸움이란 말씀을 통하여, 한해의 아름다운 마무리와 더불어 새해의 새 희망을 발견하는 말씀되기를 바라며 말씀 증거합니다.


첫째. 선한 싸움은 “끝까지 달리는 인내의 싸움”입니다.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0:24절에서 이미 그의 사명을 밝힌바 있었고, 이제 노년이 되어서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나의 달려갈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하며 달려왔었습니다. 그 길을 달려오면서 숱한 고난과 유혹들과 힘빠지게했던 영적 눌림들이 있었지만 그는 완주했던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바울은 자신의 선한 싸움이 마치 전쟁터의 생존경쟁처럼 살아왔다고도 하지만 또한 달리기 운동 경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 같은 싸움은 누구 하나가 죽어야만 내가 사는 것이라면, 달리기 운동은 목표점에 완중하여 받을 상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의 “마쳤다”는 말의 원어/테텔레카는 원형 텔레오의 현재 완료형으로 쓰여 “드디어 완주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딴 눈팔지 않고 드디어 완수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하느냐하면 앞서 6절 말씀“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생의 마지막이 가까워 왔다는 것을 느꼈고 달려온 인생에 후회없이 마지막을 전제와 같이 다 부어 드리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벤자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 박사는 세계적인 신학자로, 192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거의 34년동안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정사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못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1876년, 25살에 애니(Annie)와 결혼하여 독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애니가 폭풍속에서 번개를 맞아 영구적 장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9년 동안 헌신적으로 간호하며, 2시간 이상 집을 비운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어려움속에서도 학문적 업적을 쌓았고 신실하게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바울이 노년에 고백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의 삶을 살아낸 것입니다; 물은 99도에서 절대 끓지 않습니다. 반드시 100도에서 끓듯이, 바울의 그 마지막 1도까지 남김없이 하나님께 사명을 다했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마지막까지 사명으로 살라는 교훈을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둘째. 선한 싸움은 ‘믿음을 지키는 영적 싸움’입니다.

바울은 “믿음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적인 성공보다 더 중요한 내적인 신앙의 싸움을 강조하기 위하여 믿음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위협과 핍박을 견뎌내고, 사명을 완주했다고 할지라도, 믿음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 선한 싸움들은 물거품처럼, 안개처럼, 무의미하게 사라져 허무한 세월을 살아낸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얘기하는 믿음을 지켰다는 그 믿음은 나의 신념과 나의 노력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은 “오직 하나님이 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은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는 고백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증명 할 것은 예수의 흔적 너머에 있는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고백하는 “믿음”이라는 단어의 원문, “피스틴”은 예수님에 대한 신실함에서 비롯된 믿음을 말했습니다. 그 믿음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님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배신하지 않았고 한번도 삐뜰어 믿지 않았고 지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받혀주는 말이 “지켰다”는 말인데 그 믿음이 참 믿음이 되도록 지켜왔던 믿음의 충성심을 보아서 알 수 있었습니다. 믿음을 지켰다는 말은 보초병이 보초를 설 때 어떻게 보초를 서고 있었는지의 모습과도 같은 말입니다. 이 믿음을 지키기위하여 주의를 살피고 철두철미함으로 믿음이 흔들리자 않도록 지켰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충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믿음이 내게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존귀한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졌기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믿음 좋은 처녀가 남편 고향인 전주로 가서 결혼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며느리의 직업은 약사였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불교의 독실한 보살이었기에, 며느리가 교회 나가는 것을 절대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도 어머니 때문에 아내에게 “10년만 나가지 말아달라”고 하면서 믿음에서 떨어질 것을 바라며 “10년이란 기간만 교회 나가지 말고 그 후에 나가라”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교회 구역장에게 주보를 몰래 가져다 달라며 주보를 따라 혼자 집에서 신앙을 지켰고, 십일조도 몰래 구역장을 통해 교회에 드렸습니다. 그후 3명의 자녀를 낳았고 아이들은 교회부속 유치원에 보냈고 시어머니에게 교회 유치원 행사마다 참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결국, 시어머니는 마지못해 갔다가 교회와 가까워 지게 되었고, 드디어 그렇게 10년이 지난 어느날 며느리는 자기 남편에게 10년되었으니 약속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무슨 약속?” /“당신이 10년후에 교회나가도 된다던 약속이요!” /그때 남편은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내는 그 믿음을 지키기위해 10년을 기다려 말한 것에 감동을 받았지만 어머니가 마음에 거슬려 어머니께 자초지정을 다 얘기했더니 /어머니가 무릎을 치며 “우리 집안에 한 사람이 이렇게 예수 믿어 집안이 평안한데 이왕지사 우리 모두다 교회나가 예수믿자”라고 했던것입니다. 그렇게 집안이 며느리 한 사람 때문에 모두 교회나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10년이란 시간이 길었지만 그 믿음 하나를 버리지 않았고 지켜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장차 내가 죽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그렇게 지켜왔던 믿음을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선한 싸움은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는 소망의 싸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곧, 장차 내가 받게 될 의의 면류관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신 재판관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하며,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며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라고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죽음이 가까울수록 이 소망은 더욱 간절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제 후로는”이라는 미래적인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지만, “예비되었으므로”라는 말은 그 미래를 현재로 바꾸었습니다. 원문에서 예비되었다는 말씀은 “아포케이타이”는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쓰여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면류관의 수여식은 미래지만, 예비된 것은 현재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나의 '아포케이타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는 마치 은행 통장에 거액을 예치하고, 그 돈을 신용카드로 사용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통장 속에 돈이 충분히 들어 있다면,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불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통장에 액수도 없으면 그것은 지불도 되지 않을뿐더러, 어느 가게를 가서 물건을 사려해도 살수도 없고, 그것 때문에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현재 내 삶의 불안들—경제적 불안, 건강의 불안, 연수와 죽음의 불안—이 나를 흔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에 예비하신 '아포케이타이'를 기억하신다면 불안의 그림자는 뒤로 물러가고 말것입니다. 태양을 바로 바라보는 것, 내게 맡겨진 사명을 바로 바고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그림자를 뒤로 물러가게 할 지혜의 말씀이 되어줄 것입니다!


결론

바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삶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확신하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경제적 불안, 건강의 위협,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아포케이타이"라는 현재적 확신, 즉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신 상급과 구원의 확신을 붙들고 나아간다면, 우리는 이 땅의 고난과 시험을 싸우며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으며, 함께 오늘 말씀을 다시 봉독합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 주 곧, 의로우신 재판관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요 /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이 말씀이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새해를 희망으로 맞이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불안과 도전 속에서도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우리의 헌신과 사역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하시고, 마지막 날 의의 면류관을 받는 믿음의 자녀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제선택: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