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36편1-3 여호와께 감사하라 (1)
Psalm 136:1-3 Give Thanks to the Lord (1)
오늘 본문에는 다음3가지 중요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여호와”로 쓰였습니다. 곧, 스스로 계신 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의 손으로 지어지거나, 자연의 생성 변화속에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신 신이 아니시라는 예기입니다. 여호와는 홀로 계신 자, 스스로 계신 자,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오직 한분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그 존재로서 그분을 말씀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또 2절에 보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원문에는 “엘로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고, 그 뜻은 전능하신 자라는 뜻입니다. 권세가 있으시고, 힘이 있으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들은 보여지는 금과 돌과 나무들로 신을 만들 수 있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셨고, 그분 자신도 영으로 존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3절에보면 “주” 곧, “아도나이/Lord”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도나이는 주, 주인, 소유자, 주권자, 통치자라는 의미입니다. 나의 주인, 소유자, 통치자가 주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나의 몸과 물질 그리고 시간까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이름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져서 생기신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셨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고, 모든 만물의 소유주가 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반복이라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우리는 그 내용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편 136편 전체를 보시면 매구절 마다 반목되는 말씀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이 시가 예배속에서 찬양대의 찬양으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것도 일반적인 예배가 아니라, 중요한 절기때나, 성전봉헌식때 사용되었던 시편이었었습니다. (1) 역대하7:3절에보면, 솔로몬이 성전봉헌식의 기도순서를 마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그리고 (2) 역대하20장 전체를 보면, 유다가 모압과 암몬의 침략을 받았을 때, 여호사밧왕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ㅡ 그때 레위인 중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이 성령에 감동받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두려워 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너희는 내일 그들을 마주하며 내려가라.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대하20:15-17). 그 말씀에 힘과 용기를 얻은 여호사밧왕은 백성들과 레위 찬양대원들을 앞장세워 찬양하며 나아갈 때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대하20:21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그때 불려졌던 찬송의 소리는 메아리는 적군을 물리치며 완전히 그들을 쳐죽일 수 있는 승리의 노래로 불려졌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영적 전쟁속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반복 또 반복 찬양할 수 있다면, 내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인자하심으로 늘 함께 하시기때문이었습니다. 칼빈은 본 시편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백성으로 하여금/ 만약 그들이 주를 열심히 찬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을 그로부터 빼앗는 죄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각각의 은혜를 언급함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의 자비(인자)를 특별히 주목하므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모두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것을 받은 것뿐이며, 이러한 사실이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필요적절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 시편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값없이 주신 모든 것을 받은 것에 대한 하나님께 감사 찬양은 필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받은 것중에 가장 값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 독생자를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제사의 제물중 가장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이번달 11월이란 시간을 우리는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이 한달에는 시편136편을 강해하고자 기도하며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리가 함께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한 달을 가득메워가신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욱 높임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더욱 여러분과 함께하셔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케하실 것이며, 우리가 건널 수 없는 홍해를 마른땅처럼 밟고 가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1-3절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Ⅰ. 시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본 시편이 예배 속에서 이렇게 교독되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도자가 선창하면 성도들이 후창을 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한번 재현해 보겠습니다. 제가 “여호와께 감사하라”하면 여러분은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하시면서 3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ㅡ (성도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인도자)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ㅡ (성도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인도자)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ㅡ (성도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된 것은 교회를 나왔다고 해서,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신학교를 다녔다고 해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훈련시킬 만한 지식을 가졌다고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1) 욥은 그의 인생속에 하나님을 자기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하나님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욥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못하고, 깨닫지못하고,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하며 살아간다고 했습니다(욥38:2). 욥이 아는 하나님은 미흡하게 알고 있었고, 왜곡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수많은 질문을 통하여 무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욥기 38장에보면 이런 질문들을 봅니다.
“해가 뜨는 곳에 가본적이 있느냐? 동풍이 불어오는 그 시발점에 가 본적이 있느냐?(24),/ 네가 북두칠성의 별 떼를 한데 묶을 수 있으며, 큰 곰자리와 그 별떼를 인도하여 낼 수 있느냐?(31),/ 네 소리를 높여서 구름에게까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느냐? 구름에게 명령하여 너를 흠뻑 적시게 할 수 있느냐?(34),/ 누가 구름을 셀 만큼 지혜로우냐? /누가 하늘의 물 주머니를 기울여서 비를 내리고, 누가 지혜로워서 티끌을 진흙덩이들을 서로 달라붙게 할 수 있느냐? /네가 사자의 먹이를 계속하여 댈 수 있느냐? /굶주린 사자새끼들의 식욕을 채워줄 수 있느냐? (38,39)...
적용) 우리도 하나님의 존재를 안다고 말하지만, 정작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욥 만큼이나 알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갇혀있고, 부족하고, 왜곡된 지식들을 깨닫도록 질문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깨달아 갈 때 하나님의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 성경속 하나님의 질문들은 나의 무지를 실제적으로 일깨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감사와 경배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것을 그냥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편기자는 성령의 조명아래에서 이 말씀을 기록할 때 온전히 하나님께 감동을 받아 기록하였기에 읽는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결코 감동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을 볼 때 한 글짜, 한 글짜를 새롭게 보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매일의 은혜말입니다. 그러면 내 속의 성령께서 한 말씀, 한 말씀속에 성실하게 지도해 가실 것입니다!
시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적용) 하나님을 성령안에서 알게되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그분은요 여호와요, 엘로힘이요, 아도나이이십니다. 제가 그분을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 눈으로 보아 믿기에 저는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은혜를 제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진실로 선하셨고, 진실로 인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인자하신 성품이 저에게 영원히 (저의 마음에) 살아있습니다. 그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저의 삶속에 살아남아 평생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이런 마음의 감사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를 더욱 풍성하게 할 뿐 아니라, 결코 단 한번의 감사로 끝나지 않는 영원한 감사로 이어질 것입니다.
Ⅱ. 시136:2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 편에서는 다른 神이 없습니다.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神은 하나뿐이시기때문입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말씀하고있는 “모든 신”이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만든 신을 말합니다. (1) 금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은 가짜 신말입니다. 그것은 神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돌이나, 나무로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神이 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神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神은 신본주의에서 해석되어야하며, 인본주의에서 해석될 때 인간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신을 만들어 낼 위험성이 농후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릴적 아버지와 살면서 우상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님에 관해서는 더 더욱이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되고, 지경을 옮길때마다 하나님께 예배의 제단을 쌓았는지 그 믿음에 관하여는 자세한 과정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은혜를 언급하셨고, 그 은혜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예배하는 자라고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전승에보면, 아브라함이 어릴적에 우상을 만드는 가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잠시 자리를 비우시며 아들에게 가게를 맡겼습니다. 어떤 아줌마가 음식을 싸들고 와서 우상들앞에 놓고 절하고 갑니다. 그 모습을 본 아브라함은 몽둥이를 하나 가지고 와서 하나의 우상의 손에 그 몽둥이를 묶어두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우상들을 모조리 다 깨부숴놓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왔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 그러자 아브라함은 “누가 음식을 가져왔는데, 서로 먹겠다고하며 싸우더니, 그중에 한놈이 몽둥이를 집어 들고 다 때려 죽였습니다.” 그 말은 들은 아버지가 “야, 이놈아 우상이 어떻게 살아서 싸우며 때려부수냐,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도 말고 바른대로 말해라?”다구쳤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아버지! 우리가 왜 이런 죽은 우상을 마치 살아있느냥 팔고 있는 거예요! 우리도 이제 이런 장사 그만합시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우상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팀 켈러는 마틴 루터의 십계명 강해 중 우상에 대한 가르침에 대하여 자신의 말로 이렇게 정의한바 있었습니다. “루터는 모든 죄의 뿌리를 우상숭배로 보았고, 우리가 인정, 기쁨, 가치, 소망, 안전 등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더 바라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우리의 신이 된다. /우리 마음과 삶을 다해 경배하고, 섬기고, 의지하는 것이 곧 우상이다. /일반적으로 우상은 좋은 것들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정, 성공, 일, 경력, 연애, 재능, 심지어 복음사역도. /이것들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절실한 의미와 기쁨이 된다면 우상인 것이다. /우상이 되면 그것들이 우리를 몰아가서 집착하게 한다. /우상이 존재하는 분명한 표지 중 하나는 우상들이 위협받을 때 지나친 걱정이나 분노, 낙담등을 하는 것이다. /좋은 것을 잃게 되면 슬픔 정도지만, 우상을 잃게 되면 붕괴되고 만다”라고 했습니다.
적용)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우상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 때문에 울고불고 했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중심, 말씀중심, 교회중심의 삶을 살지 못했던가 뉘어쳤습니다. 이러다가는 참 교회마져, 참 성도마져도 흔들려 세상속에 삼키움을 당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돈을 잃게 되었다고, 사람을 잃게 되었다고, 시간을 잃어버리게되었다고 마치 모든 것을 잃은냥 살아가는 현대를 보면서, 오직 하나님만은 잃지말자! 오직 복음만은 변치말자! 오직 말씀만은 끝까지 붙잡아야할 내 생명의 끈이라고 믿자… 다짐하게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의 참신이시며, 지옥에서 건지실 구원의 신이시며, 환난에서 보호할 피난처가 되심을 믿으시며, 오직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Ⅲ. 시136:3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세상에는 자신을 “주”라고 칭하는 권력자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기가 주인인냥 살아가려는 자들이 더 많습니다. 주인되려는 자들이 세상뿐아니라, 교회속에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주인이냥, 소유자인냥, 통치자인냥 혹은 전능자인냥 지배하며 살아가는 “모든 주”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몸의 주인 하나님이고, 내가정의 호주가 하나님이시고, 내가다니는 교회의 머리가 하나님이되시고, 내가 사는 이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 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세상 역사속에도 거들먹 거리던 “왕들, 군주들, 통치자들”이 모두 “주”라는 칭호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초대교회 역사속에서 로마황제 네로, 도미티안 같은 사람들은 “주님”행세를 하며 자신만을 섬기라고 하였고, 한국의 일제 치하속에서 일본 천황도 “주님”행세하며 천황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시기의 대상, 미움의 대상이 되어졌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탄압은 다니엘 때에도 여전히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꼴을 못봐 죽이려했었습니다. 그 당시 신하들이 “다리오 왕에게만 절하고 기도해야한다”는 법을 왕을 꼬드겨 법으로 제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니엘은 하나님을 끝까지 섬기며 감사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늘 하던 대로 창문을 열어놓고 변함없이 감사 기도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결국 사자굴속에 끌려가 밥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기 위하여 사자들의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왕은 새 조서를 다시 써 공포했습니다. 단6:26,27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이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적용) 세상에는 “주”라 칭함 받으며 굴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오직 주님은 하나님 밖에 더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엘로힘으로, 여호와로 모셔드리십시오! 그리고 감사받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선하시며 인자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으로 이 한주간을 승리해 가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세상의 우상과 죄악으로 우리의 영혼은 지쳐가게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으로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깨달아 내게 행하신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심령의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